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 Mr . 마켓 <116회> 글·김지훈

아이들과 교사들로부터 분리된 균은 독특한 생화학 성상과 특이한 항생제 내성 패턴을 보였다. 알려지지 않은 신종 결핵균이었기에, 세균 테러 가능성까지 조사되었다.

학교 안팎으로 대대적인 역학조사가 시행되었고, 비둘기와 쥐 바퀴벌레, 신주머니와 수도꼭지 파이프 그리고 화단에 사는 지렁이와 천정에 낀 곰팡이까지 온갖 것이 분석되었다.

조사원들이 식수대와 화장실 하수구를 들쑤시는 동안, 그녀는 학급에서 키우는 카멜레온 한 마리를 의심했다. 젖소와 사슴의 결핵이 사람에게 전염되는 경우는 간혹 있었지만, 파충류에 의한 전염은 엉뚱한 것이었기에, 동료들은 그녀 생각을 ‘시간 낭비’로 치부했다. 그녀는 부드럽고 겸손한 어조로 ‘괜한 짓’일 수도 있겠지만, 확인해 두고 싶다고 말하고 개인 시간을 내서 일을 처리했다.

이 주 후, 카멜레온의 타액에서 엄청난 양의 신종 결핵균이 배양되면서, ‘시간 낭비’와 ‘괜한 짓’은 탁월한 통찰력으로 재평가받았다.

결핵이 나돌기 전, 학생들과 교사들은 딱정벌레와 벼메뚜기 같은 먹이를 손으로 잡아 카멜레온 머리 위에서 흔들곤 했다. 카멜레온은 날렵하게 혀를 뻗어 받아먹었는데, 이 과정에서 균을 옮긴 것이었다.

일련의 과정과 결과를 싱가포르에서 개최되는 국제 수의학회에서 발표할 참이다. 강의도 하고 국내 학술제에서 연제도 맡아봤지만, 규모 있는 국제학회는 처음이었다……. ‘진짜 외국인’들 앞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영어로 진행해야 했고, 예기치 못한 질문 세례를 각오해야 했다. 자료를 살펴볼수록 뭔가 부족한 듯해서, 걱정이 쌓였다. 그녀는 반지를 만지작거렸다. 반지에 박혀 있는 커다란 루비는 정열적인 사랑을 뜻했다.

지우를 떠올린 그녀 입가가 마시멜로처럼 부드러워졌다. 첫 만남이 우습긴 했어도 그녀는 그를 사랑했다. 때맞춰 재즈풍으로 편곡된 아리랑 멜로디가 울리고, 스마트폰 화면에 발신번호와 캐릭터 아이콘이 떠올랐다. 번호와 아이콘을 확인한 그녀 입가에 미소가 너울거렸다.

- 지금 통화 괜찮아? -

조심스러운 뉘앙스였지만, 설레는 지우 마음이 그대로 전해졌다.

“응.”

그녀는 읽고 있던 페이퍼를 책상에 엎어 놓고, 일어서서 발코니 쪽으로 갔다. 드넓은 바다와 청명한 하늘이 펼쳐졌다. 적도 부근에 있는 싱가포르 휴양도시 리옹.

거리에는 바오밥나무와 팜트리, 망고트리와 키 작은 야자대추나무들이 있었다. 나무들은 버섯 갓처럼 넓게 가지를 뻗고 햇빛을 만끽하며, 길거리에 그늘을 만들어주었다.

어떤 나무는 밀림을 연상시킬 정도로 복잡하고 장엄하게 배배꼬였다. 바람결에는 파도 소리가 섞여 있었다.

- 비행기는 어땠어? -

“늘 그렇지 뭐.”

- 그쪽 날씨는 어때? -

“어떨 것 같아?”

- 너의 미소처럼 화창하겠지~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은 너의 가슴처럼 ……. 생크림처럼 부드러울 거야? 아! 배고프고 보고프다. -

지우는 그녀의 반응을 기다렸지만, 상대의 가벼움을 탓하는 기품 있는 침묵만이 흘렸다. 그녀는 남자의 유치함이 서글픈 본능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안다. 못 본 척 못 들은 척 무시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어떤 식으로든 맞장구치면 남자는 엉큼하기 짝이 없는 유치찬란함을 발산한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놈’들은 그런 존재였다. 지우가 다시 말했다.

- 어린아이처럼 보채고 싶진 않지만, 언제 돌아와? -

“스케줄이 앞당겨졌어. 오늘 저녁에는 돌아갈 거야. 우리나라 날씨는 어때?”

- 네가 없어서 그런지, 아주 우울해. 지금이라도 화창한 너에게 가고 싶어. 방향만 틀면 여섯 시간 후에 도착할 텐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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