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광주형 일자리' 노조 반대 속 좌초 위기

정규직 노조 vs 비정규직 노조, 임금 격차 심화
현대자동차 노조가 '광주형 일자리'를 반대하며 투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스경제=박대웅 기자] '일자리는 정의로울까.'

최근 시동이 꺼진 이른바 '광주형 일자리' 논란을 지켜보며 든 생각이다. 2016년 한국노동연구원 자료를 보면 현대·기아자동차 노동자들의 평균 연봉은 9400만 원정도다. 반면 2·3차 부품 협력업체 노동자들의 임금은 말 그대로 최저임금이다. 이들의 임금 격차는 약 4배다. 현대·기아차 노동자들이 9400만 원을 받는 동안 1차 협력업체는 4900만 원, 2차 협력업체는 3300만 원, 사내하청 노동자는 2300만 원의 임금을 받았다.

쏘나타와 그랜저, K시리즈가 잘 팔린 게 현대·기아차 노동자들의 노력만은 아닌건 분명한 사실이다. 수많은 협력업체들이 다같이 힘을 보탰기에 가능했다. '광주형 일자리'는 이런 임금 격차를 해소하겠다는 취지로 2016년 첫 닻을 올렸다. 새 공장에서 나온 성과를 완성차 공장 직원과 협력업체 직원들이 다같이 4000만 원대 임금을 받으며 공유하자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노조는 극렬하게 반대했다. 현대차 노조가 속한 민주노총은 아예 협상 테이블에 앉지도 않았다. 그나마 부품업체 비정규직 노조가 다수 속한 한국노총이 노동계를 대표했다.

'광주형 일자리'는 지난 4일 중대한 변곡점을 맞았다. 현대차와 광주시가 잠정 합의안을 도출했다. 합의안은 5일 광주시와 지역 노동계, 시민단체 등으로 구성된 노사협의회 안건에 올랐다. 노사협의회를 통과한다면 6일 조인식을 갖고 '광주형 일자리'는 출항할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노사협의회는 지역 노동계의 강력한 반대를 뚫지 못하고 막판 수정안을 제시했다. 노동계는 '잠정 합의안이 노동자의 단체교섭권을 침해'하고 '저임금 노동 고착화를 이끈다' 등을 반대 이유로 제시했다. 현대차는 노사협의회가 제시한 3가지 수정안을 모두 거부했고, 광주형 일자리는 그렇게 동력을 잃고 표류했다.

이후 '귀족노조', '강성노조', 밥그릇노조' 등 노동계를 질타하는 숱한 뒷말들이 새어 나왔다. 국민들은 '연봉 3500만 원대, 주 44시간 근로'가 불합리하다는 주장에 동조하지 않았다. 단적으로 3일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대기업 154개, 중소기업 242개를 대상으로 4년제 대졸 초임을 조사한 결과 대기업은 평균 4060만 원, 중소기업은 2730만 원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록 이번 조사에서 인센티브는 제외됐다고 하지만 많은 이들이 '광주형 일자리'보다 못한 노동 환경에 노출된 상황에서 '광주형 일자리'가 저임금 노동의 고착화라는 노동계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노조의 긍정적인 부분을 부인하는 건 아니다. 다만 노조 역시 시대의 변화에 편승해야 한다. 노동현장에서 강경한 투쟁이 과거처럼 노동운동에 가시적 성과를 가져다 주는 시대는 지났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경제적 호황을 배경으로 가능했던 '최대한의 투쟁을 통한 최대한의 경제적 보상' 전략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IMF 체제' 이후 많은 것이 변했다. 저성장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졌다. 생존의 기로에서 허덕이는 기업이 늘었고, 기업의 생존에 자신의 생존을 저당 잡힌 노동자의 암울한 현실은 더 심화됐다.

현대차 노조원이 '광주형 일자리'를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 연합뉴스

'귀족노조'는 1997년 경제위기 이후 불거진 암담한 현실 속에서 나타났다. 자동차와 중화학공업 부문 노동자들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다른 이들의 희생이 필요하다는 냉혹한 현실을 깨달았다. 노조는 회사와 타협하지 않을 수 없었고, 조합원을 살리기 위해 비조합원을 차별했다. '노동자 계급의 단결을 추구한다'는 노조는 이제 옛말이 됐다. 1997년 경제위기 여파로 정리해고 문제가 화두로 떠오르자 현대차 노조는 극렬하게 반대했다.

비정규직 노조원들이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국가부도'라는 초유의 사태와 외국 자본의 노동유연화를 향한 거센 요구는 구조조정을 피할 수 없는 일로 만들었다. 결국 현대차 노조는 사원식당에서 근무하는 여성 노동자들의 정리해고를 인정해 주는 대가로 나머지 노동자들의 고용을 보장 받자 투쟁을 접었다. 인수·합병을 당한 기아차 노조 역시 고용 보장 약속에 투쟁의 마침표를 찍었다. 노조는 그렇게 노동자 계급 전체의 단결이 아닌 기업별 개별 노조로 살아남는 길을 택했다.

'광주형 일자리' 논란에서 보듯 1997년 위기 이후 형성된 정규직 노동자들의 '보호막'은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동안 정규직 노조는 임금 상승과 고용 보장 그리고 각종 혜택을 굳건히 지켰다. 반대로 같은 기간 국가부도라는 생사의 갈림길에서 탄생한 비정규직 노조는 아픔과 고통을 감수하며 희생했다. 노조 활동을 폄하한다는 비판 속에 일부 보수언론은 '귀족노조'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냈다. '귀족노조'라는 말로 노동운동의 '꽃'인 노조의 가치를 깎아 내리는 건 옳지 않지만 '연봉 1억'의 이면에 깔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통과 희생을 생각했는지 노동계는 되돌아 봐야 한다.

광주형 일자리와 귀족노조. 이 둘의 팽팽한 긴장 속에 노동계는 스스로 답해야 하지 않을까. 일자리는 과연 정의로운가.

박대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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