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정치전문 논설위원·서울시립대학교 초빙교수

이준석 대표 당선은 '파격에 파격'이다. 그는 비서진 두 명과 백팩을 메고 선거운동을 치렀다. 요란한 선거캠프도 지원 차량도 없었다. 흔한 문자 홍보조차 하지 않았다. 선거운동에 쓴 돈도 3000만원에 불과하다. 불과 한달 전 치러진 더불어민주당 당 대표 선거와는 확연히 다르다. 대대적인 세몰이 선거에 익숙한 기성 정치인들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이준석 표 정치’는 새로운 정치를 알리는 긍정적 변화로 이해된다.

이 대표가 치른 선거는 여러 면에서 몽골기병과 닮았다. 칭기즈칸은 역사상 가장 넓은 땅을 차지한 몽골제국을 건설했다. 몽골기병은 기동력과 유연함에서 뛰어났다. 육포와 바지, 등자는 핵심이다. 그들은 육포를 씹고 말 젖을 마시며 바람처럼 달렸다. 보급 부대가 필요치 않았다. 바지 또한 말 타는데 최적화된 옷차림이었다. 또 병사들은 등자를 사용해 달리는 말 위에서 균형을 유지한 채 화살을 날렸다. 당연히 명중률은 높았다.

정예화된 소수 병력, 짧은 보급선, 뛰어난 기동력. 이 대표가 보여준 선거방식이다. 돈과 세력을 뛰어넘은 저비용 선거가 가능했던 결정적 원동력은 무엇일까. 집권여당에 대한 견제와 정권교체를 바라는 열망이 결합됐다. 윤석열을 유력한 대권주자로 불러냈듯 36살짜리 제1야당 대표를 불러낸 것도 집권여당이다. 발화점도, 증폭 과정도, 결과도 무능한 정권과 오만한 여당이 제공했다고 봐야한다.

징후는 4.7재보궐 선거에서 확인됐다. 서울과 부산에서 치러진 선거에서 민주당은 완패했다. 패인도 고약하다. 41개 자치구에서 모두 패했다. 또 지지층으로 여겼던 2030세대는 대거 이탈했다. 대통령 탄핵 이후 대선, 지방선거, 총선까지 연승을 감안하면 확연한 민심 이반이었다. 그만큼 분노가 거셌다는 반증이다. 무능력과 오만, 독선, 위선에 대한 분노가 쌓인 결과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교훈을 얻지 못한 채 고여 있다.

여전히 당은 친문과 교조주의가 판친다. 쓴 소리를 허용하지 않고, 의원들은 눈치보기로 굴신하고 있다. 쇄신을 요구한 초선의원 5명은 ‘초선 5적’이라는 프레임 아래 간단하게 제압당했다. 당대표, 원내대표 선거과정에서도 친문 위세는 여전했다. 송영길 대표는 가까스로, 반면 친문을 등에 업은 윤호중 원내대표는 수월하게 당선됐다. 최고위원 또한 친문 중심으로 채워졌다. 현상 유지에 근접한 결과다.

보수는 다르게 반응했다. 국민의힘 유권자 가운데 50대 이상은 80%다. 또 절반 이상은 영남권(51.3%)이다. 그런데도 영남은 커녕 원내경험조차 전무한 30대 ‘0’선을 택했다. 여론조사에서 이준석은 2위 나경원보다 두 배 가까이 득표했다. 또 비록 당원투표는 뒤졌지만 3.5%p 차이에 불과했다. 최고위원 또한 4명 중 3명은 여성이다. 보수는 초선, 여성, 호남 출신 조수진을 1위로 선택함으로써 강한 집권의지를 드러냈다.

보수야당에게 변화는 그만큼 절박했다. 이들은 정권교체를 위해서라면 어떤 변화라도 받아들일 태세다. 30대 ‘0’선을 당대표로 선출하고, 박근혜와 이명박을 구속했던 윤석열까지 대권 주자로 호출하는 판국이다. 이준석은 수락 연설에서 ‘공존’ ‘극단주의와 결별’을 내세웠다. 이준석은 세대교체와 정치교체를 위한 플랫폼이나 다름없다. 어디까지 변화할지 지켜보는 동시에 경직된 여당과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

부동산, 탈 원전, 소득주도 성장정책으로 인한 정책실패와 부작용은 간단치 않다. 하지만 누구 할 것 없이 입을 닫고 있다. 국회 상임위원장 독식을 해소하라는 여론에도 애써 눈을 감고 있다. 무엇보다 국민을 편 가르는데 도화선이 됐던 조국 문제를 말끔히 정리하지 못한 채 머뭇거리고 있다. 고작 한다는 게 ‘조국의 시간’에 공감한다는 SNS 글을 앞 다퉈 올리기 급급하다. 거대한 해일이 밀려오는데 한가하게 조개껍질을 줍고 있는 모양새다. 

인사 부실도 둔감하다. 야당이 인사청문회를 정쟁화한다는 비판도 있지만, 강행한 장관급만 33명에 달한다. 검찰개혁도 본질에서 비켜났다. 정권에 불편한 수사를 막고 보복성 인사를 통해 검찰기능을 왜곡시켰다는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최근 양정철은 “민주당은 절박함도 겸손함도 없다”면서 “검찰개혁, 언론개혁 과제는 정권 초기 과제다. 경제와 민생 이슈에 집중하고 매달려도 시간이 부족하다”고 조언했지만 몇이나 수긍할지 의문이다.

이준석 체제 또한 우려가 없는 건 아니다. 지나친 능력 지상주의가 공동체를 와해시키고 승자독식을 강화하지 않을지 걱정이다. 한국사회에서 능력주의는 학벌로 변질 된지 오래다. 세습신분이나 다름없는 현실을 외면한 채 기계적인 능력만 앞세운다면 불평등은 심화될 수밖에 없다. 그가 말하는 능력이 왜곡된 학벌주의로 흐르는 걸 경계한다. 때로는 지식보다 지혜, 패기보다 경륜이 유효한 덕목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준석으로 대표되는 정치권 플랫폼 변화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여야 모두 30대 야당 대표를 통해 분출된 시대적 요구를 헤아릴 필요가 있다. 민주당 또한 파격을 넘어서는 혜안과 안목을 기대한다.

임병식 정치전문 논설위원·서울시립대학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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