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연기 우송대학교 SW중심대학사업단장/한국정보통신보안윤리학회회장

팬데믹의 원조는 남유럽에서 시작되어 유럽인구의 1/3을 숨지게 한 14세기 ‘흑사병(black death)’이다. 역사에 의하면 흑사병은 당시 유럽의 크고 작은 전쟁을 종식시킴은 물론 문명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았다.

그 결과는 어떠했는가? 봉건제도가 몰락하고 도시자본가가 나타나면서 자본주의가 출발하게 되었으며, 전염병 창궐에 무기력했던 교회의 권위가 흔들리며 르네상스라는 새로운 문명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민족의 개념이 싹트고 인간 중심의 사상이 출현했으며, 노동력 부족이 임금 상승과 농민 폭동으로 이어지면서 사회 경제적 일대 변혁을 가져왔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러한 인류사적 발전 과정에서 가장 큰 피해를 받은 이들은 바로 당시 사회의 비주류 계층들이었다. 사회적 포용 정책이 부족했던 당시 그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은 르네상스라는 찬란한 이름 뒤에 고스란히 가리워져 있다.

1930년대 전 세계를 휩쓴 세계경제 대공황 역시 사회적 약자들에게는 가혹하기 이를 데 없는 변혁의 과정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정부의 적극적인 시장 개입과 경제적 포용정책들이 등장하였다. 기존의 경제정책을 전면 수정하는 일명 케인지언정책(Keynesian policy)에 따른 경제 활성화가 적극적인 재정투입이란 형태로 나타났으니,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뉴딜 정책’의 출발점이다.

뉴딜의 핵심은 광범위한 일자리 창출과 경제적 소비 주체의 복원을 그 핵심으로 하고 있다. 급격한 사회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일자리를 잃고, 교육에서의 소외가 사회적 활동을 단절하게 하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 것이다.

마침내 미국은 뉴딜 정책의 성공을 발판으로 세계최고 강대 국가로 도약해갈 수 있었다.

앞선 두 사례에 버금가는 새로운 위협요소가 2020년 우리에게 코로나19라는 이름으로 다가왔다. 사람들은 집 밖으로의 외출이 금지되었고 일자리는 사라졌다. 분주히 세상을 움직이던 톱니바퀴가 일시에 멈추면서 각국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패닉에 빠진 채 각자도생에 급급하였다.

문제를 해결하는 효과적인 방법 가운데 한가지는 과거의 예를 살피는 것이다. 그렇다. 앞선 두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문제 해결을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한 시점이 다가 온 것이다.

우리나라를 스마트 사회로 도약시킴으로써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질서를 주도하겠노라는 선언, 이른바‘한국판 뉴 딜’을 7월 14일 공개한 것이다.

뉴딜이라는 용어와 정책 기조는 해외에서 차용했을지언정 한국판 이라는 말의 의미를 잘 살리는 것이 이번 정책의 핵심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우리가 해냈고”"잘 할 수 있는” 지능 정보화 산업을 정책의 드라이버로 선택했다. 코로나19로 나타나고 있는 최근의 문제는 사실 우리가 스마트 사회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겪어야 할 사회구조 변화에 따른 몸살을 일찍 드러낸 것에 다름 아니다.

이번 코로나19 확산의 가장 큰 요인은 결국 사람에게 있기 때문에, 현재 관리 및 운영 시스템 자체가 가지고 있는 근본적 문제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제 정부, 기업 모두 효율을 지고의 가치로 여기는 현재의 방향에서, 효율은 다소 떨어지더라도 리스크를 줄이는 쪽으로 방향을 바꿔야 한다. 또한 스마트화가 가속되는 만큼 산업 생태계가 재구성될 것이다. 이번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한계 기업(marginal firm)이 정리되면서 펀더멘털(기초체력)과 혁신성이 강한 기업을 중심으로 산업 전반이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

과학 기술적 관점에서는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우리 사회에서 스마트 워크, 원격 의료, 무인자동차 등 새로운 기술에 대한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위기가 닥치고 변화가 요구될 때가 중요하다. 혁신을 적극적으로 선택한 국가와 그렇지 않은 국가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간극이 생겨나게 될 것이다.

경제적 자원과 사회적 자본(인간관계)의 확대되는 양극화에 대한 대비 또한 반드시 필요하다. 코로나19 여파로 영세 자영업자들의 몰락이 가속화되고, 불안정한 고용에 노출된 이들에 대한 해고가 확대되고 있다. 그 결과는 빈곤층의 확대로, 이는 다시 사회 불안의 확산이라는 악순환의 고리가 완성되지 않도록 충분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금융 대출을 확대하고 무분별한 해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감시·감독을 강화해야 한다.

또한 사회적 거리 두기, 비대면 문화의 확산으로 활동 반경이 축소되면 이미 사회적 자본이 부족한 독거노인, 저소득층, 소수자 집단 등 사회적 약자의 고립과 소외는 더욱 심해질 수 있다. 이들에 대한 심리상담 지원, 자원봉사자와의 연계, 사회복지사의 정기적 방문 확대 등을 통해 사회적 관계와 안전망을 유지하기 위한 지원 또한 필요하다.

코로나19에 가장 모범적인 대처를 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 받고있는 대한민국의 현 시스템들은 20여 년 전 정보화시대 도래를 위한 준비라는 혜안(慧眼)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대한민국 전체에 초고속 정보통신망(Information superhighway)을 깔아서 선도적인 ‘지식정보 강국’의 기틀을 마련했던 확고한 비전과, 이를 위한 체계적인 실천이 있었기에 코로나19라는 미증유의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키는 시도가 가능한 것이다.

이제 대한민국은 위기와 불확실성이 일상화되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이에 정부에서는 한국형 뉴딜, 스마트 뉴딜을 선포하고 구제적인 시행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전 산업에 걸친 디지털화를 주도하고자 스마트 제조·서비스, DNA, Big3 등 혁신기반 조성 및 3대 신산업 육성 등을 추진함으로써 코로나19 위기 극복의 핵심 전략 자산으로 활용하게 될 것이다. 산업 전반의 디지털 역량을 한층 업그레이드하고, 양질의 일자리를 대규모로 창출하여, 궁극적으로 “선도형 경제로 전환”하는 발판을 마련하고자 하는 것이다.

한국판 뉴딜이 소기의 성과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뉴딜의 취지에 부합하는 사업을 올바로 선정하고 적시에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부 주도의 일방적 드라이브가 아닌, 민간의 참여를 유도하고 시너지 효과, 일자리 창출효과가 큰 사업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한정된 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선택과 집중을 통해 대한민국 전반의 생산성과 경쟁력을 제고하는 혁신 인프라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람’과 ‘디지털 포용’에 대한 투자가 병행되어야 한다. 디지털사회로의 전환 과정에서 새로운 차별이 발생하지 않도록 취약계층에 대한 배려는 반드시 필요하다. 대-중소 기업간ㆍ개인간 디지털 격차(digital divide) 완화, 사각지대 해소 등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는 과정에서 “포용적 회복(inclusive resilience)”을 위한 투자는 미래의 사회적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아마도 가장 경제적인 투자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손연기 우송대학교 SW중심대학사업단장/한국정보통신보안윤리학회회장

저작권자 © 한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