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금소법 시행령, 모호한 설명의무 규정에 은행권 난색,
소비자 개개인의 '금융상품 이해도 분류 데이터' 집적 필요
은행권이 금소법 시행령의 설명의무 부분 대응을 위해 태스크포스를 운영하고 있다./픽사베이

[한스경제=조성진 기자] 금융소비자에 관한 법률(금소법) 시행령 제정안이 내년 3월25일 시행을 앞둔 가운데, 은행권은 설명의무 부분이 과하다는 입장이다.

금융위원회가 지난달 28일 공개한 ‘금융소비자보호법 시행령 제정안 입법예고안’의 ‘6대 판매 규제’ 중 ▲설명의무 부분을 보면, 자산운용사 등 제조업자가 아닌 은행 등 직판업자가 펀드 등을 판매하는 경우, 상품 설명서를 직판업자가 작성해야 한다.

판매업자의 ‘상품숙지 의무’를 도입해 상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사람이 권유하는 행위도 금지된다. 또 금융상품 권유 시 소비자에게 핵심설명서를 제공해야 한다. 이를 위반한 금융사는 위반행위 수입의 최대 50%의 징벌적 과징금이 부과받는 등 강한 제재를 받는다.

하지만 제정안은 ▲상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사람 ▲핵심설명서에 대해 보다 자세하고 명확한 내용을 따로 명시하지 않았다. 금융소비자가 대출이나 보험, 펀드 등 투자상품의 청약을 일정 기간내 철회할 수 있는 청약철회권 역시 마찬가지다. 시행령에 따르면 은행은 금융소비자가 요구하는 청약철회권을 정당한 사유 없이 거절할 수 없는데 이 기준이 불명확하고 모럴헤저드(도덕적 헤이) 역시 우려된다.

은행권은 시행령의 모호한 규정이나 현장의 목소리와 관련해 의견을 내고 금융당국과 협의한다는 입장이다. 현재 각 시중은행사는 금소법 대응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하며 각 은행 실무 담당자가 은행연합회에 모여 관련 의견을 교환하고 대응방안을 논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권은 금소법 시행령의 제도적 취지는 좋지만, 상품설명을 아무리 성심껏 해도 이를 이해하고 수용하는 수준이 금융소비자마다 차이가 있어 실제 현장에서의 운용에 고심이 크다는 입장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금융소비자 개인의 금융상품 이해도가 상이한데, 시행령에는 이를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부분이 뚜렷하게 명시되지 않아 어렵다”며 “앞으로 은행권의 설명의무와 관련해 분쟁이 발생했을 때 은행사에 거의 모든 책임이 부과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이어 “창구에서 모든 금융상품의 A부터 Z까지 많은 시간에 걸쳐 설명을 듣는 손님이 집중력이 흐려져 계약서 등에 형식적으로 체크만 해놓고 분쟁시 ‘잘 이해하지 못했다’는 식으로 말하면, 영상과 녹취 등 이를 입증하는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당장 관련 인프라나 환경을 구축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모바일 등 비대면 금융상품을 직접 가입하는 고객과 달리 창구를 통한 금융상품 가입은 설명책임이 전적으로 은행에 있다”며 “창구에서 설명시간이 늘어나면, 보험사처럼 상품설명 전담팀을 따로 신설해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학계는 일부 비용이 증가하더라도 고객의 입장 또는 판매직원과의 접촉시점부터 판매 완료까지 전 과정에 대해 증거를 수집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한국금융연구원은 5월 발간한 ‘금융소비자보호법률 제정의 의의 및 금융회사의 대응방안’에서 ‘설명의무가 허위, 왜곡된 정보의 제공을 금지하는 만큼, 이를 입증할 필요가 있는데 금융상품판매사의 비용 증가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며 ‘금융소비자가 서명한 핵심서류 외에 판매직원이 별도로 제공한 정보가 있는지 여부 등이 중요 쟁점이 될 수 있는데 녹취 등의 증거자료를 마련해 증거를 수집하는 게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한국금융연구원은 이어 ‘설명 방법과 범위 및 정도를 ‘평균적인 일반소비자’에 맞추는 것보다, 개별 금융소비자에 더 적합하게 마련해 제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금융소비자의 특성별로 분류된 사례가 축적되면 유사한 고객군에 대한 적합성과 적정성 평가 체계가 정교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현재 금소법 시행령에 대비한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한다는 건 맞다”며 “기존 은행권이 금융소비자 보호 차원의 역할을 전혀 안 했던 것은 아닌데 각 은행사별로 시행하던 걸 법으로 명시해서 쉽지 않게 느끼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금소법 시행령에 앞서 은행권 자체에서는 불완전 판매 개선을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하나은헹은 앞선 19일 사모펀드 판매를 재개한다고 밝혔다. DLF사태 이후 판매가 중단된지 9개월만이다. 하나은행의 사모펀드 판매에 있어 가장 크게 바뀐 점은 ‘자산의 실재성’ 확인 여부다.

최근 문제가 되는 사모펀드의 경우, 복잡한 구조로 인해 자산의 실재성을 직접 확인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는데 앞으로는 실재성을 직접 파악할 수 있는 상품에 한해서만 상품판매를 진행한다는 것이다.

하나은행은 ‘불완전 판매를 방지하기 위해 보강된 상품교육을 이수한 직원에 한해서만 판매가 가능하도록 하고, 상품제안서에 기술된 내용처럼 실제 운용이 잘 되고 있는지 3개월에 한번씩 점검하고 손님께 운용보고서를 설명하고 전달한다’고 밝혔다.

금소법 시행령으로 은행권의 영업실적 위축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금융투자협회의 25일 발표에 따르면, 국민·농협·신한·우리·하나은행 등 주요 5개 시중은행의 공모·사모펀드를 합한 총 펀드의 신규 판매액은 1~3분기까지 21조9572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같은기간 41조6818억원을 기록한 것과 비교했을 때 19조7246억원(47.3%) 하락한 수치다.

같은 날,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이영 국민의힘 의원이 발표한 자료에서도 1~9월까지 국내 시중은행 사모펀드 수탁계약은 1881건으로 4603건이었던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했을 때 2722건(59.1%) 급감했다.

한편 금소법 시행령 이상의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라임사태 등 불완전판매 사태로 막대한 피해를 본 소비자는 많지만, 정작 문을 닫은 금융권은 없다”며 “금융소비자 보호 명목의 법안 제정과 피해구제 이상의 강력한 조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1조6000억원대 규모의 환매 중단 사태가 있었던 라임자산운용 사모펀드만 보더라도 ▲우리은행 3577억원 ▲신한은행 2769억원 ▲하나은행 871억원 ▲부산은행 527억원 ▲경남은행 276억원 ▲농협은행 89억원 ▲산업은행 37억원 등 은행권에서만 8146억원어치가 판매됐다.

조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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