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정치전문 논설위원·서울시립대학교 초빙교수

생전에 불운했던 조선시대 여류시인 허난설헌. 그가 남긴 ‘죽은 자식을 위해 운다(곡자‧哭子)’는 절절하다. “지난해는 귀여운 딸을 잃었고, 올해는 또 사랑하는 아들을 떠나보냈다. 슬프고도 슬픈 광릉 땅이여. 두 무덤 나란히 마주 보고 있구나. 사시나무 가지에 소슬바람 일고, 숲속에선 도깨비불 반짝이네. 지전을 태우며 너희 넋을 부르며 무덤 앞에 술잔을 붓는다. (중략)하염없이 슬픈 노래 부르며, 피눈물 슬픈 울음 혼자 삼킨다.”

사무친 그리움을 담았다. 자식 잃은 모든 부모가 이와 같을 게다. 최근 두 청년이 불운한 죽음을 맞았다. 그런데 죽음을 대하는 방식이 다르다. 한쪽은 언론과 사회적 관심이 집중된 반면 다른 한쪽은 상대적으로 소외돼 있다. 우리사회가 죽음조차 균형을 잃어버린 건 아닌지 불편해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두 청년은 나이와 사망 시기가 비슷하다. 경기 평택항에서 숨진 이선호 군은 23세, 서울 한강공원에서 숨진 손정민 군은 22세.

둘 다 꽃다운 나이다. 숨진 시점은 4월 22일, 25일이다. 이군은 부두에서 화물 컨테이너를 쌓다 숨졌고, 술자리 도중 실종된 손군은 변사체로 돌아왔다. 다른 게 있다면 두 청년과 아버지의 사회적 신분이다. 복학을 앞둔 이군은 아르바이트생, 손군은 의대 재학생이다. 또 아버지는 부두 노동자와 대기업 임원으로 알려진다. 두 아버지는 슬픔의 전면에 나섰다. 사회적 신분 때문인지 언론과 사회적 관심은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손군은 실종 신고 초기부터 조명을 받았다. 연일 관련 소식은 신문과 방송을 달궜다. 심지어 휴대전화를 찾는데 수많은 경찰과 해군까지 동원됐다. 급기야 비가 내린 16일에는 손군을 추모하는 집회가 한강공원에서 있었다. 시민 300여명은 ‘정민이 죽음의 진상을 규명하라’라는 피켓을 들고 경찰 수사를 촉구했다. 사망한지 2주일 만에 여론화되고,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만에 빈소를 찾은 이군 죽음과는 대조를 보인다.

이군 사연은 친구들 SNS를 통해 뒤늦게 알려졌다. 장례식도 진상 규명 때문에 2주정도 지연됐다. 그때까지 한 청년 노동자의 죽음은 관심 밖이었다. 문 대통령은 빈소를 찾아 “국가시설 안에서 일어난 사고임에도 안전관리나 사후 조치에 미흡한 점이 많았다”며 유족들을 위로했다. 아버지 이재훈씨는 “제발 이제는 이런 사고를 끝내야 한다”며 통곡했다. 불과 2년 전 비슷한 사고로 숨진 김용균씨 어머니가 했던 절규와 흡사하다.

문 대통령은 취임 초기 “노동자들이 안전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했다. 2022년까지 산재 사망사고를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약속도 했다. 그러나 원시적인 산재는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2018년 12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숨진 김용균씨는 대표적이다. 2020년 4월에는 경기 이천 물류창고 건설현장 화재로 38명이 숨졌다. 앞선 2008년 냉동물류창고 화재와(사망 40명) 판박이다. 12년 전, 2년 전 사고에서도 우리사회는 여전히 교훈을 얻지 못했다.

올해 1월 국회를 통과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내년 1월 27일부터 시행된다. 정부는 이달 중 시행령 확정을 앞두고 여론을 수렴 중이다. 관련 부처와 노동계, 산업계는 서로 생각이 다르다. 노동계는 느슨한 법 적용을 문제 삼고 있다. 산재 사망사고에서 대부분을 차지하는 50인 미만 사업장(81%)은 3년 유예, 5인 미만(35%)은 제외됐다는 이유다. 반면 산업계는 지나치게 가혹하며 기업 활동을 위축시킨다며 반발하고 있다.

우리나라 산업재해 사망률은 OECD회원국 가운데 24년째 1위다. 매일 6명씩, 한해 2,000여명이 숨진다. 2000년부터 2020년까지 무려 4만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전쟁도 아닌 평시에 일터로 나선 가장들이 돌아오지 못하는 현실은 부끄럽다. 우리사회가 양적 성장에만 매몰된 나머지 근로자 생명을 돌보는데 소홀했다는 반증이다. 중앙대학교 김누리 교수는 이 같은 현실을 사실상 내전상태로 규정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사업주와 경영주까지 처벌한다. 안전의무를 소홀히 한 경우 1년 이상 징역, 10억 원 이하 벌금형에 처한다. 영국은 2007년 ‘기업살인법’을 제정해 강하게 대처하고 있다. 인구 10만 명당 사망률은 감소했다. 한때 EU회원국 가장 높았으나 지금은 가장 낮다. 영국에서 ‘기업살인법’을 적용한 사례는 5%미만이다. 대부분 ‘보건안전법’으로 처벌하지만 산업계에 던지는 정치적 메시지는 간단치 않다.

지난주 강의 도중 한 학생은 이렇게 반문했다. “손정민 군에 비해 이선호 군을 가볍게 취급하는 언론의 균형감각에 문제가 있지 않나요.” 아마 많은 이들이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했으리라 생각된다. 모든 생명은 같은 무게를 지닌다. 오히려 이군 죽음에서 고질적이며 구조적인 산업재해 실태를 돌아보는 게 바람직하다. 우리사회가 죽음마저 표피화한 채 균형감을 상실한 건 아닌지 아쉽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시행령은 생명을 우선하고 논의해야 한다. 더는 일터에서 일하다 숨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 ‘정민이 죽음을 규명하라’는 피켓 시위 또한 ‘선호가 죽은 원인을 밝히라’고 해야 건강한 사회다. 덧붙여 생명보다 가혹한 법은 없다.

임병식 정치전문 논설위원·서울시립대학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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