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 김재웅] 영화 택시운전사는 1980년 5월 광주 민주화 항쟁을 우연히 목격하게된 택시운전사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실존인물인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패터와 평범한 택시 운전사 김사복(극중 김만복, 송강호분)이 겪었던 이야기를 재구성했다.

김사복은 1980년 기준 약 40세로 추정되는 당대의 전형적인 가장이다. 해방과 전쟁이 이어졌던 격동기에 태어나 젊은 시절 중동에서 외화벌이로 ‘한강의 기적’을 일궈낸 영웅이기도 하다.

기아차 브리사는 이런 김사복이 타고 나오는 택시로 비중 있게 그려진다. 제작비만 수입차 한대 가격이 사용됐다고 한다. 1970년대를 대표하는 국산차는 현대차 포니. 역사에서는 조연격인 브리사에 굳이 주연을 맡긴 데 많은 관객들은 의아해했다.

영화 택시운전사에서 기아차 브리사는 주인공의 차로 비중있게 출연한다. 택시운전사 홈페이지

장훈 택시운전사 감독은 브리사를 주인공의 차로 결정한 이유를 둥글둥글한 차체가 김사복과 잘 어울렸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극중에서 김사복은 수더분한 성격을 가진 인물이다. 각지고 세련된 모습을 한 포니와는 다른 모습이다.

다만 브리사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주연을 꿰찬 이유가 생김새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출시에서 단종까지 생애가 김사복과 많은 부분을 닮았다. 

우선 브리사는 국산차산업사로 보면 격동기에 태어났다는 점이 김사복과 같다. 국산차 산업은 전후 ‘시발자동차’ 등으로 자리를 잡아갔지만, 1960년대 박정희 정부의 4대의혹 중 하나인 ‘새나라 자동차 사건’으로 오랜 암흑기에 빠져있었다. 1970년대는 이런 여파가 채 가시지 않았을 때다.

1974년 출시된 브리사는 오랜만에 국산차 산업을 다시 일으키는 데 성공했다. 쓸만한 성능에 합리적인 가격으로 이른바 ‘마이카’ 시대를 연 것이다. 1975년 기준 점유율이 무려 58.4%까지 오르기도 했다.

같은해 국내 최초의 고유 국산차인 현대차 포니가 출시되면서 브리사는 역사적으로 큰 이름을 남기지는 못했다. 90%에 가까운 국산화를 이루긴 했지만, 마쓰다 파밀리아를 기반으로 만들어져 완전한 국산차는 아니었다.

김사복이 역사를 기록하는 데 큰 일을 해냈지만, 역사에 남지 못한 것을 연상케 한다. 극중에서도 광주항쟁을 주도하고 역사를 만드는 광주 택시는 포니로 나온다.

아직 그들의 최후에 대해서는 자세히 비교할 수 없다. 힌츠페터가 오랜 기간 찾아 헤맸음에도 불구하고, 김사복은 단 한 번도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브리사는 죽음에서도 김사복과 운명적 평행선을 걸은 셈이 된다. 브리사 역시 1981년 전두환정권의 ‘자동차공업 통합조치’로 강제 단종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김재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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