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정치전문 논설위원·서울시립대학교 초빙교수

50대 이상 세대에게 근검절약은 자연스럽다. 당시만 해도 우리사회는 가난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쓰지 않는 전등은 꺼라, 수돗물은 아껴써라.” 아버지는 이런 말을 달고 살았다. 그때는 잔소리로 여겼다.

이 때문인지 낭비와 과잉소비는 죄악이라는 인식이 박혀 있다. 헌데 언제부터인지 나도 같은 잔소리를 늘어놓고 있다. 돌아보면 그 시절 절약은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한 생존 습관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론 환경 친화적인 지혜였다.

22일 ‘지구의 날’을 맞아 40개국 정상이 탄소 배출량 감소에 공감했다. 이들은 지구 기온 상승 폭을 1.5도 이내로 유지하자고 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개막 연설에서 기후 변화를 “실존적 위기”로 규정했다.

기후 변화는 희미한 관념이 아닌 인류 생존과 직결된 위기라는 말이다. 그는 이를 막기 위해 “지금 행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05년 대비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밝혔다.

미국이 제시한 목표는 2015년 계획(26~28% 감축)보다 두 배 늘었다. 영국도 2030년 배출량을 1990년 대비 68%, EU는 55% 줄이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우리 정부는 어떤가. “연내 상향”이라며 애매한 목표치를 제시해 비판이 뒤따랐다.

한국청년기후행동은 회담 다음 날, 청와대 앞에서 “한국 정부가 기후 대응을 위해 어떤 의지도 없다는 것을 국제사회에 말하는 모습을 보면서 당황스럽고 부끄러웠다”고 꼬집었다.

지구 온도가 1.5도를 넘어서면 인류는 생존할 수 없다. 이미 온난화 피해는 심각하다. 극지방은 이상 기온, 남부는 한파와 폭설 피해가 반복되고 있다. 또 지구촌 곳곳은 연례행사처럼 산불로 불타고 있다.

남극 빙하는 빠른 속도로 녹아내리고, 내륙 호수는 사막화하고 있다. 유럽은 해마다 살인적인 폭염으로 수많은 사람이 숨지고 있다. '2050 거주불능 지구'는 기후변화로 인해 사람도 동물도 살수 없는 현실을 실감나게 고발하고 있다.

‘1.5도’는 인류 생존을 위한 마지노선이다. 1.5도가 처음 공식화된 건 2015년 파리기후변화협약에서다. 당시 197개 회원국은 지구 온도를 산업화 이전(1850~1900년) ‘2도’ 아래로 유지하고, ‘1.5도’로 제한하기 위해 노력하자고 했다.

또 2018년 유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협의체(IPCC)에서는 ‘지구 온난화 1.5도 특별보고서’를 채택했다. 전문가들은 인류 생존을 위해 1.5도 이내 상승은 절대선이며, 그 시한을 2050년으로 제시했다.

이를 위해 2030년까지 2010년 대비 최소 45% 줄이고, 2050년에는 순 배출량을 ‘0’으로 만들어야 한다. 세계 주요국은 앞 다퉈 ‘2050년 탄소중립’ 선언에 나섰다. 영국과 캐나다, EU는 2050년 이전에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고 선언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파리기후변화협약 복귀와 함께 2050년 탄소중립을 약속했다. 우리 정부도 지난해 10월,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한 바 있다. 하지만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우리 정부가 제시한 2030년 감소 목표치는 2017년 배출량(7억910만t) 대비 24.4% 수준이다. 환경 전문가들은 2030년까지 4분의 1만 줄이고, 나머지 4분의 3을 2050년까지 줄이겠다는 건 현실성 없다며 회의적이다.

탄소 배출량 감소는 당장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절박한 과제다. 국제사회는 탄소 배출량을 기준으로 산업과 통상 체계를 재편할 움직임이다. 탄소 배출량이 많은 기업에는 불리한 구조다.

EU는 ‘탄소국경세’를 통해 탄소 배출이 많은 기업을 규제할 계획이다. 올 상반기 초안을 발표, 2023년부터 적용할 계획이다. 미국도 동참한다. 무역 의존도가 높은 한국 기업에게는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IPCC는 우리 정부에 대해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절반 가까이 줄일 것을 권고했다. 정부와 기업이 능동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도태는 불가피하다. 어쩌면 온실가스 배출량 감소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생활 속에서도 온실가스 감소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낭비를 줄이고 과잉소비를 자제하는 것이다. 불필요한 전등을 끄고, 1회용품 사용을 줄이고,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자. ESG경영을(환경, 사회적 가치, 지배구조) 개인에게 적용해보는 것도 유용하다.

독일 학생들은 80% 이상이 소비할 때 죄책감을 느낀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학교와 가정에서 탄소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 생활습관을 장려해야 한다.

온실가스를 줄이는 건 미래 생명에 대한 책임이다. 당장 실행하지 않으면 다음 세대는 없다. 멕시코 출신 기후 이민자 바스티다(19)는 “기후정의가 곧 사회정의다”면서 “(환경론자를) 비현실적이고 비합리적이라고 비판할 수 있으나 대담하지 않은 해결책으로 현 상황을 모면하려는 지도자야말로 비현실적이며 비합리적이다”고 했다.

미래 생명을 살리고 사회정의를 실천하는 일을 더는 미루면 안 된다. 소비할 때마다 ‘지구 온도 1.5도’를 떠올리자.

임병식 정치전문 논설위원·서울시립대학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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