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정치전문 논설위원·서울시립대학교 초빙교수

독일 서부와 벨기에 네델란드, 룩셈부르크가 물난리를 겪었다. 지난 주 사흘 동안 폭우로 무려 160명이 숨지고, 700여명이 실종됐다. 영국 런던도 하루에 과거 한달 치 비가 쏟아져 도시 곳곳이 물에 잠겼다. 이들이 어떤 나라인가. 독일은 유럽에서 가장 부강한 나라이며 영국, 벨기에, 네델란드, 룩셈부르크도 잘 사는 선진국이다. 하지만 자연재해는 빈부를 구분하지 않는다. 언론은 100년만에 찾아온 기록적 폭우라고 했다.

 

유럽이 물폭탄으로 아수라장이 됐다면 북미지역은 열폭탄으로 불탔다. 캐나다 서부 브리티시컬럼비아는 최근 폭염으로 720여명이 숨졌다. 또 산불로 마을 전체가 불탔다. 브리티시컬럼비아와 인접한 미국 오리건 주와 워싱턴 주도 폭염 때문에 100여명이 숨졌다. 응급실을 찾은 온열질환 환자만 2000여명을 넘겼다. 캘리포니아와 네바다에 걸쳐 있는 데스밸리는 영상 56도까지 치솟았다. 또 캘리포니아 3분의 1은 가뭄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주 내내 40도 가까운 폭염이 계속됐다. 그러다 천둥과 돌풍을 동반한 급작스런 폭우가 반복됐다. 지구촌 곳곳을 휩쓰는 변덕스러운 날씨는 지구가 온전치 못하다는 경고다. 그런데 우리 정치권은 너무 둔감한 게 아닌지 염려된다. 제주 '생각하는 정원'과 경기도 '화담 숲'은 자연과 생태 가치를 일깨운다. 과잉생산, 과잉소비를 멈추고 직면한 기후변화를 어떤 관점에서 바라봐야할지 간단치 않은 메시지를 들려준다.

 

성범영 원장은 '생각하는 정원'에 평생을 바쳤다. 그는 1968년 화산암에 빗물 스미듯 연고도 없는 제주, 그것도 오지였던 한경면에 스몄다. 그리고 한 자리에서 53년째 하늘과 바람을 밑천 삼아 나무와 돌을 매만졌다. 1만3000평 정원에 들어서면 한 인간이 이뤄낸 경이로움과 마주한다. 수백 점에 달하는 분재작품 앞에서 사색에 잠긴다. 미켈란젤로가 붓으로 '천지창조'를 완성했다면 성 원장은 모종삽으로 '생각하는 정원'을 완성 중이다.

 

로마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를 그린 미켈란젤로와 비교해도 손색없는 ‘대한민국 대표정원’이다. 그래서인지 유럽인에게는 최고의 명소다. 장쩌민 주석이 다녀간 뒤 '생각하는 정원'은 중국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렸다. 성 원장은 “사람은 생각과 약속을 이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반면 나무는 때가 되면 순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나무만큼 정직한 건 없다”고 했다. 평생을 나무와 함께한 성 원장의 철학이 담겼다.

 

정원에서 마주친 글은 한층 울림이 있다. ‘분재는 뿌리를 잘라주지 않으면 죽고, 사람은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빨리 늙는다’ 분재는 어느 정도 자라면 뿌리를 솎아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화분에 뿌리가 꽉 차 썩는다. 적기에 뿌리를 솎아내는 게 오래 생존하게 하는 방법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빨리 늙고 도태되기 십상이다. ‘꼰대’에 머물지 않고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건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풍부한 상상력에 있다.

 

LG그룹 구본무 회장이 가꾼 '화담 숲'에서도 삶의 지혜를 발견한다. 41만평에 달하는 '화담 숲'은 17개 테마 공원으로 구성됐다. 서울과 가까운 곳에 이런 공간이 있을까 싶다. 소나무정원, 분재공원, 수국 군락지, 이끼정원, 자작나무숲까지 매력적이다. 걷기에 편한 덱을 따라 산책하듯 걸다보면 2시간30여분이 훌쩍 지난다. 모노레일도 있지만 걷는 즐거움에 비교할 수 없다. 이곳에서도 '구본무'라는 겸손한 나무를 만날 수 있다.

 

“내가 죽은 뒤라도 그 사람이 이 숲만큼은 잘 만들었구나는 말을 듣고 싶다” 그가 생전에 남겼다는 말이다. '화담 숲'을 방문한 누구라도 “당신 덕분에 감사합니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고인은 생전에 작업복 차림으로 전지가위를 들고 틈나는 대로 '화담 숲'을 가꿨다고 한다. 그리고 주변 나무 아래 잠들었다. 자연을 사랑하는 이들은 소박하다. 성범영은 나무를 닮은 깊이와 넉넉함을 지녔고, 구본무는 분란없이 LG와 GS그룹 분리를 마쳤다.

 

'생각하는 정원'과 '화담 숲'은 멈추면 무너지는 ‘자전거 자본주의’와 반대편에 서있다. 자전거는 바퀴를 굴리지 못하면 넘어진다. ‘자전거 자본주의’는 과잉생산과 과잉소비를 동력으로 움직인다. 이는 자연을 파괴하거나 왜곡함으로써 가능하다. 결과는 온난화와 기후변화, 기후재앙이다. 이대로라면 지구 종말은 피하기 어렵다. 유럽 지식인들은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21세기는 없다”고 한다. '2050 거주불능 지구'는 아예 2050년으로 못박고 있다.

 

바이든 취임 이후 기후변화에 대응한 지구적 합의가 활발하다. 우리도 이 같은 움직임에 부응해야 하지만 가능성은 희박하다. 여야 대선 후보들이 쏟아내는 정책과 공약 가운데 자연과 생태에 대한 고민은 보이지 않는다. 자연과 생태 파괴, 기후변화가 가져올 미래는 코로나19보다 더 파멸적이다. 사람은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도태된다. 정치 지도자가 생각을 바꾸지 않는 나라의 미래세대는 암울하다. 생태적 상상력을 갖춘 정치 지도자를 기대하는 게 욕심인가.

김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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