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정치전문 논설위원·서울시립대학교 초빙교수

10여년 전,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말로만 듣던 여군을 만난 건 길거리였다. 군부대도 아닌 일상생활 속에서 만남은 뜻밖이었다. 총을 소지한 채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도 놀랐지만 10대 후반 여성이라는 점은 더 놀라웠다.

그런데 여군도, 현지인도 전혀 어색해하지 않았다. 우리만 신기하게 쳐다볼 뿐이었다. 이스라엘에선 여성도 18세가 되면 의무복무 대상이다. 다만 남성 32개월에 비해 24개월로 복무기간이 짧다는 차이만 있다.

우리나라에서 군 복무는 민감한 이슈다. 이 가운데 군 가산점과 여성 복무는 핵심 쟁점이다. 헌법재판소는 1999년 군 가산점 제도를 위헌 판결했다. 2001년 폐지 이후 10여년 지났음에도 남성들은 여전히 부당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합당한 보상을 인정하지 않는 건 오히려 역차별이라는 시각이다. ‘양성평등문화에도 맞지 않다는 주장이다.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이 남녀평등 복무제를 들고 나와 다시 논란에 불을 댕겼다.

박 의원은 징병제모병제로 전환하자고 제안했다. 또 남녀 모두 최대 100일간 의무적으로 기초군사훈련을 받는 남녀평등 복무제도입을 주장했다. “병역 자원을 넓히고, 청년세대 경력단절 충격을 줄일 수 있다는 이유다.

아울러 이 정책을 통해 병역 가산점 제도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도 해소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불필요한 남녀 차별 논란, 병역 면제·회피 부작용을 없애는 현실적 방안이라고 설명했다.

군복무를 마친 남성들은 가산점 폐지를 불공정하다고 생각한다. 군복무가 주는 여러 이점에도 불구하고 복무 기간 동안은 사실상 사회와 단절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상명하복을 근간으로 하는 군 생활은 창의력과는 거리가 멀다.

고참이 기차바퀴가 세모라고 하면 세모다” “까라면 까라는 군 문화는 이런 주장을 뒷받침한다. 반면 후츠파(뻔뻔함, 용기)’ 도전정신을 강조하는 이스라엘 군은 우리와 대비된다.

인발 아리엘리는 후츠파에서 이런 내용을 잘 설명하고 있다. 다소 국뽕냄새가 풍기지만 새겨들을 만한 이야기가 많다. 이스라엘 경쟁력은 세계적이다. 20172018 세계경제포럼 국가 경쟁력 보고서에서 혁신 부문 3위에 올랐다. 6,500개 이상 스타트업이 활동 중이며, 기업가치 10억 달러 이상도 30개를 넘는다. 무엇이 놀라운 성취를 가능하게 했는가. 저자는 후츠파 정신과 수평적인 군대 문화를 든다.

이스라엘 군은 일방적인 지시나 명령에 복종하는 대신 자율과 수평적 문화를 갖고 있다. 병과 배치도 학벌이 아닌 기술, 역량, 잠재력을 따진다. 심지어 자폐아를 정보 병과에 배치하고, 이민자로 구성된 베두인 부대도 운영한다.

현역 176500, 예비군 465000명으로 전체 병력 가운데 예비군은 72%를 차지한다. 병역 혜택도 다양하다. 대학등록금 전액 지원, 공무원과 국가시험 가산점 특전, 주택대출 지원 등이다.

차별 없는 남녀 복무, 능력 중심 병과 배치, 합당한 특전은 강군을 만들었다. 이스라엘은 1948년 건국 이후 4차례 전쟁에서 모두 승리했다. 이쯤해서 우리 군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한국군은 강군인가. 또 지금과 같은 병역제도와 가산점 폐지는 설득력 있는가. 기획재정부는 올해 초 공공기관에 승진 자격을 따질 때 군 복무 기간을 반영해서는 안 된다는 지침을 보냈다. 한국전력은 이를 반영해 제도 변경에 나섰다.

2030대 군필 남성은 가산점 폐지에 이어 승진 혜택마저 없애는 현실에 반발하고 있다. “4050대는 군 경력을 인정받고 이제와 우리만 역차별 받는다는 불만이다. 그러자 정치권은 취업승진 때 군 경력을 반영하는 법안을 잇달아 발의하고 나섰다.

더불어민주당 전용기 의원은 공기업 승진 평가에 군 경력 반영을 의무화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김남국 의원도 군 경력이 인정될 수 있도록 국가공무원법을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4.7 재보궐 선거에서 확인된 이남자(20대 남성)’을 달래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야당도 거들었다. 국민의힘 이채익 의원은 공기업 뿐 아니라 민간기업도 군 경력을 인정하도록 제대군인지원법을 대표 발의할 예정이다. 하지만 위헌 판결과 상충될 소지가 적지 않아 실제 입법으로 이어질지는 의문이다. 병역 이행에 대한 합당한 보상은 공정과 관련된 문제다. 양성평등을 위해서도 생산적인 논의가 요구된다.

더 이상 남자라면 군대를 다녀와야 한다는 말로 정당화할 때는 지났다. 국가는 병역 이행에 걸맞게 합당하게 보상할 의무가 있다. 그럴 때 군 복무는 경력 단절이 아닌 소중한 경험이 된다.

나아가 양성평등을 주장하는 여성들에게도 떳떳하다. 예루살렘에 체류하는 동안 여군을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다. 그녀는 여자라고 특별대우를 받고 싶지 않다. 군 복무는 자랑스러운 이력이다고 했다. 속내는 어떤지 모르지만 대견했다.

이제 군 복무와 관련된 공정 이슈를 정면으로 마주할 때가 됐다. 어떤 식으로든 합리적 보상은 바람직해 보인다. 이렇게 주장하는 2030 남성을 쫌보로 폄하한다면 논의는 어렵다.

기계적 평등이 아닌 합당한 공정이라는 시각에서 봐야 한다. 헌신에 대한 배려다. 그러고 보니 영화 원더우먼에서 여전사로 활약한 이스라엘 배우 갤 가돗24개월 군복무를 마쳤다.

임병식 정치전문 논설위원·서울시립대학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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