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업계 관계자 이구동성 "부실 설계 가능성 드물어...최대홍수량에 도달안해"
소수의견 "국내 댐 설계전문가 거의 없고 시공사, 설계변경 요구 가능성"
감리 문제 부상..."보조댐은 감리대상 주요 구조물 계약 안했을 가능성"

[한스경제=이성노 기자] 라오스 세피안-세남노이 수력발전소 보조댐 붕괴 원인을 두고 불가항력적인 천재지변으로 인한 천재(天災)와 부실한 시공으로 인한 인재(人災)로 주장이 엇갈리고 있는 가운데 '인재'의 원인으로 지목할 수 있는 또다른 가능성은 공사 시공의 출발 단계인 `설계` 문제다.

설계도면 자체가 안전성을 담보할 수 없도록 만들어졌다면 시공사인 SK건설 측이 아무리 충실하게 공사를 진행했더라도 댐 붕괴를 막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SK건설이 댐시공에 대한 최종적인 책임을 지고 있어 책임소재와 관련한 차이는 크지 않다. 그럼에도 사고 이후 실시설계에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을 제기하는 전문가들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그만큼 업계 전문가들은 이번 사고 원인에 대해 설계 문제보다는 시공 부실 가능성에 훨씬 더 무게를 두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시점에 상주감리가 일반적인 대형 토목공사의 감리 부문에 책임은 없는지 확인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또 상주감리가 발견하지 못한 부실시공이라면 감리 역시 사고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건설 엔지니어링 전문업체, 토목공학 관련 교수들, 댐 개발사업 업체 대표, 건설·감리 업계 관계자 등은 '부실한 설계로 인한 댐 붕괴 가능성'에 대해 이구동성으로 "극히 드문 케이스"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들은 실시설계 도면을 직접 보지 못했고, 사고 원인 결과가 나오지 않아 조심스러운 입장이라는 점을 전제한 뒤 지금까지 상황만으로 보면 실시설계보다 시공과 감리 문제가 사고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당시 강수량이나 홍수량 모두 설계상 최대치에 도달하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글 싣는 순서>

①천재(天災)인가, 인재(人災)인가 (http://www.sporbiz.co.kr/news/articleView.html?idxno=261579)

②설계 문젠 없었을까...'보조댐' 감리대상서 뺐을 수도

③댐건설 시공능력 충분했나

④보험청구 가능할까

 

댐 건설업계 관계자들은 라오스댐 참사 원인을 두고 부실 설계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의견을 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설계업계 "부실한 설계는 있을 수 없는 일"

사고가 발생한 세피안-세남노이 수력발전소 댐 설계 입찰에 참여했던 건설 엔지니어링 업체 '삼안'의 관계자는 실시설계 과정에 문제는 없었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어투로 말했다.

이 관계자는 "댐을 설계하면서 무너지는 것을 염두에 두는 경우는 절대 없다"고 단정적으로 말하며 "‘인재’로 결론이 난다면 시공의 문제가 붕괴의 직접적인 원인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본댐, 부댐 모두 정상 높이는 같은데 부댐 한 곳만 침하가 발생했고, 물이 넘쳤다"며 "아무래도 무너진 댐에 문제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일반적으로 댐의 수위가 올라가면 여수로를 통해 물을 방류하는데, 댐을 설계할 때 여유고(계획 고수위보다 여유를 높게 두는 것)를 2~3m정도 두는데도 물이 넘쳐 사고가 났다는 것은 시공·운영 관리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라고 밝혔다.

입찰을 통해 SK건설로부터 댐 설계작업을 의뢰받아 실시설계를 실제로 했던 도화엔지니어링 측도 설계에는 문제가 없었다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내비쳤다.

도화엔지니어링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다양한 데이터를 가지고 설계를 한다"며 "설계 과정에서도 여러가지 검증 과정을 거친 뒤에야 시공이 들어간다"고 설명했다. 그는 "현재 사고 원인이 조사중이기 때문에 자세한 이야기는 하기 힘들다"며 말을 아끼면서도 설계는 정상적으로 이뤄졌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실시설계를 주관한 (주)유신 측에는 수 차례 연락을 시도했지만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

라오스 정부는 SK건설 보조댐 참사 원인을 인재로 판단하고 있다. /표=한스경제

◇ 토목공학자들 "부실 설계 가능성 낮아" 한 목소리

토목공학자들도 비슷한 의견을 보였다. 이수곤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이번 사고가 국가 신용도에 영향을 줄 만큼 심각한 사안이니 만큼 섣부른 판단을 내리긴 어렵다고 하면서도 '설계에 의한 참사'라는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했다.

이 교수는 "설계에 참여한 유신과 도화 모두 업계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 곳"이라며 "가능성이 아예 없을 순 없지만, 설계 문제보다는 부실시공 가능성이 큰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실 SK건설이 하청업체(삼환기업)에 모든 공사를 맡기고 관리·감독만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업체는 이미 지난해 6월에 대부분 장비와 함께 현장을 철수했다"며 "SK건설은 사고 전 이미 침하 현상을 확인했고, 대형 사고 가능성을 인지했을 것으로 보이지만 사고를 수습할 장비와 인력이 마땅치 않았을 수도 있다"고 추측했다.

