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선비의 흔적 살아 숨 쉬는 '개평한옥마을'
대통령도 사랑한 전통주 '솔송주'
밤이 되면 화려한 변신 '남계서원'
선비가 즐긴 풍류 그대로 '선비문화탐방로'
생활관광 프로그램 '산삼캐기', '압화 만들기 체험'
개평한옥마을 전경 / 함양=이수현 기자 jwdo95@sporbiz.co.kr

[함양=한스경제 이수현 기자]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함양은 세상과 단절된 듯하다. 북쪽으로는 덕유산이 솟아있고 남쪽으로는 지리산이 우뚝 서 있다. 두 산을 따라 작은 산이 이어지니 함양에서는 어디를 가도 하나의 요새처럼 느껴진다.

높은 산의 기운을 받아서일까, 함양은 예로부터 많은 선비를 배출한 선비의 고장이었다. 그들의 흔적이 남은 전통 한옥과 서원은 여전히 그 땅에 남아 우리에게 선비의 삶이 무엇인지 깨닫게 한다. 그리고 밤이 되면, 화려한 미디어아트 쇼와 하늘을 수놓은 찬란한 별빛이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함양군은 함양의 숨겨진 매력을 알리고자 생활관광 프로그램 '함양 온데이(on day)'를 운영하고 있다. 3박 4일간 이어지는 프로그램은 정해진 체험을 하거나 자유롭게 함양을 여행할 수 있다. 멋스러운 한옥에 머물며 함양을 천천히 즐기다 보면 마음속 평안을 찾는다.

개평한옥마을 골목 / 함양=이수현 기자 jwdo95@sporbiz.co.kr

◆ 남도 양반집의 정석 '개평한옥마을'

함양군 지곡면 개평한옥마을은 풍천 노씨와 하동 정씨 고택, 조선 말기 바둑계 일인자 사초 노근영 선생이 태어난 '노참판댁 고가' 등 60여 채 한옥이 보존된 곳이다.

그 중 '함양일두고택'은 마을 명당지에 자리한 인기 방문지다. 1570년 일두 정여창 선생 생가 자리에 지어진 이 장소는 이름은 낯설지만 여러 드라마 촬영지로 쓰인 덕에 그 모습은 익숙하다. '미스터 션샤인'에서 김태리가 연기한 '고애신'의 집이 이곳이고 박은빈이 출연한 '연모' 속 이조판서댁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개평한옥마을 '함양일두고택' / 함양=이수현 기자 jwdo95@sporbiz.co.kr

일두 정여창 선생은 조선 전기 유학자로 성리학사에서 김굉필과 조광조, 이언적, 이황과 함께 5현으로 칭송받는 인물이다. 사후 사화에 휘말려 부관참시를 당하는 등 여러 고난을 겪기도 했지만 올곧은 성품으로 선비들의 존경을 받아 함양을 넘어 조선을 대표하는 학자가 됐다.

후손들은 여러 차례 고택을 중건해 전형적인 경상남도 양반집 형태를 갖췄고 지금도 살림살이가 그대로 남아있어 당시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정문인 솟을대문에는 다섯명의 효자와 충신을 배출했음을 알리는 문패가 걸려 있어 그 멋을 더하고 사랑채에는 '충효절의'라고 적힌 커다란 간판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함양 솔송주 / 함양=이수현 기자 jwdo95@sporbiz.co.kr

◆500년 전통 증류주 '솔송주'에 취해볼까

일두고택을 나오면 바로 옆에 마련된 솔송주 체험관이 발길을 사로잡는다. 정여창 선생의 부인이 솔잎을 넣어 술을 빚은 이후 집안 대대로 비법이 내려오고 있다. 지금은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35호 기능 보유자이자 대한민국 식품명인 제27호인 박흥선 명인이 솔송주를 빚고 있다.

체면을 중시하는 양반가와 술은 어울리지 않는 한 쌍 같지만 예로부터 양반가는 자신들만의 술을 빚어왔다. 제사에 사용하거나 손님을 대접하는데 술이 필요했기 때문에 특색있는 술은 가문의 자랑이자 상징 중 하나였다.

하동정씨의 자부심이 들어간 솔송주는 오랜 역사답게 그 맛과 향이 뛰어나 여러 대통령의 사랑을 받았다. 노무현과 이명박 전 대통령은 각각 남북정상회담과 람사르 총회에서 솔송주를 공식 만찬주로 사용했고 박근혜와 문재인 전 대통령도 솔송주에 애정을 드러냈다.

술을 증류시키는 소줏고리 / 함양=이수현 기자 jwdo95@sporbiz.co.kr

지금도 백 명인은 전통 방식을 고수하며 그 맛을 지켜오고 있다. 체험관을 방문하면 증류기의 일종인 소줏고리를 이용해 소주를 제작하는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한 번에 3방울씩 떨어지는 증류주는 오랜 기다린 만큼 가치가 빛을 발한다.

함양 생활관광 프로그램을 신청하면 솔송주로 칵테일도 만들고 시음도 할 수 있다. 40도 솔송주인 담솔에 라임과 민트, 탄산수를 넣어 완성하는 칵테일은 향긋한 솔잎향이 라임, 민트와 어우러져 그 향이 일품이다.

정문을 지나 마주하는 남계서원 / 함양=이수현 기자 jwdo95@sporbiz.co.kr

◆ 화려한 미디어아트쇼 펼쳐지는 '남계서원'
함양 여행의 장점은 한껏 여유를 부릴 수 있다는 점이다. 각 관광지의 거리가 가까워 시간에 쫓겨 움직일 필요가 없다.

