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미읍성. 한국관광공사 제공

 

여름도 끝을 향해 가고 있다. 뜨거운 여름날의 마을 설렘을 조금 정리할 때다. 나무들 빼곡한 숲을 가로질러 곰삭은 시간의 향기 오롯한 성벽을 따라 쉬엄쉬엄 걸음을 옮긴다. 치열했던 그날의 역사가 고스란히 깨어나 분주함 마음을 가라앉혀 준다.

충남 서산에 해미읍성이 있다. 해미는 현재의 충남 서산 해미면 일대다. 읍성은 산성과 달리 주민이 거주하던 평지에 쌓은 성이다.

해미음성은 전남 순천의 낙안읍성, 전북 고창의 고창읍성과 더불어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된 읍성으로 꼽힌다. 조선시대 왜구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해 쌓았다. 당시에는 인근 12개 군영을 관할했고 충무공 이순신이 한때 근무하기도 했다.

읍성 안에는 동헌, 객사 등이 있고 둥근 담장의 감옥도 만들어져 있다. 성벽을 따라 망루 같은 건축물도 남아있다. 성벽은 높이가 약 5m, 둘레가 1.8km로 남북으로 긴 타원형이다. 성벽을 따라 걸으면 성 안의 풍경을 오롯이 볼 수 있다. 특히 ‘청허정’ 뒤로 난 길을 따라가면 울창한 소나무 숲이 나온다. 여름 볕 피하기도 좋고 조용히 산책하기에도 그만이다. 너른 잔디밭에서는 아이들이 굴렁쇠를 굴리며 뛰어다니고 연인들은 나무 그늘아래 앉아 사랑을 속삭인다. 전통놀이를 체험할 수 있는 곳들도 곳곳에 있다.

해미읍성은 천주교 신자들에게는 성지다. 읍성이 있는 해미면 일대는 박해로 인해 수많은 무명의 순교자들이 죽어간 땅이다. 서산을 비롯해 당진, 보령, 홍성, 예산 등 서해 내륙 지방을 내포(內浦)지방이라 했다. 서해의 물길을 타고 한국 천주교는 내포 지방을 중심으로 싹 틔우고 꽃 피웠다.

해미읍성 옥사에는 내포지역에서 끌려온 신자들이 항상 가득했단다. 옥사(감옥) 앞에는 커다란 ‘호야나무’(회화나무)가 있는데 이 나무 가지 끝에 철사를 매달아 신자들의 머리채를 묶어 고문했다고 전한다. 읍성 서문 밖(서산고등학교 앞)은 이들을 처형하던 장소로 지금은 순교헌양비가 서 있다.

읍성 인근에는 해미순교성지(해미성지성당 일대)가 있다. 병인박해(1866) 때 성당 인근 해미천 양쪽 들판에 숱한 신자들이 생매장 됐다고 전한다. 조선 전체 순교자 수가 약 8,000명으로 추정되는데 이 가운데 1,000~2,000명이 해미의 순교자들이란다. 웅장한 원형 성당은 이들의 넋을 위로하는 거대한 비석처럼 다가온다. 성당 뒤편 일대는 ‘여숫골’로 불린다. 처형장으로 끌려가던 신자들이 ‘예수 마리아’를 끊임없이 외쳤는데, 이것이 ‘여수머리’거쳐 ‘여숫골’이 됐다. 여기에는 신자들 끌고 와 손을 묶은 채 빠뜨렸던 진둠벙(진창 웅덩이), 이들의 머리를 얹어놓고 쇠도리깨로 쳐서 죽였다는 자리개 돌, 무명 생매장 신자들의 묘, 발굴된 유해를 안치한 기념관 등이 조성돼 있다.

김성환 기자

저작권자 © 한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