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오후 서울 광화문역 인근에서 간호사연대NBT 주최로 의료기관 내 악습 '태움' 희생자 고 박선욱 간호사를 추모하는 집회가 열렸다./사진=연합뉴스

[한국스포츠경제 이성봉] 지난달 15일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박선욱(27·여)씨가 유명을 달리했다. 유족은 박씨가 ‘태움’ 때문에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고 주장했다. 유서에도 ‘업무 압박과 선배 눈초리에 의기소침해지고 불안해졌다’는 내용이 담겼다. 사건 이후 간호사 10명 중 4명이 직장 내 군기 잡기와 괴롭힘을 일컫는 '태움'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은 20일 서울 영등포구 보건의료노조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의료기관 내 갑질과 인권유린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조사는 전국 54개 병원의 간호사(7,703명)·의료기사(1,970명)·간호조무사(648명) 등 종사자 1만1,662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12월부터 지난달까지 실시됐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간호사의 40.2%가 태움을 당했다고 답했다. 태움은 ‘영혼이 재가 되도록 태운다’는 뜻에서 나온 말로, 선배 간호사가 신임 간호사를 혹독하게 가르치는 과정을 가리킨다. 괴롭힘에 가까운 군기 잡기가 이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폭행과 성희롱·성폭력을 당했다고 답한 간호사도 각각 10.0%, 13.2%로 나타났다. 간호사에게 선정적인 춤 공연을 강제해 논란이 일었던 한림대 성심병원의 사례처럼 업무와 무관한 일을 강요받은 경우도 많았다.

조사에 참여한 간호사의 31.2%가 업무와 관련 없는 행사에서 단체로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춘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회식 자리에서 술을 따르라고 강요받았다'고 응답한 비중도 22.7%나 됐다.

또 간호사의 13.0%가 개인사물함을 검사당하고 핸드폰을 반납하는 등 인권침해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보건의료노조는 올해 '환자안전병원·노동존중일터 만들기 4아웃(out)운동'을 전개한다고 밝혔다. 근절 대상은 ▲태움 ▲공짜노동 ▲속임인증(의료기관인증평가 기간에만 적정인력을 유지하는 것) ▲비정규직 등이다.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우리나라 의료수준이 세계 최고라고 하지만 이런 문제들이 나타나고 있다"며 "병원에서 일하는 의료인들이 환자들의 치료를 위한 업무를 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서울 송파경찰서는 박씨의 사망 사건을 내사 종결했다고 19일 밝혔다. 경찰은 거듭된 수사에도 병원 관계자들이 박씨에게 폭언과 가혹행위를 했다는 진술과 증거를 찾을 수 없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이성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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