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철(왼쪽)이 2002 한일월드컵 폴란드전에서 추가골을 터뜨린 뒤 설기현과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스경제=심재희 기자] '유비' 유상철 감독이 향년 50살의 젊은 나이에 7일 하늘나라로 떠났다. 그는 한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멀티 플레이어로 평가받는다. 미드필더로 주로 뛰었지만 팀 사정에 맞춰 수비수와 공격수로 변신해서도 '월드클래스 기량'을 뽐냈다. 특히 태극마크를 달고 투지를 발휘하며 멋진 골들을 터뜨려 감동을 안겨줬다. 유상철 감독의 명복을 빌면서, 팬들의 가슴에 영원히 남게 될 유비의 베스트골을 다시 조명해 본다.

◆ 일본 침몰시킨 A매치 데뷔골

1994년 10월 11일 히로시마 아시아경기대회 8강전. 아나톨리 비쇼베츠 감독이 이끈 대표팀은 8강전에서 '숙적' 일본을 만났다. 한국은 당시 일본의 성장세에 크게 놀라며 주춤거리고 있었다. 1992년 다이너스티컵에서 연속 무승부에 이은 승부차기 패배로 고개를 숙였고, 이듬해 1994 미국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에서는 0-1로 지고 말았다. 이날 경기도 초반 흐름이 좋지 않았다. 일본의 간판스타 미우라 가즈요시에게 선제골을 얻어맞고 끌려갔다. 한국의 해결사로 '신예' 유상철이 나섰다. 유상철은 후반 6분 황선홍의 감각적인 백 패스를 허벅지로 트래핑한 뒤 오른발 슈팅으로 연결해 득점을 뽑아냈다. 페널티박스 안에서 침착한 플레이를 펼치며 A매치 데뷔골을 만들어냈다. 유상철의 동점골로 기세가 오른 한국은 황선홍의 역전골로 승부를 뒤집었다. 일본이 이하라 마사시의 득점으로 다시 균형을 맞추자 황선홍이 경기 종료 직전 페널티킥으로 결승골을 터뜨리며 포효했다.

유상철 감독이 7일 별세했다. /사진공동취재단

 ◆ 1995년 코리아컵 개막 축포

1995년 6월 대한축구협회가 주관한 코리아컵 국제축구대회가 열렸다. 이 대회에는 총 8개 팀이 참가했고, 국가대표팀과 클럽팀이 어우러져 우승컵을 다퉜다. 한국은 A조에 속해 코스타리카, 리우 선발(브라질), 칼마녹(스코틀랜드)과 준결승행을 다퉜다. 1995년 6월 3일 서울 잠실올림픽주경기장에서 한국과 리우 선발의 개막전이 펼쳐졌다. 전반 2분 만에 축포가 터졌다. 유상철이 왼발 중거리포를 작렬하며 환호했다. 골문으로부터 약 30미터 떨어진 지점에서 대포알골을 쏘아 올렸다. 유상철은 전반 29분 멀티골을 완성했다. 페널티박스 오른쪽 지점에서 강력한 오른발 아웃프런트 슈팅으로 상대 골키퍼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한국은 유상철의 활약으로 리우 선발을 2-0으로 꺾고 산뜻한 출발을 알렸다.

◆ 4회 연속 월드컵행 굳힌 슈퍼골

차범근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1998 프랑스월드컵 대표팀은 4회 연속 월드컵 본선행을 목표로 삼았다. 그 유명한 도쿄대첩을 만들며 승승장구했다. 그리고 1997년 10월 18일(한국 시각) 우즈베키스탄 타슈겐트 바흐타골스타디움에서 대승을 올리며 사실상 월드컵 본선행을 확정했다. 이날 경기에서 유상철은 엄청난 점프력을 선보이며 추가골을 뽑아냈다. 한국이 1-0으로 앞선 전반 34분 하석주의 왼발 코너킥을 머리로 받아넣으며 우즈베키스탄 골망을 갈랐다. 러닝 점프를 활용해 높은 타점으로 기록한 헤더골은 유상철의 '탈아시아급' 기량을 증명했다. 한국은 유상철의 득점을 기점으로 공격력을 폭발하며 승전고를 울렸다. 최용수, 고정운, 김도훈이 골 잔치에 가세하며 5-1 대승을 거뒀고, 이변 없이 월드컵 본선행을 확정했다.

