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승에서 금빛 발차기를 하는 김소희. /사진=연합뉴스

[한국스포츠경제 김지섭] 밖에 나갔다 집에 들어온 소녀의 흰 옷은 검은 옷이 됐다. 공부보다는 운동, 교실에 앉아있기보다는 산에서 개구리를 잡는 것이 더 즐거웠다. 거추장스럽다며 치마를 입지 않고, 고무줄 놀이도 재미가 없어 운동장에서 공을 차고 놀았다.

그러나 어린 시절에는 새벽마다 코피를 쏟고 응급실에 실려 가는 일이 잦았다. 기계체조 선수 출신 아버지(김병호씨)는 딸의 건강을 위해 태권도를 권유했다. 단지 운동이 좋았던 꼬마는 훌쩍 커 태권도로 세계 최정상에 올랐다.

김소희(22ㆍ한국가스공사)가 처음 출전한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김소희는 18일(한국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파크의 카리오카 아레나3에서 열린 리우 올림픽 태권도 여자 49㎏급 결승에서 티야나 보그다노비치(세르비아)를 7-6으로 꺾고 이번 대회 한국에 7번째 금메달을 안겼다.

김소희를 세계 정상으로 이끈 원동력은 강철 체력이다. 서울체고 시절부터 웬만한 마라톤 선수보다도 심폐 지구력이 좋았던 김소희는 남자 태권도부 선수들에게도 체력만큼은 절대 지지 않았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손태진 KBS 태권도 해설위원은 “고등학교 때 체력이 남자 선수들보다 좋았다”고 설명했다.

김소희의 서울체고 은사 김맹곤 태권도부 감독은 “훈련할 때 400m 트랙을 전력으로 7번 넘게 돌려 3,000m를 뛰게 했는데도 전혀 지치는 기색이 없었다”며 “워낙 잘 뛰는 선수라 ‘산소통’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고 말했다. 김소희는 마라톤 대회에 학교 대표로 출전해 3위에 오르기도 했다.

강한 체력이 뒷받침된 김소희는 될성부른 떡잎이었다. 고교 시절인 2011년 경주 세계선수권대회 여자 46㎏급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2013년 멕시코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같은 체급 2연패를 달성했고,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46㎏급에서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실력은 세계 정상급이었지만 올림픽 무대에 오르기까지는 쉽지 않았다. 한 편의 드라마 같았다. 김소희의 원래 체급은 46㎏급이다. 그러나 올림픽은 남녀 4체급씩 8체급으로 나눠 치른다. 여자는 49㎏급, 57kg급, 67kg급, 67㎏초과급으로 구분된다.

게다가 태권도는 특정 국가의 메달 쏠림 현상을 막기 위해 2012년 런던 올림픽까지 한 나라에서 남녀 2체급씩, 총 4체급에만 출전을 허용했다. 그동안 한국 여자 태권도는 단 한 번도 49㎏급에 선수를 내보내지 않았다.

그러나 세계태권도연맹(WTF)이 출전 규정을 바꾸면서 김소희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이번 리우 올림픽부터 체급별로 세계 랭킹 6위까지 출전권을 주면서 체급당 1명, 국가당 최대 8명씩 출전이 가능해졌다. 행운도 따랐다. 김소희는 지난해 12월 멕시코에서 열린 월드그랑프리 파이널까지 랭킹 7위였으나 6위 안에 태국 선수가 2명이 드는 바람에 기적같이 리우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리우에서도 시상대 맨 위에 오를 때까지 매 순간 손에 땀을 쥐게 만들었다. 8강전부터 결승전까지 모두 1점 차 승리였다. 고비였던 파니파크 옹파타나키트(태국)와 8강전에서 마지막 3라운드 종료 4초 전까지 2-4로 끌려가 패색이 짙었으나 3점짜리 머리 공격에 성공해 6-5 짜릿한 역전승을 거뒀다. 준결승전에서는 야스미나 아지즈(프랑스)와 연장 승부를 벌인 끝에 1-0으로 이겼다. 결승전에서도 막판 상대의 공세에 밀려 7-6으로 진땀승을 거뒀다.

힘겹게 금빛 발차기를 완성한 김소희는 “정말 한 경기 한 경기 다 힘들었다”며 “우리나라 금메달이 6개였는데 ‘러키 세븐’이 될 수 있도록 자기 전에 기도를 했고, 이뤄졌다”고 기뻐했다. 이어 “올림픽에 나가기까지 힘들었지만 1등을 해 기쁘다”면서 “부모님에게 꼭 금메달을 안겨드린다고 약속했는데 진짜 걸어줄 수 있어 행복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남자 태권도 김태훈(22ㆍ동아대)은 앞서 열린 58㎏급 동메달 결정전에서 카를로스 루벤 나바로 발데스(멕시코)를 7-5로 제압하고 동메달을 따냈다.

김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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