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춘(왼쪽) 전 비서실장과 조윤선 문체부 장관.   /사진=연합뉴스

[한국스포츠경제 정재호] 1만 명에 가까운 인사들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가 2014년 청와대의 지시로 작성됐다는 의혹을 놓고 김기춘(77)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50)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당시 청와대 정무수석) 등이 박근혜ㆍ최순실 게이트를 수사할 박영수(64) 특별검사팀에 고발당했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조윤선 장관은 국회 답변을 통해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부인했지만 문체부 전직 고위 관계자의 새로운 증언이 속속 나오며 파문은 증폭되는 양상이다.

문화연대 등 12개 문화예술인 단체는 지난 12일 특검팀이 꾸려진 서울 대치동 대치빌딩 앞에서 김 전 비서실장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와 강요, 업무방해 등 혐의를 수사해달라며 고발장을 접수했다. 고발당한 사람은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조윤선 장관을 비롯해 9명이다.

문체부의 전직 고위 관계자는 15일 본지와 통화에서 “그것(블랙리스트)은 나중에 밝혀질 것 같긴 하다”며 “존재하는 것 같다. 다만 몇 만 명 수준은 아닌 것 같다. 중복되는 부분도 있다. 정부에 반한 시국 선언을 한 사람들이 포함됐다고 얘기되는 것 같다”고 블랙리스트 존재 가능성을 언급했다.

김기춘 전 실장 등이 주도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고(故)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 비망록에 지시하는 것이 나온다고 들었다. 그 시기에 실제로 그런 분위기가 많이 접수됐다. 비망록 내용을 보도로 접하고 ‘그 때 그래서 그랬구나’라는 추정이 된다”고 덧붙였다.

2014년 10월 문체부 1급 공무원 6명이 일괄사표를 내고 이 중 3명이 실제 옷을 벗은 것 역시 청와대의 지시였는지에 대해서도 이 관계자는 “사실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김기춘 전 실장과 조윤선 장관 등의 특검 고발에 앞장 선 문화연대의 이원재 문화정책센터 소장은 블랙리스트가 있느냐는 본지의 질문에 “존재한다”라고 단언했다. 그는 “왜냐하면 그 동안 언론이 취재한 것도 그렇고 우리가 현장 증언을 들은 것도 그렇고, 지금 오픈할 수는 없지만 문체부 전ㆍ현직 관료들이 진술하는 것도 그렇다. 무엇보다 이미 국회에서 공개된 회의 결과록들을 보면 반드시 블랙리스트 명단은 있는 것이다. 다만 문건이 어떤 형식으로 돼 있는지는 확인이 안 된다. 하지만 있는 것은 맥락상으로 팩트라고 본다”고 강조했다.

이원재 소장은 이어 “김영한 전 수석의 비망록이나 도종환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제기한 예술위원회 회의록이 조작된 게 아니라면 전방위적 예술 검열이 있었다는 건 사실”이라면서 “오히려 제기되고 있는 의혹에 대해 뒤집을 만한 근거를 당사자들이 제시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충성하는 공직 윤리가 있는 사람이라면 지금 ‘나는 아니라’라고만 말할 게 아니라 자기가 어떻게 아닌지를 설득력 있게 말해야 되는데 그런 게 하나도 없다”고 덧붙였다.

문제의 블랙리스트는 지원하지 말아야 할 문화예술계 인사 및 단체들의 명단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앞서 7일 최순실 국정농단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2차 청문회에 출석한 김기춘 전 실장은 "교육ㆍ문화 쪽의 소관인데 블랙리스트니 좌파를 어떻게 하라느니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블랙리스트 존재 등에 대해 모른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조윤선 장관 역시 지난 10월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종합감사에서 도종환 의원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문건이 내부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주장에 대해 ”그런 문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고받았다"고 부인했다.

문체부 측은 블랙리스트 존재 유무를 알려달라는 본지의 요청에 “담당자가 연가 중이라 정확한 답변을 드릴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다만 조윤선 장관이 정무수석 시절 블랙리스트 작성을 주도했다는 언론 보도에 대해선 “명백한 오보이고 언론중재위원회 정정 보도 청구를 포함한 법적 대응을 적극 검토 중”이라고 재확인했다.

정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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