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정치전문 논설위원·서울시립대학교 초빙교수

대한민국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몇 안 되는 나라다. 정치적 수사가 아니다. 6.25 잿더미 위에서 70년 만에 교역 규모 세계 11위로 올라섰으니 맞는 말이다. 또 ‘3050클럽’ 일곱 번째 가입국이다. ‘3050클럽’은 인구 5000만명, 국민소득 3만 달러 이상 국가를 뜻한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이탈리아, 한국까지 7개국뿐이다. 중국과 인도는 국민소득이 낮아서, 스웨덴과 핀란드, 덴마크는 인구가 부족해 자격이 안 된다.

문화예술과 스포츠 분야에서 성취 또한 놀랍다. 세계 10위 안에 한국 여자 골퍼는 5~6명이 포진하고 있다. 또 피겨스케이팅 쇼트랙과 여자 양궁은 한국 선수들 독차지다. 한국영화는 아카데미를 비롯해 내로라하는 국제 영화제를 휩쓸고 있다. 한국 발레는 어떤가. 종주국이 아님에도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들은 세계적인 발레단을 장악하고 있다. 이밖에 초고속 인터넷과 스마트폰 가입률 세계 1위, 세계 최초 5G상용화까지 끝이 없다.

민주화에서도 놀라운 진전을 이뤘다. 4.19, 5.18, 6.29, 촛불혁명까지 한국 민주주의는 면면히 이어졌다. 현직 대통령 탄핵은 민주주의 발상지인 서구 사회조차 놀라운 경험이었다. 국회 탄핵의결, 헌법재판소 탄핵 인용까지 민주주의 교과서에 쓰인 절차적 민주주의를 현실에서 확인한 것이다. 우리는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민주적 절차에 따라 최고 권력자를 끌어 내렸다. 여기까지 적고 보니 웬 ‘국뽕’이냐고 할만하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룬 놀라운 의식 수준을 말하기 위해서다. 우리사회 민도는 빛의 속도로 진화해 왔다. 세 가지 문화에서 확인한다. 줄서기, 화장실, 장묘문화다. 불과 수십 년 전만해도 세 가지는 문화랄 것도 없는 민망한 수준이었다. 새치기는 다반사였다. 기득권층은 권위를 앞세우거나 뒷돈을 주고 줄서기를 파괴했다. 또 서민들은 완력을 믿고 줄을 무너뜨렸다. 나이든 이들조차 나이를 방패삼아 끼어들기 일쑤였다.

새치기가 언제 사라졌는지 가늠하기는 어렵다. 분명한 건 지금은 어디서든 줄서기는 당연하며 익숙한 풍경이 됐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얌체 짓하는 노인도 찾아보기 어렵다. 줄서기는 공정과 직결된다. 신분과 계급, 경제적 이유와 관계없이 차례대로 줄 서는 건 올바른 행위다. 물론 조국 사태에서 확인됐듯 기울어진 운동장도 여전함을 부인하긴 어렵다. 하지만 상식적인 사회에서 새치기는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는 문화다.

화장실 문화 또한 경이적으로 바뀌었다. 70~80년대 화장실을 기억하는지. 지금 화장실 문화는 천지개벽이나 다름없다. 당시 공중 화장실은 어디를 가든 오물 범벅에다 악취가 진동했다. 시골 버스터미널 대합실은 물론이고, 도회지라고 다르지 않았다. 우리 공중 화장실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자랑스러운 문화다. 해외여행을 자주 다녀본 경험에 비춰도 한국 화장실 문화는 차원이 다르다.

장묘문화 또한 혁명적 변화를 거듭했다. 한때 언론은 국토가 묘지로 뒤덮일 것이라는 우려 섞인 보도를 쏟아냈다. 지금은 화장장이 부족하다는 보도가 주를 이룬다. 2020년 화장률은 90.4%로 90%를 넘겼다. 2019년 88.4%, 1971년 7%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10명 가운데 9명을 화장하기까지 50년 밖에 걸리지 않았다. 한국사회는 이렇듯 빛의 속도로 진화하고 있다. 우리 국민은 마음에서 공감하면 빛처럼 움직인다.

IMF 당시 ‘금모으기 운동’은 꼭 들어맞는 집단경험이다. 국제사회는 국가채무 상환에 20~30년을 예상했지만 우리는 3년 만에 끝냈다. 국민들이 장롱 속, 돌 반지와 결혼반지를 기꺼이 내놓은 건 공동체를 우선했기 때문이다. 한데 변화에 유독 둔감한 분야가 정치다.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은 1995년 베이징에서 한국정치를 4류로 규정했다. “기업은 2류, 행정조직은 3류, 정치는 4류.” 그 뒤로 26년이 흘렀지만 크게 다르지 않다.

바뀐 게 있다면 혁신을 추구하는 기업 정도다. 정치와 관료사회는 여전히 구태를 반복하고 권위적이다. 아직도 많은 정치 신인들은 선거 출마에 앞서 돈 걱정부터 한다. 또 여야를 가리지 않고 계파정치는 고질화됐고, 초선마저 눈치를 보느라 입을 닫는다. 선거철이면 개발공약을 남발하는 행태도 변함없다. 더불어민주당은 4.7재보궐선거 당시 ‘가덕도신공항특별법’을 무리하게 밀어붙였다. 국민은 안중에 없는 오만한 행태였다.

여야 대권 주자들 행보도 아쉽기는 마찬가지다. 여전히 세력을 모으고 과시하는 아날로그 방식을 되풀이하고 있다. ‘이준석 돌풍’은 이런 정치는 안 된다는 목소리다. 국민들이 줄서기, 화장실, 화장으로 변화를 보여줬다면 이제는 정치가 답할 차례다. '무엇이 되겠다'가 아니라 '무엇을 하려는지'가 정치를 하는 이유가 돼야 한다. 정치혁신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핵심 과제다. 싫든 좋든 정치가 우리 삶을 규율하기 때문이다.

김태유 교수는 '한국의 시간'에서 “우리는 중진국 함정에 안주하느냐, 선진국으로 도약하느냐 갈림길에 섰다”며 혁신적 발상과 변화를 촉구했다. 한국사회를 한 단계 도약시키고, 공동체를 위하는 정치문화는 언제나 가능할까.

임병식 정치전문 논설위원·서울시립대학교 초빙교수

저작권자 © 한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