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스포츠경제=정진영 기자] 국내 대중음악계에서 '포크의 전설'로 불리는 가수 이장희. 여전히 날짜까지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는 1975년 12월 2일 '대마초 파동' 이후 그는 음악계를 떠났다. 은퇴 후 자연과 더불어 살겠다는 바람을 키우길 20여 년. 운명처럼 울릉도의 아름다움에 빠졌고, 그곳에 새로운 둥지를 틀게 됐다. 그곳에 울릉천국이라는 공연장이 생긴 건 지난 해 여름이다. 50여 년 음악 친구들과 함께한 울릉천국에서의 공연은 이장희에게 자신이 얼마나 음악을 잘하고 좋아했는지 깨닫게 했다.

-오랜만에 서울에서 공연을 하게 됐다.

"울릉도에서 살다가 작년에 울릉천국이란 걸 경상북도에서 지으면서 다시 음악을 하게 됐다. 지을 때만 해도 사실 시큰둥했는데, 막상 짓고 보니 좋더라. 내가 활동을 하던 1970년대에는 대부분의 레코딩을 우리들이 알아서 했다. 그 때 음악을 같이 하던 친구들과 이렇게 같이 울릉천국에서 공연을 하고 그러는 게 참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그러다 이번에 서울에서도 좋은 기회가 생겨 공연을 열게 됐다."

-울릉도에 정착하게 된 이유가 있나.

"늘 은퇴를 하면 대자연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 자연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여행도 많이 다녔다. 은퇴 후에 대해 생각을 하면서 알레스카에서 지내면서 겨울엔 하와이에서 지내면 어떨까도 했다. 그러다가 1996년에 울릉도에 방문하게 된 거다. 마치 초등학교 때 배웠던 러시아 문학의 한 장면 같았다. 호숫가에 집을 짓고 노년의 아름다움을 즐기면서 흔들의자에 앉아 있고, 여자는 옆에서 뜨개질을 하고. '아, 내가 은퇴할 곳은 하와이나 알레스카가 아니라 울릉도구나' 싶었다. 그래서 울릉도에서 살게 됐다."

-부지 일부를 기증한 울릉천국이 완공되고 공연도 열었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은데.

"전 세계 어디든 북방구는 5월이 가장 아름다운 것 같다. 꽃도 많이 피고 덥지도 않다. 작년 5월에 나랑 음악하는 친구들 조원익, 강근식과 울릉천국에서 공연을 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호응이 좋았다. 관광객들도 많이 왔고 좋은 시간을 가졌다."

강근식, 이장희, 조원익(왼쪽부터).

-공연과 TV 프로그램 등으로 재조명되면서 이장희의 음악에 새롭게 관심을 보이는 젊은이들도 많아졌다.

"젊은 사람들이 내 음악을 좋아한다는 사실이 의심스럽다. (웃음) 노래라는 건 시대와 떨어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하는 유행가는 시대를 같이 타고 넘어간다. 개인적으로는 나와 같은 시대를 보낸 사람들이 내 콘서트에 오는 것 같다. 우린 늘 지나간 시절은 아름답다고 하고 현실을 괴로워하잖나. 공연에 온 관객들을 보면 우리가 함께 그 시절을 추억하는 느낌이다."

-KBS2 '불후의 명곡' 등에서 후배들이 과거 히트 곡들을 리메이크했는데.

"젊은 친구들 보면 노래 참 잘한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한창 활동했을 때와 차원이 다른 것 같다. 편곡도 잘하고 아주 프로페셔널하다. 나와 다른 시대를 살고 있으니까 내게는 약간 이질적이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음악적인 내용을 보면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후배들을 보면서 '이렇게 우리나라 음악이 발전했구나' 한다."

-강근식, 조원익 등 50년 지기들과 함께 공연을 하고 있는데.

"음악이라는 유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본다. 지금 만나도 서로 딱 통한다. 음악이라는 건 말도 필요 없는 거다. 또 우리 셋 다 술을 좋아한다. 술 한 잔 마시면서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종종 갖는다. 이런 것들 덕에 칠십이 넘어서까지 이어져올 수 있었다."

-쎄시봉 멤버들과 공연할 계획은 없나.

"쎄시봉 친구들과 개인적으론 굉장히 친하다. (웃음) 전에 프로그램을 한 번 하고 나서 (공연을) 같이 하자는 이야기가 나오긴 했다. 근데 그 때는 내가 그렇게 노래를 흥미로워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또 내 노래 스타일이 그 친구들과 같이 화음을 넣어서 하는 그런 스타일이 아니다. 예전에도 개인적으로 친하게 지내고 매일같이 만나곤 했지만 공연은 어쩌다 한 번 할 수 없으면 하고 그런 정도였다. (웃음)"

-일흔 넘어 다시 도전을 하는 느낌인데.

"이제 뭐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었다고 본다. 나이가 70이 넘었다. '황혼'이라고 하면 붉게 타는 해가 생각나지 않나. 안온하고 아름다우면서도 쓸쓸하고 허무하기도 하다. 이런 복잡다단한 마음을 노래로 하고 싶다. 그게 꿈이다. 제대로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웃음)"

사진=PRM 제공

정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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