문영일 서울시립대 토목공확과 교수 역시 "현재 사고 원인을 조사중인 상황에서 책임 소재에 대해 언급하기는 어렵다"고 말하면서도 설계로 인한 참사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문 교수는 "댐을 설계할 때 가능최대강수량(PMP· Probable Maximum Precipitation)과 가능최대홍수량(PMF· Probable Maximum Flood)을 반영하는데 사고 자료를 검토한 결과 강수량이나 홍수량 모두 최대치에 도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사고 당시 PMP와 PMF를 초과하지 않은 만큼 설계에 책임을 돌리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해석이다.

이어서 문 교수는 "현재 상황으로만 보자면 사고 원인을 천재(天災)라고 보기는 상당히 어렵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댐 건설 업계 전문가들중 다른 각도에서 설계의 문제를 지적하는 이도 있다. 댐 설계 전문가인 C씨는 "국내에서는 댐 건설을 안한지 꽤 됐다. 때문에 댐 전문 설계자들이 거의 없고 후진양성도 하지 않았다"며 "게다가 설계를 발주한 시공사측이 설계 요소요소에 개입해 설계비, 공사경비를 줄이려 했을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고 말해 부실 설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도화엔지니어링 측은 "다양한 데이터와 여러 검증 과정을 거쳐 설계한다"고 말했으나 라오스댐 사고 원인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사진=도화엔지니어링 홈페이지 

◇ 댐·감리 전문가 "설계보다 시공·감리 문제"..."보조댐, 감리서 제외됐을 가능성도"

댐 개발사업 업체 대표이사 A씨 역시 비슷한 의견을 내놨다. A씨는 "설계에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며 "만약 공사 중에 댐이 무너졌으면 사고 원인이 설계 쪽으로 기울 수 있지만, 이번 상황은 그렇지 않았다"고 말했다.

A씨는 설계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시나리오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SK건설이 '저비용 고효율 설계'를 주문했다면 설계 업체는 정해진 예산 범위에서 작업을 진행할 수 밖에 없고 경우에 따라서는 최상의 설계를 끌어내지 못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이번 공사가 EPC(Engineering Procurement Construction· 사업자가 설계, 조달, 시공 등 모두 책임지는 사업 형태)방식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전혀 불가능한 시나리오는 아니라는 게 A씨의 설명이다.

그러나 만에 하나 설계가 잘못됐을지라도 시공 도중에 이를 발견할 가능성이 높고, 잘못된 설계를 변경한 다음에 공사를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A씨는 강조했다.

그는 "PMP(가능최대강수량)와 PMF(가능최대홍수량)를 반영하고, 여수로를 통해 수위조절을 잘했다면 댐이 무너지는 일은 절대 없다"며 "폭우가 와서 댐이 무너졌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건설업계에서 풍부한 경험을 갖고 있는 감리 업체 관계자 B씨의 의견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B씨에 따르면 기본적으로 환경영향평가를 통해 지반, 토질, 강수량 등을 조사한 뒤 현지 자연 상황에 맞게 설계가 진행되고 이후 감리와 시공이 동시에 이뤄진다. 사고가 발생하면 원인은 기본적으로 △설계 △시공·감리 △자연재해 등으로 나눌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부실한 설계로 인한 사고는 거의 없다고 한다.

그래픽=이석인 기자 silee@sporbiz.co.kr

더욱이 이번 사고 정황을 보면 ‘인재’로 볼 수 있는 근거는 충분하다는 게 B씨의 설명이다. 그는 "현지 자료가 없어 추측만 가능한 상황이지만, 여러 댐 가운데 하나만 무너진 것을 보면 시공·감리 문제 가능성이 큰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사고 원인이 인재로 밝혀지면 시공사는 물론 감리 업체 역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덧붙였다.

SK건설에 따르면 이번 라오스 댐공사의 감리업체는 태국의 라차부리(PNPC 출자사중 한 곳)와 벨기에의 트렉터벨이었다. 댐 공사의 감리를 책임진 두 감리업체 모두 이번 사고와 관련해 아직 어떠한 대응도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서 쟁점은 붕괴된 보조댐이 감리계약상 감리대상 구조물에 해당하는 것인지 여부다. 통상 수력발전 댐건설에서 주요 구조물은 본댐, 여수로, 그리고 가장 핵심공정으로 수로터널(수력발전용 물이 내려가는 터널)이다. 반면 보조댐은 주요 구조물이 아니라는 게 댐 건설 전문가의 해석이다. PNPC(라오스댐 건설 합작법인)가 이들 감리업체와 계약할 당시 보조댐을 감리 역무에서 제외했을 경우 감리업체는 책임에서 면할 수 있다. 시공사가 감리업체에 구조물 공정을 보여주지 않았을 가능성도 없지않다.

한편, SK건설 측은 유신과 도화엔지니어링에 설계를 맡긴 배경에 대해 "두 업체 모두 댐 설계에 관해 상당한 기술력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해 낙찰했다"고 설명했다. 설계가 사고 원인일 가능성에 대해서는 "현재 조사 중에 있어 말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했다.

이성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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