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 양지원] 호의가 결코 달갑지 않다. 과하게 친절을 베푸는데, 상대는 불편하고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영화 ‘해빙’에서 김대명이 연기한 정육점 식당 주인 성근이 그렇다. 김대명은 두 얼굴을 가진 성근을 통해 선과 악을 동시에 보여주며 영화의 스릴을 높였다. 여기에 김대명 특유의 독특한 목소리가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조성했다.

“이수연 감독이 ‘더 테러 라이브’ 속 목소리를 듣고 ‘저 배우를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어요. 정말 감사한 일이죠. 감독님을 만나고 시나리오를 읽어보니 매력적이었어요. 이야기와 인물이 흥미로워서 출연하고 싶은 마음이 컸죠. 사실 선한 역과 악역의 기준을 정해놓고 작품을 만난 적은 없거든요.”

조근조근 말을 이어가는 순간에도 특유의 목소리가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정작 김대명은 목소리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했다. 예전에는 중후한 목소리를 갖고 싶은 바람도 있었다. 어렸을 때 멋있는 선배들을 보면서 ‘아, 나도 저런 목소리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혼자 연습도 해봤는데 목소리가 굉장히 이상해지더라고요(웃음). 이제는 그냥 내 목소리에 만족하면서 살고 있어요. 신체의 일부이기도 하니까요.”

김대명이 ‘해빙’에서 연기한 성근은 처음부터 끝까지 승훈(조진웅)을 불편하게 만드는 인물이다. 의문스럽고 미스터리한 인물인 만큼 선을 넘지 않는 연기가 관건이다.

“제가 보는 성근과 타인이 보는 성근의 시선이 다르잖아요. 그 선을 유지하는 게 굉장히 힘들었어요. 촬영장에서도 늘 긴장했고, 평상시에도 성격이 좀 예민해지더라고요. 두 얼굴을 지닌 캐릭터를 연기하려다 보니 그랬던 것 같아요. 웃음도 잘 안 나왔어요. 촬영이 다 끝날 때까지 무거운 마음이었죠.”

극중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는 성근과 승훈은 정육점 냉동창고 안에서 격렬한 몸싸움까지 벌인다. 성근은 승훈을 향해 골프채까지 휘두르며 악한 본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김대명은 휘두른 골프채에 조진웅 선배가 다칠까 봐 많이 고민했던 장면이기도 하다. 김대명은 조진웅과 함께 계산하지 않은 연기를 펼쳤다. 상황에 따라 즉흥적으로 펼치는 연기에 재미를 느꼈다.

“정육점 사장과 의사의 싸움인데 둘 다 생활인이잖아요. 멋있는 싸움이 아니라 막 싸우는 듯한 장면을 연출해야 했죠. 오히려 ‘막싸움’이 에너지가 많이 소비되더라고요. 흐름이 잘 흘러가는 방향에서 계산하지 않은 연기가 나오면 너무 좋아요. 거기서 느끼는 재미가 중독성이 있거든요. 상대방이 갑자기 예상하지 못한 연기를 펼쳤을 때 그걸 제가 받아 치며 파열음이 생겨요. 사실 우리 영화가 2인극에 가깝고 규모가 큰 액션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주로 호흡과 대사로 만들어가는 장면이 많죠. 그래서인지 계산하지 않은 연기가 나왔을 때 쾌감이 상당했어요.”

김대명은 극중 아버지이자 치매에 걸린 정 노인 역을 맡은 신구에 대해 “존경한다”는 말을 연신 되풀이했다. 신구의 연기 내공은 결코 넘지 못할 산이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선배님이 한 마디 한 마디 대사를 하실 때마다 ‘대단하다’는 생각뿐이었죠. 굳이 말씀하시지 않아도 만들어지는 에너지가 있었어요. 굉장히 묘하고 신기할 정도였죠. 사실 촬영 들어가기 전까지 ‘내가 민폐가 되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을 많이 했어요. 그렇지만 현장 가서는 그런 걱정을 다 내려놨죠. 배우 대 배우로 연기하려고 노력했어요.”

스크린에서는 섬뜩한 연기를 펼쳤지만, 브라운관에서는 더 할 나위 없이 친근한 매력으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종영한 KBS2 시트콤 ‘마음의 소리’와 tvN '미생’이 그 예다.

“제 코믹 연기를 보고 재미있어 하는 분들을 보니 정말 기뻤죠. 작은 목적은 달성한 기분이었어요. 아직도 ‘미생’ 김대리로 기억해주시는 분들도 많은데 감사할 뿐이에요. 이미지가 고착화 돼서 걱정된다기보다는 김대리를 제 평생친구로 여기고 있어요.”

사진=이호형 기자 leemario@sporbiz.co.kr

양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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