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정치전문 논설위원·서울시립대학교 초빙교수

정치권에 ‘이준석 돌풍’이 던지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이대로는 안 된다”이다. 한국정치는 시대변화를 수용하지 못한데다 국제흐름에도 한참 비켜서있다.

금융시장에서 투자 기준으로 삼는 ESG와도 동 떨어져 있다. 환경(E), 사회적 가치(S)와 함께 ‘건강한 지배구조(G)’는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지표다. 한국정치는 지배구조만 놓고 보면 형편없다. 계파정치, 패거리 정치라는 후진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구태를 반복하고 있다.

여야 모두 똑 같다. 더불어민주당은 정권 장악 이후, 친문과 비문 사이에 불편한 긴장이 끊이지 않는다. 당 운영은 비민주적이다. 소신있는 의원일지라도 친문과 강성 지지층 비토를 우려한 나머지 입을 닫고 있다.

청와대와 당론에 배치되는 목소리를 내려면 비난과 문자 폭탄을 각오해야 한다. 당 지도부도 비민주적 행태를 나무라기는 커녕 방관하기 일쑤다. 되레 쓴 소리하는 의원을 배신자로 낙인찍고 퇴출시키는데 동조했다. 금태섭은 1년 전 이를 견디지 못해 탈당했다. 아직 민주당에 몸담고 있지만, 언제 떨려날지 모르는 의원도 있다. 조응천, 박용진, 김해영은 소신 발언을 할 때마다 극심한 탈당 압박에 시달린다.

4.7 재보궐 선거 참패는 퇴행적 당 운영에 대한 엄중한 심판이다. 한데 민주당은 교훈을 얻지 못했다. 초선 의원 5명은 변화를 요구했다가 ‘초선 5적’으로 몰려 몰매 맞았다. 당 지도부 선거 역시 공고한 친문 입김을 확인하는데 그쳤다. 세력교체와 쇄신을 기대했지만 동력은 미약했다.

국민의힘에 부는 ‘이준석 돌풍’은 이런 상황에서 나왔다. 영남, 수구, 꼴통, 극우에서 쇄신과 변화를 반영한 반격이다. 이를 지나가는 바람 정도로 여긴다면 껍데기만 봤다.

밑바닥 기류를 제대로 헤아리지 못한 ‘꼰대’는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누적된 숨막히는 관행과 구습에 대한 반격이라고 봐야 옳다. 기성 정치권에 균열을 내는 정도가 아니다. 아예 판을 뒤집는 거대한 흐름이다. 그래도 무시한다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이런 흐름이 국민의힘에서 시작됐다는 건 아이러니다. 주류에 진입한 민주당 집권세력이 안주하는 사이 추격자로서 몸부림친 결과다. 기득권의 늪에 빠진 민주당에게 캐나다 자유당과 쥐스탱 트뤼도 총리는 좋은 본보기다. 트뤼도는 41세 당대표, 43세 총리에 취임했다. 그는 집권 내내 역동적으로 움직였다. 국격을 높이고 국민에게는 자긍심을 심어주었다. 2015년 1기 ‘무지개 내각’은 “아름답다”는 찬사까지 받았다. 지배구조만 놓고 보면 최고였다.

종교를 뛰어넘고 원주민과 난민 출신, 심지어 성 소수자와 장애인까지 발탁했다. 또 내각을 남녀 15명씩 동수로 구성했다. 다양성을 반영한 모자이크 내각은 파격이었다. 사회통합 내각은 캐나다를 매력적인 나라로 만들고 나아가 살만한 나라, 인재가 모이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선언이었다. 기자회견장에서 남녀 동수 내각에 대한 질문에 트뤼도는 “지금은 2015년이니까”라고 대답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소수자 발탁은 단순히 고명(장식)이 아니었다. 혁신과학경제개발 장관‧국방장관(시크교도), 민주제도장관(무슬림), 법무장관‧어업 장관(원주민), 재무장관(성 소수자), 체육 및 장애인 장관(장애인올림픽 출전자), 참전용사보훈장관(장애인)까지 다양하다. 출신과 직업도 다양하지만 연령도 30대부터 60대까지 넓다. 민주제도부 장관은 아프가니스탄 난민 출신으로 당시 30살 여성이었다. 17~18세기 네델란드가 종교‧사회적 관용과 개방을 통해 강대국으로 올라섰듯 트뤼도 내각도 그랬다. 트뤼도는 2019년 11월 재집권했다.

세계인 15%, 7억5000만명은 캐나다 이민을 희망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있다. 캐나다가 그만큼 매력적이라는 방증이다. 이미 전체 인구 20%는 이민자다. 유색 인종 비율도 22.3%에 달한다. 이런 추세라면 2036년에는 3분의 1로 늘어날 전망이다. 미국이 제1 강대국이 된 이유도 개방과 다양성에 있다. 지배구조가 건강하면 기업이든 정당이든 국가든 경쟁력 있다. 반면 폐쇄적인 기업과 국가, 정치조직은 괴사할 수밖에 없다.

‘이준석 돌풍’은 대대적인 정치 지배구조 전환을 예고한다. 다양성을 존중하고 건강한 비판을 허용하는 지배구조와 혁신이다. 지금처럼 특정 계파가 당을 장악하고 반대 목소리를 허용하지 않는다면 여든 야든 퇴보할 수밖에 없다. 계파중심 순혈주의는 폐쇄성을 가속화시킬뿐더러 역동성을 갉아먹는다. 지금 우리 정치가 처한 현실이 이와 다르지 않다. 개방과 관용을 바탕에 둔 지배구조 쇄신이 답이다.

설령 ‘이준석 돌풍’이 실패하더라도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 다음 대선에서 이슈는 공정과 혁신이다. 혁신에서 관건은 상식적인 지배구조다. 세대, 출신, 종교, 취향을 이유로 차별하지 않고 견제와 건강한 비판을 허용하는 지배구조다.

캐나다가 다양성을 토대로 매력적인 나라로 거듭났듯, 한국 정치지형도 변화를 모색할 때다. 트뤼도 정부는 환경부를 ‘환경 및 기후변화부’, 이민부를 ‘이민 및 난민부’로 바꾸고 업무 영역도 대폭 넓혔다.

지배구조 변화와 함께 이런 정도 과감한 발상이라야 다음 대선을 꿈 꿀 수 있다.

임병식 정치전문 논설위원·서울시립대학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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