▲ 월지 전경. 한국관광공사 제공

 

경북 경주는 마음 참 편안하게 만드는 도시다. 중년의 나이라면 아마 ‘수학여행’이라는 아련한 기억이 스멀거릴 거다. 오래 전 그 여행의 추억은 퍽퍽한 일상의 치료제와 같아, 게워내 곱씹을 때 마다 도시생활의 먹먹함이 잊히고, 입가에 미소가 절로 묻어난다. 묵은 왕도(王都)가 주는 애틋함도 마음을 차분하게 만든다.

시내에서 가까운, 첨성대와 월지(안압지) 일원에는 문화재와 옛 유적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어 쉬엄쉬엄 걸어서 가볍게 둘러보기 좋다. 바람 조금 선선해지면 자전거로 돌아봐도 좋다.

월지는 안압지로 친숙한 연못이다. 신라 왕궁의 별궁이 동궁이고 동궁에 딸린 연못이 월지다. 동궁에는 신라의 왕자가 거처했고 나라에 중요한 손님이 오면 연회도 열었다. 월지의 가장자리는 매끈한 원형이 아닌, 굴곡진 형태다. 야트막한 구릉이 튀어나와 연못의 일부를 항상 가리니 좁은 연못은 마치 거대한 호수나 바다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다. 신라인들의 의도가 놀랍다. 주변으로 산책로가 잘 나 있다. 야간에 조명이 켜지면 더 예쁘다. 월지 옆에 월성이 있다. 초승달 닮은 이 성안에 신라의 궁궐이 있었다. 성곽 따라 걸으면 얼음 저장고인 석빙고를 볼 수 있고 첨성대도 아득하다.

월성 아래는 계림이다. 경주 김씨의 시조, 김알지가 태어났다고 전하는 숲이다. 흰 닭이 그의 탄생을 알렸다고 해 붙은 이름이다. 전설 한자락 걸친 숲에는 신령스러운 자태의 고목들이 가득하다. 숲 가장자리 우아한 능(陵)은 내물왕릉이다.

계림 앞에는 그 유명한 첨성대가 당당하게 서 있다. 과학적 기능도 기능이지만 상단으로 올라가면서 부드럽게 휘어지는 곡선이 고분 못지않게 아름답다.

첨성대 옆으로 노서동 고분군이다. 신라 금관이 처음 발견된 금관총이 있다. 다시 도로 건너면 대릉원이다. 천마총, 황남대총, 미추왕릉 등 신라 김씨 왕족의 권위를 상징하는 23기의 웅장한 고분이 자리한다.

하나 더 추가하면, 교촌마을도 산책하기 좋다. 계림에서 걸어서 10여분 거리다. 99칸에 달했다는 ‘경주 최부자집’으로 유명한 마을이다. 최부잣집 곳간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다고 알려졌다. ‘최부자’는 흉년 때 이 곳간을 열어 사람들에게 쌀을 나눠주며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했다. 구태를 없애고 곤경에 빠진 나라를 구하는데도 앞장선다.‘최부자’의 시조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전공을 세우고 전사한 최진립이다. 후손들은 원성의 대상인 마름을 없애고 마지막 ‘최부자’인 최준 선생은 일제 강점기에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김성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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