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대주주 경영 참여 안 한다지만, 굵직한 현안엔 영향력 끼칠 것"

[한스경제=이성노 기자] 현대중공업그룹이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업계 안팎에서 대주주인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의중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고 있다.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인수 협상을 보는 업계 안팎의 시선은 정 이사장에게 향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이 전문 경영인 체제로 운영되고 회사 측 역시 "대주주는 경영에 일절 참여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지만, 적어도 기업 인수 등 굵직한 현안에 대해서는 대주주의 목소리가 큰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중공업그룹이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업계 안팎에서 대주주인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의중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노조 "노동자 죽이고 대주주 위한 행보"·업계 "대주주 의견 반영됐을 것"

노조 측은 경영 악화를 이유로 최근 4년 동안 대규모 구조조정을 진행하면서 기업 인수 협상을 벌이고 있는 것은 노동자는 죽이고 대주주 일가만을 생각한 '비이성적 행보'라며 불신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노조 측은 정 이사장의 입김 여부에 대해 의심 아닌 확신을 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이번 인수는 대주주인 정 이사장이 추진한 것으로 100% 확신한다"며 "(인수가)확정된다면 사실상 국내 조선업계는 현대중공업 '빅1' 체제로 운영되는 것이며 이는 정부가 한 기업에 모든 것을 몰아주게 되는 꼴"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거대한 공룡을 키우는 것으로 현대중공업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며 "제3자 입장에서보면 정부는 특정 자본을 현대중공업에 퍼주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조는 그룹 최대 주주와 정부의 보이지 않은 커넥션이 작용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대주주 일가의 그룹 지배력은 물론 사적 편취를 위해 노조를 배제한 채 인수를 추진하는 것은 물론 향후 대규모 구조조정도 불가피하다는 게 노조 측의 설명이다.   

업계에서도 정 이사장의 입김이 작용했을 것으로 보고있다. 

대우조선해양 인수 합병 가능성은 오래전부터 거론돼 왔다. 업계 안팎에서도 국가 산업경쟁력 측면에서 '빅3'보다 '빅2'체제가 더 바람직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었다. 그동안 업계에서는 대우조선과 위치가 가까운 삼성중공업의 인수설이 꾸준하게 흘러나왔다. 

그러나 정작 뚜껑을 열어보니 대우조선해양 민영화의 주인공은 현대중공업이었다. 산업은행은 현대중공업과 먼저 협상을 시작했고, 최근에야 삼성중공업에 같은 조건을 제시했다. 업계 안팎에서는 산업은행이 삼성중공업을 배제하고 현대중공업과 지난해 10월부터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들리고 있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조선업계에서는 빅2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공감대는 이미 오래전부터 형성돼 있었다"며 "상대적으로 조선 비중이 높고, 자금부담 감당 여력도 좋아 현대중공업과 먼저 이야기를 시작했을 뿐이다. 이후 삼성중공업에도 똑같은 조선을 제시했기 때문에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고 밝혔다. 

산업은행이 업계 예상을 깨고 현대중공업과 먼저 협상을 시작한 것을 두고 업계 한 관계자는 "정 이사장이 경영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대주주로서 인수에 적극적인 관심을 나타냈고, 이것이 현실화 된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예상했다. 

현대중공업과 산업은행은 이번 인수 배경에 정 이사장 입김 여부에 답을 회피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이번 인수와 관련해 대주주 의사 반영 여부는 산업은행이 알 것"이라고 말했고, 산업은행 관계자는 "알 수 없는 부분으로 현대중공업에 문의할 문제"라며 서로에게 답을 떠넘겼다.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한다면 잃는 것보다는 얻는 게 더 많다는 것이 업계 안팎의 중론이다. /사진=연합뉴스 

◆ 현대重, 대우조선해양 인수 황금알 될까?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한다면 잃는 것보다는 얻는 게 많다는 것이 업계 안팎의 중론이다. 
 
먼저, 이번 인수가 현실화된다면 현대중공업은 말 그대로 '매머드급' 글로벌 조선사로 거듭나게 된다.  

영국의 조선·해운 분석기관 클락슨 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수주잔량 1위는 1만1145CGT(표준화물선 환산톤수)를 보유한 현대중공업그룹이고 대우조선해양이 5844CGT로 2위다. 두 회사의 수주잔량을 합치면 1만6989CGT로 3위인 일본 이마바리(5253CGT)보다 3배 이상 차이가 난다. 

LNG(액화천연가스) 운반선에선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게 된다. 

지난해 한국 조선사는 7년 만에 국가별 연간 수주실적 1위를 달성했다. 선박 발주량(2860만CGT)은 전년(2813만CGT)과 비교해 큰 차이는 없었지만, LNG선 수주를 싹쓸이하며 중국을 제쳤다. 

클락슨에 따르면 지난해 전세계에 발주된 LNG운반선 65척 가운데 한국 조선사들은 69척을 수주했다. 현대중공업그룹이 29척, 대우조선해양이 18척, 삼성중공업이 18척을 각각 수주했다. 단순한 수치로 보면 현대중공업그룹과 대우조선해양이 전세계 발주량 가운데 70%를 수주한 셈이다. 

클락슨은 올해부터 2027년까지 매년 60척 이상의 LNG선이 발주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산업연구원 역시 올해 조선업 수출은 고가에 수주받은 LNG선 건조량과 생산량이 늘면서 13.8%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업계 한 관계자 역시 "국내 조선사들의 LNG선 독점은 꾸준할 것으로 전망된다"며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을뿐 아니라 마땅한 경쟁국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조선업계 글로벌 1, 2위 기업 합병으로 출혈경쟁·저가수주 문제가 완화되는 등 수익성 개선 효과에 주목하고 있다. 

유승우 SK증권 연구원은 "(국내 조선업계가)2사 체제로의 재편은 궁극적으로 공급과잉 이슈와 빅3간 출혈경쟁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호재"라고 말했다. 

정성립 대우조선해양 사장 역시 지난해 6월·10월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빅2'로 가는게 국가 산업 경쟁력 측면에서 맞다"고 밝힌 바 있다.  

한영석·가삼현 현대중공업 공동대표이사 사장은 "중복투자가 제거돼 투자 효율성이 대폭 높아지고 절감된 투자 비용을 다른 곳에 투자한다면 기술경쟁력이 최소 두 배 이상 높아지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며 "구매 물량 증대로 가격 경쟁력이 좋아지고 선박용 엔진과 선박 애프터서비스 분야, 현대일렉트릭 등에서도 시너지 효과가 생길 것"이라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 역시 이번 인수 추진 배경에 대해 "세계 1, 2위 기업의 합병으로 시너지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며 "최근 업황은 회복하는 추세로 양사는 세계적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어 2020년 환경규제 이후에도 많은 수주가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넘어야 할 산도 분명하다. 

이번 최대 13조원 이상의 공적자금이 투입된 대우조선해양 매각은 산업은행이 현물출자 및 대우조선해양 앞 유상증자를 전제로 진행된다. 산업은행이 대우조선해양 지분(56%)를 매각하면서 현금이 아닌 조선통합법인 주식을 받는다. 우선주와 보통주를 합쳐 2조800억원 규모로 지분율 18% 현대중공업에 이은 2대 주주가 된다. 전형적인 구주(舊株) 매각 방식으로 경영권 프리미엄도 없다. 일부에서 헐값 매각 논란을 제기하는 이유다.    

또한, 삼성중공업을 배제한 채 진행된 우선 협상, 고용 안정을 요구하고 있는 노사 반발, 전 세계 경쟁 당국의 기업결합 심사도 풀어야 할 과제다. 

이성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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