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 리그 경기가 열리고 있는 서울 잠실구장. /OSEN

[한스경제=이정인 기자] 국내에 야구를 처음 소개한 사람은 미국인 필립 질레트(한국명 길례태)다. 미국 출신의 선교자이자 횡성 YMCA 창설자 겸 초대 총무였던 그는 장비를 들여와 1904년 봄부터 황성기독청년회(YMCA 전신) 회원들에게 야구를 가르쳤다. 이것이 공식적인 한국 야구의 출발점이다. 그때 질레트는 먼 미래에 한국 야구가 자신의 조국인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관심을 받게 될 줄 상상이나 했을까.

위기는 곧 기회라고 했다. 한국 야구는 전 세계를 휩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만들었다. 한국 프로야구 KBO 리그는 코로나19 사태를 극복하고 지난달 대만 프로야구(CPBL)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개막했다. 

KBO 리그를 바라보는 세계인의 시선은 달라졌다. 미국 스포츠 전문 채널 ESPN은 지난달 5일 개막전부터 매일 한 경기씩 KBO 리그 경기를 미국 전역에 생중계하고 있다. 처음 ESPN이 KBO 리그 중계를 시작할 때만 해도 반신반의했다. 대부분의 한국 야구팬은 “저러다 말겠지”라고 생각했다. 

KBO 리그가 미국 9개 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로 꼽혔다. /sportsbetting.ag 트위터

그러나 시즌을 시작한 지 한 달이 지난 현재 KBO 리그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뜨겁다. 야구 본고장 미국에서 한국 프로야구 콘텐츠가 통하고 있다.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의 개막이 연기되면서 야구에 굶주렸던 미국 야구팬들은 KBO 리그 중계를 보며 열광한다. 온라인 스포츠베팅 사이트인 ‘sportsbetting.ag’가 5월 한달간 10만 건 이상의 트위터 데이터를 분석해 미국 각 주(州) 사람들이 가장 즐기는 스포츠를 조사한 결과, 무려 9개 주에서 KBO 리그가 가장 인기 있는 라이브 스포츠로 나왔다. 

미국 매체 ‘월스트리트저널’은 ‘(아이돌 그룹) BTS, (영화) 기생충에 이어 한국야구까지’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KBO 리그를 조명했다. 이 매체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국인들은 한국 상품에 관해 삼성 휴대폰, 현대 자동차 정도만 알았지만, 이제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면서  "이제는 또 다른 한국산 문화 수출품이 미국에 도착했다. KBO 리그는 얼떨결에 미국 시장에 진출했는데, 현재 지구에서 가장 주목 받는 프로야구 리그가 됐다"고 전했다.

KBO 리그는 미국 내 인기에 힘입어 전 세계로 뻗어 나가고 있다. ESPN은 한국 야구에 대한 세계 각 국의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지난달 말부터 미국 외 지역까지 KBO 리그 중계방송 권역을 확대했다. 캐나다, 멕시코 등 미주 전 지역과 네덜란드 등 유럽 전 지역, 아시아 일부 지역, 중동과 아프리카 전 지역의 ESPN 채널 네트워크를 통해 한국프로야구가 생중계로 전파를 타고 있다.

잠실구장에서 방역 작업이 펼쳐지고 있다. /OSEN

KBO 리그가 지구촌에서 가장 인기 있는 프로스포츠가 된 것은 세계적으로 인정 받은 ‘K-방역’ 덕분이다. KBO 리그는 코로나19로 인해 개막이 늦어졌지만 선진 방역의 우수성을 과시하며 세계 대다수 리그가 중단된 가운데 팬들을 찾았다. 미국, 일본과 달리 KBO 리그는 선수와 관계자 중 코로나19 확진자는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KBO 리그의 철저한 방역 체계는 세계 프로스포츠의 ‘뉴노멀(새로운 표준)’이 됐다. 미국 야후스포츠는 "메이저리그는 좀 더 KBO 리그를 보고, (방역체계 등을) 배우면서 전략을 세워야 한다. 조금 더 기다린다면 리그 재개에 대한 낙관적인 이야기가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새로운 한류 열풍의 주인공이 된 KBO 리그는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한국 야구의 산업화와 세계화를 꿈꾸는 KBO와 10개 구단은 외수시장 개척을 위한 첫발을 뗐다. KBO는 해외 홍보와 마케팅 확대를 준비하고 있다. 최근 KBO 리그의 ‘굿즈’를 판매하는 KBO 마켓의 영문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제 해외 팬들은 간편한 결제 시스템을 통해 해외 배송까지 받을 수 있게 됐다. KBO는 “대한민국 대표 프로스포츠 콘텐츠인 KBO 리그를 해외에 널리 알리고, 새로운 시장 개척을 위한 기회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역을 표기하는 줄임말과 팀 이름이 같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의 야구팬들의 지지를 받은 NC 다이노스는 노스캐롤라이나주를 연고로 하는 미국 프로야구 트리플A 구단 더럼 불스와 손잡고 공동 마케팅을 시작했다. 손성욱 NC 마케팅 팀장은 “더럼 불스와 지속적으로 다양한 의제로 의견을 주고받고 있으며, 현재 확정된 내용뿐 아니라 추후 다양한 영역에서 함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NC뿐만 아니라 삼성 라이온즈도 뉴욕 양키스 산하 싱글A팀 찰스턴 리버독스와 손잡고 공동 마케팅을 추진 중이다.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는 K-볼의 선두주자로 우뚝 선 한국 야구가 새로운 지평을 열어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이정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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