일두 정여창을 모시는 남계서원도 개평한옥마을에서 차를 타고 약 10분이면 닿는다. 1552년에 지어진 서원은 1556년 백운동서원에 이어 전국에서 두 번째로 남계(藍溪)라는 사액(임금이 이름을 지어 편액을 내림)을 받았다. 정유재란 당시 불타 없어진 후 1612년 재건됐고 흥선대원군의 사원 철폐에도 살아남아 지금도 정여창 선생과 여러 성현을 모시고 있다.

선비 문화가 발달한 함양답게 남계서원은 남다른 건축 양식을 자랑한다. 정문인 풍영루를 지나면 바로 앞에 선비들이 공부하던 강당이 보이고 그 뒤 가장 높은 곳에 성현을 모신 사당이 자리했다. 앞으로 쭉 뻗은 건물 배치는 이후 생겨나는 지역 서원에 많은 영향을 줬고 2019년 7월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유산목록에 등재됐다.

남계서원 미디어아트쇼 '빛의 노래, 서원을 밝히다' / 함양=이수현 기자 jwdo95@sporbiz.co.kr

밤이 되면 남계서원은 찬란한 빛을 낸다. 10월 30일까지 매일 저녁 남계서원에서 화려한 미디어아트쇼 '빛의 노래, 서원을 밝히다'를 진행한다. 기품이 넘치는 서원은 형형색색 빛이 더해져 더 웅장한 자태를 자랑한다.

선비문화탐방로에서 마주하는 동호정 / 함양=이수현 기자 jwdo95@sporbiz.co.kr

◆ 선비의 풍류 그대로 '선비문화탐방로'

함양 선비의 흔적은 계곡에도 남아있다. 선비들은 정자에서 벗들과 학문을 논하고 풍류를 즐겼고 영남 선비들이 과거를 보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했던 함양은 덕유산을 지나기 전 풍류를 즐기기 좋은 곳이라 곳곳에 정자와 누각이 지어졌다.

서하면 화림동계곡은 그 중 으뜸이라 예로부터 8개의 못과 8개의 정자라는 뜻의 '팔담팔정'(八潭八亭)이라고 불리며 선비들의 사랑을 받았다. 시원한 물소리가 귀를 자극하고 짙푸른 숲에 눈이 호강한다. 뒤로는 산이 있고 앞으로는 계곡물이 흐르니 명당이 아닐 수 없다.

함양군은 계곡을 따라 '선비문화탐방로'를 설치해 방문객이 더 편하게 관람할 수 있도록 했다. 총 길이 6.2km인 '선비문화탐방로'는 농월정터를 출발해 동호정과 군자정을 거쳐 거연정에서 마무리된다.

동호정에서 가야금을 연주하는 진막순 함양군 국악협회 지부장 / 함양=이수현 기자 jwdo95@sporbiz.co.kr

코스 중간에 자리한 동호정은 임진왜란 당시 선조 임금을 등에 업고 의주로 피난했다는 동호 장만리 선생을 기리기 위해 1890년 경 지어졌다. 고풍스러운 정자 내부는 용 그림 등 화려한 그림이 눈을 사로잡고 주변 짙푸른 숲은 더위를 식혀준다.

생활관광 프로그램을 신청하면 정자에서 한국국악협회 함양지부장인 진막순 선생의 가야금 공연을 즐길 수 있다. 흥겨운 가야금 선율에 맞춰 노래를 부르면 자연스레 선비의 풍류에 취한다.

함양 산삼캐기 체험 / 함양=이수현 기자 jwdo95@sporbiz.co.kr

◆ 생활관광 프로그램 '산삼캐기', '압화 체험'도 즐길거리

높은 산이 많은 함양은 천혜의 자연 덕에 산삼으로 크게 이름을 알렸다. 지금은 함부로 산삼을 채취할 수 없지만 함양 생활관광 프로그램을 신청하면 지정된 농원에서 산삼캐기 체험을 할 수 있다.

산삼캐기 체험은 어디서도 쉽게 하기 힘든 진귀한 경험이다. 산에서 산삼을 찾기 어려울 듯하지만 걱정할 필요 없다. 누구나 쉽게 산삼을 찾을 수 있도록 함양에서 산삼 농원을 운영하는 어르신이 도와주기 때문에 모두가 한 손에 굵직한 산삼 한뿌리씩 들고 체험을 마무리한다.

압화체험에 쓰이는 야생화 / 함양=이수현 기자 jwdo95@sporbiz.co.kr

압화 체험 또한 추천할만하다. 마른 꽃과 잎을 이용해 작품을 만드는 압화는 만드는 사람에 따라 개성 넘치는 작품을 만들 수 있다. 자리에 앉아 원하는 꽃을 골라 신중히 작품을 만든다. 개평한옥마을에서 즐기는 압화 체험은 함양 어르신들이 계절마다 피어나는 꽃을 직접 손질해 색이 뛰어나다.

속도는 느려도 하나씩 정성스레 작품을 만들다 보면 어느덧 자신만의 작품이 완성된다. 작품을 만든 후에는 다른 이들 앞에서 자기 작품을 자랑한다. 작품을 만들면서 들었던 생각을 천천히 되짚어가며 설명하다 보면 복잡했던 마음마저 함께 안정되는 기분이다.

이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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