유상철이 1998 프랑스월드컵 조별리그 3차전 벨기에와 경기에서 동점골을 터뜨린 뒤 날아오르고 있다. /연합뉴스

◆ 한국축구 자존심 지킨 벨기에전 동점골

1998 프랑스월드컵 본선. 아시아 1위로 월드컵에 진출한 차범근호는 자신감에 가득차 있었다. 하지만 세계의 벽은 너무 높았다. 조별리그 1차전에서 멕시코에 1-3으로 역전패한 한국은 2차전에서 거스 히딩크 감독이 견인한 네덜란드에 0-5으로 크게 졌다. 연패로 인해 대회 도중 차범근 감독이 경질되는 사태를 맞이했고, 벨기에와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를 치렀다. '유럽의 붉은악마'와 싸움도 쉽지 않았다. 전반 7분 만에 뤼크 닐리스에게 선제골을 얻어맞고 뒤졌다. 힘과 기술에서 모두 밀렸다. 후반 25분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 왼쪽 측면에서 얻은 프리킥 기회에서 동점골을 뽑아냈다. 하석주가 날카롭게 올린 공을 유상철이 슬라이딩 오른발 슈팅으로 연결해 벨기에 골문을 열었다. '왼발의 달인' 하석주의 절묘한 킥과 유상철의 득점 본능이 어우러진 작품이었다. 한국은 이후 체력의 우위를 바탕으로 벨기에와 대등하게 맞섰으나 역전에 성공하지는 못했다. 그래도 유상철의 동점골로 승점 1을 챙기며 전패 수모는 면했다.
 
◆ '코뼈 골절' 투혼의 헤더골

2001년 6월. 2002 한일월드컵을 1년 앞두고 국내에서 컨페더레이션스컵이 개최됐다. 히딩크 감독이 사령탑에 앉은 한국은 개최국 자격으로 대륙 챔피언들과 대결을 펼쳤다. 그러나 출발이 매우 좋지 않았다. 조별리그 1차전에서 1998 프랑스월드컵 챔피언 프랑스에 0-5로 대패했다. 2차전 상대는 '북중미의 맹주' 멕시코. 히딩크호는 3년 전 프랑스월드컵에서 뼈아픈 패배를 안겼던 멕시코를 상대로 복수혈전을 노렸다. 후반 11분 황선홍의 선제골이 터질 때까지만 해도 분위기가 좋았다. 하지만 후반 36분 빅토르 루이스에게 동점골을 내주면서 흔들렸다. 무승부라는 단어가 머리를 스치는 경기 막판 유상철이 승부를 결정짓는 득점을 만들어냈다. 후반 44분 박지성의 코너킥을 완벽한 스파이크 헤더로 연결해 '극장골'을 터뜨렸다. 사실, 이날 유상철은 전반전에 공중볼을 다투다가 상대 선수와 부딪혀 부상했다. 훗날 코뼈가 골절된 상황에서도 경기에 나서 결승 헤더골을 터뜨렸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축구팬들을 더욱 놀라게 했다.

유상철이 2002 한일월드컵 조별리그 1차전 폴란드와 경기에서 추가골을 작렬한 뒤 세리머니를 펼치고 있다. /연합뉴스

◆ '월드컵 첫승' 폴란드전 추가골

2002년 6월 4일. 한국 부산아시아드스타디움에셔 펼쳐진 2002 한일월드컵 조별리그 1차전 한국-폴란드 경기. 한국은 48년 만의 월드컵 첫 승에 도전했다. 경기 초반부터 주도권을 쥔 태극전사들은 전반 26분 선제골을 잡아냈다. 황선홍이 이을용의 짧은 왼발 크로스를 왼발 발리 슈팅으로 연결해 폴란드 골키퍼 예지 두덱의 방어벽을 뚫었다. 기세가 오른 한국은 후반 8분 승리에 더 가까이 다가서는 추가골을 작렬했다. 주인공은 '유비' 유상철이었다. 유상철은 골문으로부터 약 20미터 정도 떨어진 지점에서 공을 잡아 강력한 오른발 슈팅을 시도했다. 유상철의 발 끝을 떠난 공은 힘차게 골문으로 날아갔고, 두덱 골키퍼의 손에 맞고 굴절되어 골문 안으로 들어갔다. 히딩크호는 두 골 차로 달아나며 여유를 가졌고, 경기 막판까지 폴란드를 밀어붙이며 2-0 완승으로 월드컵 첫 승의 기쁨을 맛봤다.

스포츠산업부장

 

심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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