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금융당국, 비소구 주택담보대출 전면도입
부동산 하락기...가계 붕괴 예방차원
시중은행 도입 유도에 은행들 난색
사진=연합뉴스

[한스경제=양인정 기자] 금융당국이 대출금 이하로 집값이 하락해도 하락한 집값만 책임지는 '비소구형 주택담보대출'(비소구 대출)을 정책모기지 상품 전체에 대해 확대 적용하기로 했다. 정부가 비소구 대출을 민간 은행으로 확대할 방침이어서 은행의 반발도 예상된다.  

금융위원회는 12일부터 보금자리론에 이어 적격대출에도 유한책임방식의 비소구형 담보대출을 도입한다고 10일 밝혔다. 적격대출은 장기고정금리 대출상품이다. 

비소구대출은 금융소비자가 대출이자를 연체하는 경우 담보인 주택만 경매로 넘어가고, 월급이나 금융자산 등 다른 소득·자산은 법적 강제집행을 당하지 않는 제도다. 

예컨대 금융소비자가 비소구 대출로 1억8000만원을 대출받아 3억원짜리 집을 산 경우, 빚을 갚지 못해 집이 경매로 넘어갔는데 주택가격이 1억5000만원으로 하락했다면 금융사는 1억5000만원만 회수하고 나머지 권리는 포기한다.

현행 제도는 대출한 금융사가 하락한 집값 1억5000만원을 회수하고 나머지 3000만원도 회수하기 위해 압류 등 법적절차를 동원해 금융소비자의 급여나 다른 자산 등을 강제집행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경기침체로 주택시장이 악화되는 경우 금융소비자가 이중고를 겪을 수 있고 가계의 건전성도 동시에 악화되는 문제점이 있다.  

미국과 일본 등 주택시장의 침체를 겪었던 주요 국가들은 비소구 대출을 점차 확대하는 추세다. 미국은 지난 1930년 세계 대공황 이후 비소구 대출을 도입했다. 현재 하와이, 캘리포니아, 아리조나, 네바다, 미네소타 주가 비소구 대출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앞서 금융당국은 취약계층을 위해 지난 2015년에 디딤돌대출에 비소구 대출을 시범 도입했고 올해 들어 보금자리론에 확대 적용했다. 금융위는 “적격대출까지 비소구 대출을 도입되면서 정책모기지 상품 전체가 비소구 대출이 됐다”고 밝혔다. 

무주택, 부부합산 7천이하 소득자 한해 적용

비소구 대출은 무주택자이면서 부부합산소득 7000만원 이하인 사람만 신청이 가능하다.

국토부에 따르면 2015년 12월부터 올 1월말까지 비소구 주담대 디딤돌대출 누적이용 건수는 약 1만5000건, 누적금액은 약 1조4000억원 규모다. 신청가능자의 약 74%가 비소구 주담대로 디딤돌대출을 이용하고 있다

비소구 대출의 이 같은 확대는 금리 인상기를 앞두고 가계 빚의 완충지대를 만들려는 정부의 의지로 풀이된다.

비소구 대출 개념도. 자료=금융위

정책모기지에 비소구 대출이 전면 도입되면서 이제 민간 은행까지 비소구 대출이 도입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최종구 금융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4월 가계부채관리 간담회에서 비소구 대출 제도를 정책모기지에 우선 적용하고 민간 은행도 제도의 도입을 유도하겠다고 밝혔다.

◆ 시중은행 확대... 은행 “정부, 리스크 나몰라라” VS “금융소비자 보호”

은행은 비소구 대출 도입에 부정적이다. 은행이 부실 리스크에 대비해 시중 금리를 임의로 인상할 수도 없고, 금융소비자가 담보대출을 받고 의도적으로 부도를 낼 수 있어 은행의 손실위험이 높다는 것이다. 여기에 비소구 대출이 금융소비자의 전략적 부도를 야기해 모럴헤저드를 부추긴다는 비판까지 가세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부동산 가격의 폭락으로 집주인들이 대출금 갚기를 포기해 도시 전체가 슬럼화 돼버린 미국의 사례를 들며 상품 도입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사정은 이렇지만, 정부가 민간 은행에 비소구 대출 도입을 유도하겠다고 천명하고 정책모기지 상품에 전면 도입하면서 민간 은행도 도입 시기를 저울질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다. 

은행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의 포용적 금융 정책을 공감한다”면서도 “정부가 민간 은행에 리스크가 높은 상품의 도입을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시중 은행이 떠밀리듯이 비소구 대출을 도입하면 상품 홍보에도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비소구 대출의 도입을 찬성하는 입장에서는 민간 은행의 이 같은 우려가 기우에 불과하다.

비소구 대출제도가 도입되면 집값이 하락해도 가계의 소비 여력이 일정 부분 유지돼 금융 위기가 닥쳐올 때 내수침체를 어느정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주택이 경매로 넘어가도 금융소비자가 채무 부담에서 벗어나기 때문에 경제활동 의지를 계속 유지할 수 있다는 주장도 같은 맥락이다. 

금융학계에서는 비소구 대출 상품의 도입으로 오히려 금융회사의 여신심사가 더 강화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은행이 우량하지 않은 금융소비자에 대해 비소구 대출을 거절하거나 미리 위험을 대출가격에 반영해 위험회피가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주택금융 전문가인 유승동 상명대학교 금융경제학과 교수는 “비소구 대출은 가계가 노출될 수 있는 잠재적 위험으로부터 금융소비자를 보호해 줄 수 있는 안전장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이어 “그러나 비소구 대출이 금융소비자 또는 은행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거나 불리한 제도라고 볼 수 없다”며 “금융소비자가 파산하고 집을 포기할 수 있는 선택권을 갖는 만큼 이에 합당한 비용을 은행이 사전에 부담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양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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