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정치전문 논설위원·서울시립대학교 초빙교수

일본 홋카이도에 대한 기억은 강렬하다. 수년 전 첫 방문 당시 숨 막히는 풍광에 압도됐다. 때 묻지 않은 자연경관과 몽환적인 꽃밭은 단숨에 눈길을 붙잡았다.

홋카이도는 풍경을 팔아 돈을 번다. 겨울에는 눈과 설원, 봄과 여름에는 꽃과 바람으로 관광객을 유인한다. 겨울은 겨울대로, 봄은 봄대로, 여름은 여름대로, 가을은 가을대로 독특한 매력을 품은 곳이 홋카이도다. 무엇보다 카펫을 연상케 하는 꽃으로 뒤덮인 벌판과 구릉은 잊지 못할 풍경이다.

삿포로에서 자동차로 북쪽을 향해 2시간여를 달리면 비에이(美瑛)와 후라노(富良野)에 도착한다. 두 곳은 홋카이도에서 손꼽히는 경관농업지역이다. 이곳에서 일상으로 마주치는 풍광은 거대한 꽃밭이다.

연간 100만 명이 찾는 수 십 만 평에 달하는 팜 토미타(富田)’는 대표적이다. 농장에 들어서면 황홀경에 빠진다. 또 관광객들은 이곳에서 라벤더 오일을 이용한 비누와 향수를 사고 식사도 한다. 이렇게 팜 토미타한 곳 수입만 연간 80억원을 넘는다.

후라노와 비에이가 알려진 건 우연한 계기였다. 1976JR홋카이도가 달력을 만들면서 팜 토미타 라벤더 꽃밭을 게재한 뒤 기적이 시작됐다. 빼어난 자연경관에다 경관농업이 결합하면서 폭발적인 주목을 받았다.

경관농업은 주변으로 확대됐고 해마다 유월이면 이 지역은 보랏빛 라벤더로 뒤덮인다. 많은 이들은 해마다 이곳에서 치유를 경험한다. 이제 후라노와 비에이는 일본을 대표하는 농촌관광 1번지이자 성공적인 6차 산업 현장으로 자리를 굳혔다.

후라노와 비에이 못지않은 곳이 전북 고창이다. 지난 주말 고창에서 가능성을 확인했다. 고창은 우리나라 경관농업 1번지다. 첫 출발은 학원농장이다. 귀농한 진영호씨는 1994년 학원농장을 열고 경관농업을 시작했다.

17만평에 달하는 농장에 봄이면 청보리, 여름은 해바라기, 가을은 메밀과 코스모스를 번갈아 심었다. 그때마다 이곳을 찾는 이들은 감동과 위안을 얻고 돌아갔다. 연간 수십 만 명에 달하는 도시인들은 학원농장에 매료됐다.

학원농장에서 시작된 경관농업 바람은 인근 상하농원, 청농원으로 확대됐다. 2016년 문을 연 상하농원은 기업형이다. 개인이 일군 학원농장과 대비된다. 10에 달하는 상하농원은 짓다, 놀다, 먹다를 주제로 한 농어촌 테마공원이다. 여행객들은 동물과 교감하며 된장과 고추장, 치즈와 소시지 제조 과정을 체험한다. 또 숙박과 레스토랑, 수영장을 이용하며 농업농촌을 이해한다. 이런 매력에 힘입어 주말이면 가족단위 관광객으로 북새통을 이룬다.

지난해는 공음면에 청농원이 문을 열었다. 동학농민혁명군 후손인 배정환씨가 조성한 청농원은 2만평 규모로 아담하다. 이 가운데 4,000여 평에 봄 라벤더와 가을 핑크뮬리를 번갈아 심어 사람을 모으고 있다.

지금은 보랏빛 라벤더가 한창이다. 꽃밭 앞에 위치한 고택 술암제는 청농원에 운치를 더한다. 겨우 두 해째지만 벌써 많은 이들이 찾고 있다. 지난 주말 청농원을 방문, 머지않아 이곳도 고창을 대표하는 경관농업 농원이 될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학원농장과 청농장, 상하농원 주변은 관광자원도 풍부하다. 구시포 해수욕장, 운곡 람사르 습지, 선운산, 고인돌 군락지, 고창읍성, 무장읍성을 연결하는 매력적인 관광자원은 더할 나위없다.

고창군은 경관농업에 주목해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로 국내 여행이 활성화되면서 경관농업을 통한 관광활성화와 농가소득 증대를 기대하고 있다. 올해 초 유기상 군수는 유채 꽃밭을 활용한 경관농업 확대 로드맵을 확정했다.

이 결과 지역별로 53개 경관지구(1673여의도 5.7)를 지정해 노란 유채를 심었다. 단일 면적으론 국내 최대 규모(1321). 올봄 고창 심원, 상하, 해리 등 해안지역은 노란 유채 물결로 일렁였다.

고창을 찾은 관광객은 노란 유채 꽃밭 속에서 쪽빛 서해바다를 바라보며 힐링과 치유를 경험하고 돌아갔다. 고창군이 주목하는 경관농업은 농업도 얼마든지 돈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다. 치유와 경제가 어우러진 6차 산업이다.

경관농업은 또한 고부가가치 친환경 농업이다. 최근 불어 닥친 ESG(환경, 사회적 가치, 건강한 지배구조) 기업경영 측면에서도 경관농업은 탁월한 농정이다. 고창에서 꽃핀 경관농업과 6차 산업은 우리 농업이 나아가야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세계적인 투자가 짐 로저스는 농업은 향후 가장 유망하고 잠재력이 뛰어난 산업 중 하나라고 했다. 로저스가 아니라도 농업은 인류가 생존하는 한 유망한 산업이다. 인간은 먹지 않고 생존할 수 없다.

여기에 경관농업은 정서적 치유와 심리적 안정감을 선물하며 또 다른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인간은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명제만큼 분명한 건 없다. 농업은 인간 본능을 충족시키는 데 가장 밀접하다. 농업이 돈이 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임병식 정치전문 논설위원·서울시립대학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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