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정치전문 논설위원·서울시립대학교 초빙교수

국민연금공단이 내년부터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적용한 자산 군(郡)을 50%까지 확대한다. 국내 주식시장에도 ESG 기반 투자가 본격화하는 셈이다.

시장 지배력이 큰 국민연금공단이 ESG를 투자 지표로 삼고 비중을 늘려간다는 건 중요한 변화다. 공단이 어느 기업에 주목하느냐에 따라, 금융시장은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세계 3대 연기금인 국민연금은 흔히 말하는 ‘큰 손’이다. 새로운 ESG생태계를 구축할 만큼 힘이 세다.

2020년말 기준 가입자 2200만명, 기금 834조원에 달한다. 기금 규모는 국내 총생산에서 43%를 차지한다. 국내 주식시장에 투자한 금액도 시가 총액 기준 7.47%에 이른다.

국내 주요기업에게 국민연금은 1대 또는 주요 주주 위치에 있다. 이런 상황에서 ESG에 무게 중심을 두겠다는 건 패러다임 변화를 예고한다. 이미 공단은 참관자 입장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하고 있다.

지난해 국민연금은 854개 기업이 주최한 주주총회에서 반대 의결권을 행사했다. 전체 3397개 안건 가운데 반대 의결권은 535건(15.75%)을 차지했다. 이사와 감사 선임 반대 의결권이 245건(45.8%)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보수한도 승인(155건·29.0%), 정관 변경(37건·6.9%), 기타(98건·18.3%) 등이다.

또 공단은 109개 기업에 대해 225건에 달하는 수탁자 책임 활동을 수행했다. 단순한 수탁자 입장에서 벗어났다는 의미다.

김용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21일 '국민연금이 함께하는 ESG' 출판 기념회를 곁들인 ‘ESG 포럼’에서 이 같은 의지를 구체화했다.

그는 “ESG가 새로운 국제질서를 형성하는 상황에서 국민연금이 적극적인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대한민국의 대표 선수답게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한국형 K-ESG를 만들어 대응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내년부터 ESG 자산 군을 50% 이상 확대하고, 올해부터 국내 채권과 해외주식·채권에 적용한다.

금융시장과 기업현장에서 ESG는 주요한 트렌드다. 하지만 평가기관과 지표가 난립하는 바람에 혼선을 빚고 있다.

세계적으로도 ESG는 대세다. 특히 기후 위기와 관련 환경에 비상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산불과 폭설, 홍수, 폭염 등 이상 기온이 끊이지 않고 있다. 선진국들은 친환경정책을 잇따라 발표하고, 글로벌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EU는 ‘탄소국경세’ 도입을 준비 중이다. 우리나라도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국제 금융시장은 거래 기업을 친환경기업으로 제한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탄소 배출량이 많은 기업에게는 위기다. 국민연금이 한국형 ESG표준을 만들고 시장을 선도하겠다는 건 이래서 의미가 있다. 덩치에 걸맞은 책임과 역할 수행은 당연한 책무다.

김 이사장도 언급했듯 원하든 원하지 않던 ‘국민연금 ESG’는 표준이 될 수밖에 없다. 표준을 세우는 일은 쉽지 않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다.

국민연금은 그동안 많은 노하우를 축적해 왔다. 이를 활용해 새로운 길을 열어갈 책임이 있다. 민간 투자운용사 참여를 이끌어내고, 궁극에는 기업환경을 ESG 중심으로 재편시켜야 한다.

또 기업에게 예측 가능성을 높여 선제적으로 준비하고 움직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ESG 방향과 대상, 원칙과 전략, 기준과 절차를 마련해 공개하는 일은 중요하다. 기업들에게 한국형 ESG를 제시하고 동참을 유도한다면 의미가 클 것이다.

현재 국민연금은 국내 주식을 13개 항목, 52개 지표로 평가해 투자등급을 산정한다.  여기에 환경과 사회 부문 평가 항목과 지표 확대는 바람직하다. 또 주주활동과 관련 지배구조 중심에서 환경, 사회 영역으로 확대를 적극 반영해야 한다.

공단은 이날 포럼에서 해외주식에 대한 수탁자 책임 활동을 늘리기 위해 해외증권 책임투자 이행체계 구축 용역을 11월까지 마무리하고 주주활동에 나선다고 밝혔다.

산업재해, 기후변화 관련 연구용역을 통해 중점 관리 사안도 기존 5개에서 7개로 늘릴 방침이다. 증권사 애널리스트 리포트에 ESG가 고려되고 있는지 확인해 거래 증권사 선정에도 반영할 계획이다. 한국형 K-ESG를 의미한다.

ESG는 기업경영을 넘어 사회 패러다임을 바꾼다. ESG는 투자는 물론 공동체가 지향해야 할 가치와 조화를 추구한다. 공동체에 대한 연대와 책임, 신뢰를 기초로 하는 새로운 관계와 질서, 사회적 자본을 형성하는 촉진자 역할이다.

기업 또한 ESG를 비용이 아닌 기업 가치를 높이고 무형자본을 강화시키는 투자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환경과 사회는 공동체 존속과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핵심 가치다. ESG는 피할 수 없는 대세다.

세네카는 “운명은 순응하는 자는 태우고 가지만, 거부하는 자는 끌고 간다”고 했다. ESG에 끌려갈지 올라타고 갈지는 선택에 달렸다. 가지 않은 길, K-ESG에 대한 기대가 크다.

임병식 정치전문 논설위원·서울시립대학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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