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쇼8' 공연 장면.

[한국스포츠경제=정진영 기자] 슈퍼주니어는 콘서트 오프닝 멘트에만 15분 37초를 썼다. 곡 수로 따지자면 3곡에서 5곡까지 소화할 수 있는 시간이다. 그렇다고 특별한 할 얘기가 있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슈퍼TV'의 한조각을 떼어낸 듯, 농담처럼 진담처럼, 예능처럼 실제처럼 멤버들끼리 대화를 나눴을 뿐이다.

결론적으로 슈퍼주니어의 이번 단독 콘서트 '슈퍼쇼8: 인피니트 타임' 서울 공연의 러닝타임은 3시간 30여 분이었다. 보통 많은 다른 가수들에 비해 1시간 여는 더 긴 시간이다. 규현은 콘서트에서 "초대한 지인이 (공연이 길어서) 엉덩이가 아팠다고 하더라"고 했다. 그러면 멘트를 줄일 법도 한데 그렇지도 않다. "계속 앉아 있으면 엉덩이가 아프니까 중간중간 일어서서 공연을 보라"며 이걸 가지고 또 한참 장난을 친다. 이쯤되면 이런 말이 나온다. '역시 슈퍼주니어.'

슈퍼주니어는 이번 공연에서 14일 오후 6시에 발매되는 정규 9집 '타임슬립'의 수록 곡들 무대를 다수 공개했다. 타이틀 곡 '슈퍼 클랩'을 비롯해 선공개곡 '아이 띵크 아이'까지, 수록 곡들 면면이 재미있다. 절도 있는 안무부터 댄스 스포츠의 동작을 가미한 퍼포먼스까지 변화무쌍하고, 그래서 산만한가 싶다가도 이내 매료된다.

슈퍼주니어 멤버 시원, 예성, 은혁, 이특, 규현, 려욱, 동해, 신동(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이런 그룹의 특성은 데뷔 때부터 있었다. 슈퍼주니어가 데뷔했던 2000년대 초반 당시로선 그룹 멤버가 10명이 넘는 경우가 없었다. 방송국에 가면 음악 프로그램당 배치된 마이크 수가 최고 7개 정도였던 시절이었다. 13명으로 데뷔한 이 그룹은 무대를 하면서 중간에 마이크를 서로 건네 받아야 했다. 인이어가 없어 발소리로 안무 합을 맞췄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누구는 장난처럼 여겼던 다인원 그룹. 그래서인가 예능에 녹아드는 것도 자연스러웠다. 청소년 베스트 선발 대회 개그 부문에서 수상한 신동을 필두로 리더 이특과 멤버 희철, 은혁까지 많은 멤버들이 데뷔 초기부터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에 고정으로 출연했다. 시원은 '슈퍼쇼8' 개최 기념 기자 간담회에서 이 같은 사실을 언급하며 "아이돌이 예능 MC를 맡는 경우가 흔치 않았다.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다.

이런 이야기를 한 시원 본인은 일찍부터 연기자로 활동했다. KBS2 종영극 '부모님 전상서'를 시작으로 '열여덟 스물아홉', '봄의 왈츠', MBC 종영극 '향단전' 등을 거치다 2015년 MBC 종영극 '그녀는 예뻤다'의 나사 하나 빠진 듯한 에디터 김신혁 역을 맡으며 시청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후 tvN 종영극 '변혁의 사랑', KBS2 종영극 '국민 여러분!' 등에 출연하며 연기자로서 안정적인 입지를 다졌다.

유닛도 그 어느 그룹들보다 많다. 중국을 중심으로 활동한 슈퍼주니어-M 규현, 려욱, 예성 등 보컬 멤버들로 구성된 슈퍼주니어-K.R.Y., 1986년생 동갑내기 동해와 은혁으로 구성된 슈퍼주니어-D&E, 이벤트성 유닛에 가까운 슈퍼주니어-HAPPY, 아이돌 그룹 사상 최초일 트로트 유닛 슈퍼주니어-T까지. 이 같은 다양한 유닛들은 슈퍼주니어가 다멤버 그룹의 특성을 살려 얼마나 열심히 자신들의 영역을 확장하고자 노력했는지를 증명하는 하나하나의 기록이다. 이런 사이 막내였던 려욱은 뮤지컬 배우로 성장했고, 추후에 합류한 진짜 막내 규현은 '광화문에서'라는 메가 히트 곡을 가진 당당한 솔로 가수로 자리매김했다. 규현은 최근 MBC 예능 프로그램 '복면가왕'에 출연, 남성 아이돌 그룹 멤버 사상 최초로 가왕 타이틀을 거머쥐며 그 실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당초 1년마다 멤버가 물갈이되는 로테이션 시스템을 가지고 데뷔했던 슈퍼주니어는 이제 레이블SJ라는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레이블을 가진 SM엔터테인먼트의 큰 어른이다.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도 자신들의 가능성을 입증하기 위해 노력하고 끝내 성공한 경험은 슈퍼주니어란 그룹의 안에 해학의 DNA를 남긴 듯하다. 웬만한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고 오히려 이를 유머로 승화하는 건 슈퍼주니어만이 가능한 일이다.

서로 다른 멤버들의 성향과 여기에서 비롯되는 산만함은 '시끄럽다'는 느낌과 조금 다르다. 다른 이들과 달랐던 슈퍼주니어만의 정체성을 포기하지 않고 지켜왔던 이들은 멤버 사이에 있어서도 서로의 다름을 교정하려 들지 않고 방관하거나 농담 삼는다. 그래서, 달라도 너무 다른 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목소리를 낼 때, 이는 산만하지만 아름답다는 느낌을 준다.

연기자로서 진지하게 활동하고 있는 시원은 그룹 활동을 할 때도 그런 기조를 유지하고, 다른 멤버들은 그에게 "장래희망이 국회의원", "노 챌린지, 노 체인지"(도전하지 않으면 변화도 없다는 뜻의 영어 표현으로 시원이 최근 자주 쓴다고 한다)라고 한다. 놀리면서도 그 정체성을 지켜주는 것이다. 비교적 다른 멤버들에 비해 예능 프로그램 출연이 잦지 않은 동해의 경우 그런 어설픔이 놀림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번 기자 간담회에서도 역시 동해는 초반 말을 버벅였고, 은혁을 필두로 멤버들은 "아직 말 시키면 안 될 것 같다", "부팅이 덜 된 것 같다"며 장난을 걸었다. 시원과 려욱이 서로 다른 성향으로 다퉜던 일은 "자신있어!"라는 유행어를 남기며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됐다.

슈퍼주니어는 벌써 올해로 15주년을 맞았다. 멤버수가 많아 첫 멤버의 입대를 시작으로 마지막 멤버가 제대하기까지 무려 10여 년이 걸렸다. '슈퍼쇼8'의 부제인 '인피니트 타임'은 '군백기'를 끝낸 슈퍼주니어가 팬들에게 "더 이상 떨어지는 시간은 없을 것"이라고 하는 약속이다. 그 어떤 그룹보다 오랜 '군백기' 속에서도 특유의 산만함으로, 또 조화로움으로 자신들의 자리를 지켜온 슈퍼주니어. 재미있게도, 이 15년차 중견 그룹은 앞으로가 더 기대된다.

사진=레이블SJ 제공

정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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