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정치전문 논설위원·서울시립대학교 초빙교수.

박원순 전 서울시장 측 법률대리인을 맡고 있는 정철승 변호사가 뜬금없이 여론의 중심에 섰다. ‘101세 철학자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에 대한 도발적 발언이 도화선이 됐다. 그는 김 명예교수가 최근 문재인 정부를 잇달아 비판하는 것에 대해 이래서 오래 사는 것이 위험하다는 옛말이 생겨난 것이라고 했다. 어째서 지난 100년 동안 멀쩡한 정신으로 안 하던 짓을 (정신이) 탁해진 후에 시작하는 것인지. 노화현상이라면 딱한 일이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김 명예교수를 입신양명만 좇아 안온한 삶을 산 사람으로 깎아내렸다.

 

발언을 접한 순간 또 한명의 관종이 나타났구나하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한국사회를 대표하는 지식인을 노망난 늙은이 정도로 매도할까 싶었다. 우리사회가 나이든 이를 예우하는 건 그가 축적해온 삶과 경륜, 지혜를 존중해서다. 이는 이념, 진영과는 관계없는 사회질서다. 그런데 정철승은 진영논리에 포획된 나머지 저주에 가까운 패륜적 막말을 쏟아냈다. 올해 정철승은 51, 김형석은 101세다. 비판하는 것과 나이가 무슨 상관인지, 또 나이든 사람은 비판해서는 안 된다는 건지 그 인식구조가 한심하다.

 

정철승의 독설은 민주당 의원의 막말과 맞물려 증폭됐다. 민주당 초선 김승원 의원은 지난 달 언론중재법이 국회를 넘지 못하자, 박병석 국회의장에게 **’를 뜻하는 ‘GSGG’라고 했다. 박 의장은 같은 당 출신이자 6선 의원이다. 또 윤건영 의원은 윤석열 후보 캠프에 합류한 예비역 장성을 겨냥해 배신자 운운하며 별 값이 똥값 됐다고 힐난했다. 군에서 진급과 보직은 사적 시혜가 아니며, 또 전역 군인은 정치적 자유가 있다. 공개 방송에서 배신자’ ‘똥별을 거론한 건 낯뜨거운 진영논리를 보인 것에 지나지 않았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자유로운 비판은 상식에 속한다. 심지어 위계질서가 지배적이던 조선시대도 사상 논쟁은 치열했다. 58살 스승 이황과 32살 제자 기대승 사이에 벌어진 사단칠정론은 대표적이다. 두 사람은 '()''()'라는 개념을 놓고 8년간 편지를 주고받으며 논쟁을 벌였다. 스승과 제자, 26살 나이를 뛰어넘은 논쟁은 결과적으로 사상적 발전을 이뤘다. 두 사람은 서로 예우하고 공대하며 논쟁을 이어갔다. 김형석과 정철승도 이와 같으면 좋았겠지만 정철승은 합리적 비판과 공대를 상실한 채 감정 섞인 저주를 쏟아냈다.

 

정철승은 다음 날에도 궤변에 가까운 주장을 이어갔다. 그는 고대 로마의 귀족 남성들은 자신이 더 이상 공동체에 보탬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되면 스스로 곡기를 끊어 생을 마쳤다면서, ‘적정 수명과 관련 요즘은 80세 정도가 한도선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했다. 말인즉슨 80세 이상은 사회비판에 입을 닫아야 한다는 것이니 황당하다. 권력비판은 지식인의 책무 중 하나다. 지식인이라면 어느 자리에서든 불의한 권력과 부당한 억압에 저항하고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침묵은 오히려 비겁한 보신일 뿐이다.

 

권력비판에는 특정한 나이가 정해진 것도 아니다. 나이와 신분에 관계없이 누구라도 언제든 권력에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민주화는 상식 있는 국민과 비판정신을 지닌 지식인들이 권력에 맞서 쟁취한 결과물이다. 정철승처럼 비판은 거세된 획일적인 목소리만 강요하는 사회는 위험하다. 더구나 평균 수명 운운은 인간적 도의에도 맞지 않는다. 민주주의 가치를 우선하는 민주당이라면 정철승 같은 이들이 쏟아내는 막말을 경계하고 바로 잡아야 한다. 헌데 같은 편이라고 동조하거나 침묵하고 있으니 불편하다.

 

교수를 뜻하는 프로페서(professor)’의 어원은 비판정신에 있다. Pro앞에’, Fessor말하는 사람이다. , 권력 앞에서 주저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이 교수다. 그래서 서구사회는 권력비판에 따른 불이익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영구 교수인 테뉴어(Tenure)’ 제도를 정착시켜왔다. 평생을 강단에 섰던 김 명예교수가 사회 현상을 비판하는 건 지극히 자연스럽다. 상식적인 사회라면 101세에도 불구하고 사회에 대한 관심을 게을리 하지 않고 혜안과 쓴 소리를 던지는 그에게 오히려 존경하고 감사해야 한다.

 

김 명예교수 산케이신문과 인터뷰에서 북한·중국처럼 가족사이에도 진실을 말할 수 없게 되면서 진실과 정의, 인간애가 사라지게 된다고 비판했다. 악화된 한일관계를 방치하는 건 향후 한일 젊은이들의 희망을 빼앗는 일이라고 조언했다. 우리 언론 현실을 북한과 중국에 비교한 건 지나친 측면이 없지 않다. 정철승의 주장이 당위성을 확보하려면 이 같은 지점을 비판했어야 했다. 헌데 그는 감정을 앞세워 진보진영 전체를 욕보였다. 또 산케이신문과 인터뷰를 노망난 행동 정도로 폄훼한 것도 좀스러웠다.

 

노인 한명이 세상을 뜨면 도서관 하나가 사라진다는 말이 있다. 101세 노 철학자가 밤 새워 자료를 모으고 깊은 사유 끝에 토해낸 쓴 소리조차 포용하지 못하는 진보라면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 어쩌다 우리사회가 인간에 대한 예의도 아량도 상실한 채 각박하게 변했는지 안타깝다. 정치도 좋지만 사람이 우선 돼야하지 않을까.

김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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