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전태일 열사의 그날 다뤄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방송화면 캡처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방송화면 캡처

[한스경제=이수현 기자]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에서 전태일 열사를 다뤘다.

1970년은 기성복이 새로운 대세가 되고 있었다. 그리고 기성복을 제작 및 판매하던 평화시장은 많은 사람이 찾는 쇼핑몰이 됐다.

당시 평화시장은 1층은 매장, 2층과 3층은 공장이 있었고 400여 개 업체가 이를 운영했다. 하지만 수많은 노동자가 일함에도 환풍구는 단 하나도 없었고 휴일 또한 한 달에 이틀 정도일 정도로 근무 여건이 좋지 않았다.

전태일 또한 평화시장에서 일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노숙을 하고 여동생을 보육원에 맡길 정도였던 전태일은 평화시장에 일하면서 가족을 모을 수 있었다.

전태일이 노동자의 현실에 관심을 가진 것은 피를 토하는 노동자를 본 이후였다. 당시 공장은 공기질이 나빠 폐렴 환자가 많이 발생했고 공장은 폐렴 환자를 발견 즉시 해고했다.

참혹한 현실에 고민하던 전태일은 근로기준법 해설서를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법으로 정해진 근로 시간과 휴식에 관한 내용을 찾아냈다.

이후 노동청과 방송국에 찾아가 노동자의 현실을 알렸다. 그러던 중 노동청 앞에서 기자를 만나 하소연했고 관련 내용이 기사에 실려 세상에 알려졌다.

기사가 나간 후 노동청은 요구를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후로 연락이 오지 않았고 전태일과 친구들은 국정감사 중이었던 노동청 앞에서 시위를 하고자 했다.

이를 들은 노동청은 전태일 측과 점심 식사를 제안했다. 식사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이어졌지만 식사가 끝난 후 노동청의 태도가 바뀌었다. 그날 노동청 국정감사가 끝났고 시위를 막기 위해 식사 자리에 이들을 초대했던 것.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방송화면 캡처

현실이 바뀌지 않자 전태일은 친구들과 근로기준법을 태워 세상에 현실을 알리고자 했다. 그런데 시위 직전 전태일을 주시하고 있던 형사에게 제지당해 시위는 실패했다.

전태일은 대신 자신의 몸에 불을 붙여 현실을 알리고자 했다. 그리고 온몸에 불이 붙은 상황에서 길가로 뛰쳐나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라고 소리쳤다. 불은 꺼졌지만 이미 전태일의 온몸은 심각한 화상을 입은 후였다.

소식을 들은 전태일의 어머니는 병원으로 달려왔다. 전태일은 어머니에게 "내 목숨을 바쳐 창구멍 하나 내놓고 있겠다"라며 "앞장서서 소리를 질러 창구멍을 더 넓혀달라"라고 말하며 자신과 약속할 것을 요구했고 여러 차례 약속을 받아낸 후 숨을 거뒀다.

전태일의 친구들은 전태일의 마지막 말을 혈서로 작성해 나섰고 이들의 모습을 본 사회는 큰 충격에 빠졌다. 특히 대학생들은 부끄럽고 미안한 감정을 담아 시위를 조직하기도 했다.

전태일의 어머니는 여러 회유와 협박에도 전태일과 했던 약속을 지켰다. 평화시장 첫 노동조합 운영을 도왔고 노동자 시위에 앞장섰다.  친구들 또한 전태일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게 평생을 살아왔다고 밝혔다.

이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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