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애 경희사이버대학교 객원교수·경영학박사 
김선애 경희사이버대학교 객원교수·경영학박사 

[한스경제=김선애 교수] 2023년 10월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의 시범 시행으로 ‘탄소통상’이 본격적으로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EU 공급망 실사 지침에 따라, EU 공급망에 편입된 기업들의 환경과 인권에 대한 실사가 독일을 필두로 실시될 예정이라 대(對) EU 우리 수출기업들은 기후위기발 혹은 ESG경영발 급변하고 있는 수출환경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이 가운데, 그린딜을 통한 친환경산업 육성을 내세웠던 EU는 미국의 IRA(Inflation Reduction Act)로 인해 자동차와 배터리 기업 유출과 역내 제조업 경쟁력 약화를 우려해 올해 초 탄소중립산업법과 핵심원자재법 초안을 발표하며 적극적인 산업보조금 집행을 선언하고 있다. 미국은 전기차 및 배터리 관련 세액공제를 담고 있는 IRA와 더불어 인프라 투자 및 일자리법, 반도체 과학법과 함께 본격적으로 자국 중심의 공급망 구축에 나서고 있는 모양새다.

미국과 EU의 이러한 움직임으로 인해 탈탄소화를 위한 패러다임 전환은 이제 각국의 보조금 전쟁 국면으로 돌입한 듯하다.

이런 역동적인 대외 경제환경 변화의 보다 직접적이고 근본적인 원인은 중국의 부상이다. 이를 견제하기 위해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친환경 에너지전환과 디지털전환을 통한 산업구조 개편에서 우위를 점할 목적으로 핵심 품목에 대한 공급망 안정화에 대한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방법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팬데믹 이후 글로벌공급망 위기가 여실히 드러났으며, 이러한 맥락에서 경제안보라는 개념이 주요한 배경 논리로 부상하고 있다. 최근 미국의 입장에서  경제안보는 반도체, 배터리, 희귀광물, 바이오 4대 핵심 품목의 공급망 안정화일 것이며 EU 또한 탄소중립산업법과 핵심원자재법 발표와 관련하여 이 같은 경제안보를 배경으로 내세우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EU와 미국의 이러한 정책들에 대해 '그린보호무역주의'로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그린보호무역주의는 온실가스감축 등 기후변화 대응이나 환경정책수행을 겉으로 내세우면서 실질적으로는 외국기업의 자국시장 접근을 제한하고 자국기업의 경쟁력확보를 도모하는 조치를 의미한다.

UNFCCC의 원칙인 '공동의 그러나 차별화된 책임'(CBDR: Common But Differentiated Responsibility) 관점에서 볼 때, 최근 EU CBAM 같은 무역장벽이나, 자국 중심의 보조금 활용 탄소중립 정책들은 개발도상국들의 수출 활동을 제한하고 선진-개발도상국 간 관련기술 접근성에 대한 불평등을 야기해 전 지구적 이슈 즉, 탄소감축을 위한 국가 간의 협력을 끌어내는 동력을 상실하게 할 수 있다.

또한 각국이 취하는 태양광패널 등, 친환경 수입제품에 대한 규제들은 재생에너지산업을 위축시키고 그 결과, 글로벌 에너지전환속도가 늦춰져 2050 탄소중립 달성을 힘들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그린보호무역주의에 대한 우려의 골자다.

근본적으로 WTO 체제의 자유무역은 각 국가의 경제성장을 촉진할 뿐만 아니라 첨단기술의 각국 전파를 쉽게 하고, 시장 규모를 확대해서 기업들에게 저탄소 기술개발과 혁신에 대한 동기부여를 제공해 경쟁을 바탕으로 한 비용 저감을 이루게 한다. 궁극적으로 저탄소 경제로의 전환을 촉진 시키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렇듯 넷제로 달성을 위해서는 공정한 경쟁체제 하의 자유무역의 역할이 필요하고, 각 국가의 경제성장을 촉진 시킬 수 있는 글로벌 무역시스템을 위해서도 전 지구적 협력하에 저탄소 전환정책 이행이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UNFCCC와 WTO 두다자체제의 가치와 목표가 최근 경제 안보라는 논리 앞에서 무력해지고 있는 듯해 보인다.

2050 넷제로 목표 자체가 글로벌 무역시스템에 위협이 되고 있다는 사실 또한 부인하기는 힘들다. 파리협정의 bottom-up 접근은 197개 UN 회원국 모두의 탄소감축 동참을 끌어냈으나, 각 국가 간의 목표와 정책에 있어서 수준의 차이를 낳았다. 이는 정책 수준이 높지 않은 국가들로부터 수입되는 철강 같은 탄소집약도가 높은 제품들에 대한 관세 채택에 대한 압력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EU CBAM 수립의 배경이다.

사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시기에도 보조금 전쟁, 그린보호무역주의, 규범과 질서, 통상과 기후변화 연계, 탄소국경세 등이 논의됐었다. 하지만 현재와의 분명한 차이점은 미·중 패권 전쟁, 탄소중립을 둘러싼 에너지전환과 디지털전환이라는 대외 환경변화다.

최근 글로벌 통상의 핵심 이슈는 양적에서 질적 시장 접근으로, 상품에서 디지털과 서비스 중심으로, 노동과 기후변화 대응이 핵심의제로 부상하는 가운데, 안보와 관련된 핵심 품목의 안정적 공급망 확보를 중심으로 변화할 것으로 예상된다(KITA, 2023). 글로벌 통상 측면에서 본다면 미국과 EU가 중국을 견제하는 주요 수단은 노동과 환경으로 알려져 있으며, 따라서 기후변화 이슈는 이제 더 이상 UNFCCC의 국가 간 협력대상으로만 남아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즉, 공정한 경쟁을 강조하는 WTO와 협력을 강조하는 UNFCCC라는 분명하게 다른 두 체제의 이슈인 기후변화와 국제통상은 상호보완적인 관계로 인식됐지만, 탈탄소 사회로의 전환이라는 목표 앞에서, 지정학적 위기와 산업구조변화로 이 관계 역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전 세계가 당면한 기후위기가 지금까지 지켜져 왔던 국제경제 질서와 규범의 위배를 정당화 시켜주며, 보다 근원적으로 재정립시키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러한 변화의 방향에서 탄소무역장벽으로 인식되고 있는 미국과 EU 주도의 정책들은 기후변화와 통상이라는 단절된 각각의 분야를 넘어 여러 분야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빅픽쳐 안에서 새로운 Rule Setting 이라는 통합된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당분간은 경제안보 개념이 그린보호무역주의라는 비판에 비해 힘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미·중 관계가 가까운 미래에 드라마틱하게 좋아질 가능성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김선애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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