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법조계, 소비자 측 전문가 집단과 흔들리지 않은 감정기관 필요
"징벌적 손해배상 소송 접근 쉽도록 인지대 낮춰야"
주행 중이던 BMW 차량이 불에 타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한스경제 양인정 기자] BMW 자동차의 화재로 징벌적 손해배상에 대한 도입논의가 정치권으로 중심으로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실제로 발생한 손해액 외에 형벌적 배상금을 규정해 기업의 제조물책임을 강화하고 제조물 위험을 미연에 방지하자는 취지다. 제도취지와 도입의 필요성은 공감하고 있지만, 소송절차의 실효성을 거두려면 소비자 측 제반 사정이 갖춰져야 한다는 주장이 법조계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다.

입증책임 완화되면 소비자측 유리?...소비자 측 전문가 집단 많아져야

조태진 법무법인 서로 변호사는 “기존 손해배상제도가 과실만 있어도 손해배상이 가능했던 것과 달리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제도를 도입하더라도 상대 기업의 고의나 악의와 같이 확실한 의도를 밝혀내는 것이 소비자 입장에서는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법조계는 제도 도입만으로는 BMW 차량화재와 같은 사태가 발생해도 원활한 보상을 받을 수 없을 것이라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 때문에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단순히 손해액을 증액하자는 논의하는 수준에 그쳐서는 안되고 입증책임이 누구에게 있는 지를 반드시 명시해 놓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증명책임을 제조 기업에 전가시켜도 현실에선 소비자가 소송에서 그다지 유리하지 않다는 데 있다.

전자적 장치로 이뤄졌거나 고도의 기술을 포함된 제조물일수록 제조기업의 해명에 소비자가 대응하기 어렵다. 법조계에서 외국에서 시행중인 디스커버리(discovery) 제도의 도입을 주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디스커버리 제도는 본격적인 재판에 앞서 소송 당사자가 가진 모든 증거자료를 펼쳐놓고 공유하는 제도다. 재판에 앞서 사실관계를 확실히 파악할 수 있고 소송절차가 획기적으로 줄어드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펼쳐놓은 증거를 해석하고 분석하는 일엔 역시 소비자 측 전문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조 변호사는 "징벌적 손해배상은 주로 대기업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며 "이들 기업이 증명책임을 부담하더라도 인적, 물적 자원을 이용해 제조물 제작에 고의가 없는 것처럼 밝히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조 변호사는 이어 "대기업이 이렇게 제조물건의 하자 없음을 제시하면 그다음에는 소비자가 기업이 내놓은 근거를 반박해야 하는데, 소비자 측을 도울 전문가는 많지 않을 것"이라며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다양한 전문가 집단이 소비자를 뒷받침해야 실효성이 있다"고 제시했다.

전문적이고 이해관계 흔들리지 않는 감정기관 필요해

감정기관이 다양하지 않고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것도 문제다. 서초동 소재 법률사무소의 한 변호사는 이어 “기껏 어렵게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해도 기업이 내놓은 증거에 대해 이를 탄핵할 감정기관이 많지 않다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소비자가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경우 소송절차에서 결국 의지할 곳은 감정기관이다. 법조계는 우리나라 감정기관이 다양하지 않고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주로 대기업을 상대로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에서 감정기관이 이들의 입김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최근BMW 임원을 검찰에 고발한 시민단체 소비자주권시민회의의 한 관계자는 “소비자가 제기하는 소송에서 대기업의 로비에 감정기관이 흔들리지 않도록 입법 과정에서 제도적 보완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민 소비자, 거금 들여 소송 '엄두 못 내‘

민사소송 촉진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원고는 소장에 인지대를 첨부해야 한다.

높은 인지대로 문제가 발생사례도 적지 않다. 2014년 항공기 소음 피해에 대해 집단소송을 대리했던 한 변호사는 정부를 상대로 8300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하고도 인지대를 마련하지 못해 재판을 받아보지 못했다. 내야 할 인지대가 29억원을 넘었기 때문이다.

소비자가 제조기업을 상대로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하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인지대 규정을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천문학적인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이라면 집단 소송을 하더라도 인지대를 마련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것.

안창현 법무법인 대율 대표변호사는 “기업이 악의적인 방법으로 상품을 제작해 손해를 일으키고 사회적 파장이 예상되는 사안에는 인지 관련 규정에 예외를 인정해 소송 접근이 쉽도록 특별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양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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