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유아정 기자] 수많은 화장품 가운데 립스틱만큼 요란한 아이템이 있을까. 단순히 입술에 색깔을 더하는 제품일 뿐인데, 립스틱이 가진 상징성은 다양하다.

최초의 입술 화장을 한 여성은 이집트 클레오파트라로 알려져 있다. 대략 기원전 69년 전에 클레오파트라는 부처꽃과 식물인 헤너를 사용해 입술을 붉게 칠했다. 아름다움을 과시하기 위해 사용되던 립스틱은 15세기엔 영국 사제들로부터 ‘사탄의 작품’이라 비난당하며 수모를 겪었다. 그러나 엘리자베스 1세는 죽을 때 립스틱 두께가 거의 1cm에 육박할 정도로 입술화장 사랑에 진심이었으며, 루이 15세의 정부 마담 퐁파두르는 죽는 순간 “내 립스틱 단지를 가져다 다오”라는 패셔너블한 유언을 남겼다고 알려질 만큼 생의 마지막까지 립 메이크업에 공을 들였다.

립스틱이 오늘날 외양을 갖추게 된 것은 1871년 프랑스 화장품 회사 겔랑이 최초의 고체용 상용 립스틱을 내놓으면서다. 1915년엔 미국의 발명가 모리스 레비가 오늘날 우리가 립스틱이라 부르는 총알 모양의 슬라이딩 튜브를 처음 선보이면서 대량생산을 가능케 했다. 덕분에 여성들은 그동안 확인되지 않은 레시피로 비밀스럽게 만든 립스틱을 몰래 숨어 바르던 고생에서 벗어나 상점에서 당당하게 구매할 수 있게 되었다.

오랜시간 여성미와 섹슈얼리티의 상징으로 군림하던 립스틱은 시대를 더하며 더욱 다양한 의미를 갖게 됐다. 1912년 여성 참정권을 요구하는 시위대의 붉은 입술 덕에 립스틱은 여성 해방을 의미하게 되었고, 1930년대 미국의 대공황기에 ‘립스틱 효과(Lipstick effect)’라는 용어를 탄생시키며 경제학의 영역으로 들어왔다. 당시 여성들은 경제난에 시달렸음에도 불구하고 립스틱 소비에 지갑 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동안 립스틱 효과란 립스틱만 발라도 메이크업의 전체적 분위기를 바꿀 수 있다는 의미로 사용됐지만, 대공황기를 기점으로 불황기에 립스틱같은 저가 화장품 매출이 증가하는 현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국내에서도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백화점 립스틱 매출이 20~30% 증가한 바 있다.

그러나 지난 3년간의 코로나발 경제 위기엔 양상이 달랐다.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으로 세계 경제는 깊은 슬럼프에 빠졌으나 예전같은 ‘립스틱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웠다. 그도 그럴 것이 바이러스 침투를 막기 위해 마스크를 상용화하면서 꾸밈에 대한 필요성이 절대적으로 낮아졌기 때문이다. 특히 입술 색조 화장에 대한 욕구는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 심지어 마스크에 묻어난다는 단점 때문에 립스틱을 바르는 것에 불편함을 호소하는 여성들도 늘어났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이 2022년 말 화장을 일상적으로 하는 여성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마스크 착용시 립스틱을 바르지 않는다고 답한 여성이 90%에 달할 정도였다. 이러한 비호는 비단 립스틱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코로나 이전 세계적인 뷰티시장의 매장 내 구매율은 최대 85%에 달했지만 코로나 이후 약 30% 이상의 매장이 문을 닫았다.

그러나 마스크 의무 착용 해제 이후 립스틱 매출이 기지개를 펴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은 지난 1월 화장품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17% 증가했다고 발표했으며, 롯데백화점도 색조 화장품 매출이 전년 동기보다 40% 신장했다고 전했다. 20대 여성 고객이 즐겨 이용하는 패션 플랫폼에서는 이러한 경향이 더 뚜렷하게 나타났다. 실내마스크 의무 착용 해제를 발표한 지난 1월 20~26일 사이에 지그재그의 1월 립스틱 거래액은 전년동기 대비 387% 증가했다. 티몬 역시 블러셔·하이라이터·쉐딩 등 치크 제품의 매출이 전년동기대비 93%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그 중 립스틱 매출은 전년 동기대비 두 배가 넘게 (112%) 증가했다.

이처럼 3년 만에 마스크 지침 완화를 계기로 풀 메이크업이 가능해지면서 화장품 업계는 본격적인 회복세를 이어갈 것으로 기대하는 모양새다.

업계 관계자는 “마스크로 인해 가려졌던 메이크업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증가하면서 화려한 색감의 메이크업 제품들이 주목을 받고 있다”며 “스킨케어 위주의 소비 패턴에서 점차 색조 제품에 대한 소비로 이어지며 올 한해는 분기를 거듭할수록 화장품 업계의 긍정적인 회복세가 두드러질 전망이다”고 전했다.

그동안 마스크에 존재감을 뽐내지 못했던 립스틱이 제 역할을 한다니 기쁘지만, 불경기라 ‘립스틱 효과’가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이라면 마냥 반가워할 수만 도 없는 일이다. 다만, 코로나 덕분에 ‘불황에는 립스틱’이라는 공식이 이제 언제까지 유효할지는 지켜볼 일이다.

 

유아정 기자

저작권자 © 한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