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연의 뒤를 이을 소재로 손꼽히는 실리콘
삼성SDI, 실리콘탄소복합체 소재 개발, 특허등록
배터리는 한 번 사용하고 버리는 1차전지와 충전을 통해 여러 번 사용이 가능한 2차전지로 구분된다. 가볍고 재충전이 가능한 리튬이온 배터리는 2차전지의 대명사로 우리 생활 곳곳에서 사용되고 있다. 1991년 노트북과 핸드폰 등에 리튬이온 배터리가 적용된 이후 리튬이온 배터리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현재는 전기차 시장확대란 시대적 흐름을 타고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2차전지 시장규모는 올해 160조원에서 2030년 531조원, 2035년엔 815조원으로 성장할 전망이다. 우리 삶 곳곳에 녹아든 2차전지를 비롯한 배터리는 현재 어떤 트렌드며 특징은 무엇일까. 한스경제가 삼성SDI와 함께 배터리의 역사부터 실제 적용 사례까지 담아 ‘배터리 이야기’를 연재한다. <편집자 주>
[한스경제=권선형 기자] 충전을 위해 전원을 연결하면 배터리의 양극기재(알루미늄)는 양극 활물질에 있던 전자를 음극으로 보내게 된다. 전자는 전해질을 통과할 수 없기 때문에 배터리의 극부분인 탭을 통해 이동하게 되는 것이다. 전자와 달리 리튬이온은 전해질을 통과해 음극 쪽으로 흐르게 된다. 이렇게 다른 경로로 전자와 리튬이온 모두 음극으로 이동한다.
◆ 용량에 영향을 주는 흑연의 양과 질
그렇다면 음극에 도달한 리튬이온과 전자는 어디에 머물까? 빈곳에 리튬이온과 전자가 둥둥 떠 있게 될까? 눈에 보이지 않는 그곳에는 고층아파트에 입주민이 들어오는 것과 같은 모습이 펼쳐진다.
음극을 이루는 흑연은 기본적으로 아주 규칙적인 층상 구조로 돼 있다. 탄소(carbon)가 결합된 여러 개 층이 쌓인 모양이다. 리튬이온과 전자는 이층에 자리를 잡는다. 대부분의 리튬이온이 흑연 층으로 이동하게 되면 충전이 끝난다.
그런데 엄밀히 흑연 층에 전자가 들어있는 상황은 안정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삼각형 언덕 위에 공 하나를 올려놓은 것처럼 위태로운 상태다. 리튬에서 나온 전자와 리튬이온은 양극 활물질인 리튬금속산화물로 돌아가려고 한다.
이런 경향성 때문에 방전 시 전자와 리튬이온은 공이 언덕에서 미끄러지듯 양극으로 이동한다. 이처럼 음극의 흑연은 리튬이온을 저장하는 부분에만 관여한다. 달리 말하면 음극의 주요소재인 흑연은 리튬이온 배터리의 화학반응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 것이다.
처음에 음극 소재로 흑연이 채택된 것은 전자와 리튬이온을 잘 받을 수 있는 물질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흑연의 양과 질은 배터리의 용량 증대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음극재가 리튬이온 배터리의 재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약 10% 내외로 적기 때문에 음극재를 가볍게 보는 경향이 있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양극에 활물질을 많이 넣어 전자를 많이 내보낸다고 해도 음극에서 전자와 리튬이온을 많이 받지 못하면 배터리로서 성능을 발휘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음극재는 배터리의 용량과 성능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리튬이온 배터리에서 음극재의 기초가 되는 흑연은 천연흑연과 인조흑연으로 구분되며 둘은 약간 차이가 있다. 요즘은 천연흑연과 인조흑연을 혼용하면서 인조흑연의 비중을 늘리는 추세다. 소니에서 최초로 음극재로 사용했던 하드카본은 탄소계(저결정탄소)로 출력은 가장 높지만 용량이 작아 최근에는 많이 사용되지 않고 있다.
천연흑연은 땅속에서 만들어지는 지하자원으로 탄소성분이 오랜 시간 고온과 고압을 받아 만들어진다. 그 때문에 층층이 쌓인 층상구조를 갖는다. 층과 층사이 틈으로 리튬이온이 이동하면서 전류가 흐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천연흑연은 이온의 이동경로가 양옆 두 곳밖에 없어서 충방전효율이 떨어진다. 또한 충방전이 지속되면 이온이 왔다 갔다 하는 사이 층이 벌어져 부풀어 오르는 스웰링(swelling) 현상이 나타나는 것도 단점으로 지적된다. 그럼에도 인조흑연 대비 가격이 저렴하고 표면처리기술의 발달로 초기 충전효율도 높아졌다. 고용량의 강점도 갖고 있다.
인조흑연은 코크스(Cokes)와 피치(Pitch)를 원료로 섭씨 3,000도 이상의 고온에서 가열해 제조한다. 천연흑연보다 수명이 길고 고출력이 가능한 장점이 있다. 그 이유는 리튬이온의 이동경로가 많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조는 효율성을 높이고 급속충전에 유리하다. 등방형 구조의 안정적인 형태로 스웰링이 적게 일어나고 배터리 수명도 긴 편이다. 다만 천연흑연 대비 생산과정이 길고 복잡해 값이 비싸다.
◆ 더 안전하고 오래 쓰는 음극 소재 개발 진행 중
가끔 “배터리가 부풀어 오르는 게 무슨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다”라고 질문 하는 사람이 있다. 충전을 하면 리튬이온이 양극에서 음극으로 이동하면서 흑연 사이사이에 자리를 잡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부피가 10% 정도 커졌다 작아지기를 반복한다. 이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스웰링 현상은 배터리에 좋지 않다.
충방전 횟수가 늘수록 부피 변화가 반복되면서 배터리 내부에 미세한 변화를 일으킨다. 일례로 흑연의 구조가 무너지거나 가스가 발생해 위험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결국 이러한 변화는 배터리의 수명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배터리의 안전성과 성능을 향상하기 위해 음극재에 관한 연구가 계속 되고 있다. 요즘 흑연의 뒤를 이을 소재로 손꼽히는 것이 실리콘(Si)이다. 실리콘은 흑연과 비교해 무게 당 용량이 높고 충방전 속도도 빠르다. 실리콘은 흑연보다 리튬이온을 저장하는 비율이 월등히 높다.
일반적으로 흑연은 6개의 원자가 1개의 리튬이온(LiC6)을 저장하지만, 실리콘은 5개의 원자가 22개의 리튬이온(Li4.4S)을 저장할 수 있다. 이론상으로는 음극 활물질로 실리콘을 사용하고 양극재를 더 첨가하면 고용량의 배터리를 생산할 수 있게 된다. 실제 구현은 그리 녹록치 않다.
문제는 실리콘의 매우 높은 팽창률이다. 흑연은 10% 안팎으로 부피가 팽창하는 반면 실리콘은 최대 400%까지 부피가 팽창할 수 있다. 얇은 고체막층의 파괴도 실리콘 사용을 어렵게 하는 부분이다. 얇은 고체막은 전해질이 활물질과 반응해 만들어진 보호막으로 이온의 통로 역할을 하면서 전해질로부터 음극 활물질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실리콘을 음극 활물질로 사용하는 경우에는 실리콘의 팽창으로 얇은 고체막 층이 파괴될 수도 있어 매우 주의를 해야 하는 부분이다.
그래서 최근 음극재에 관한 연구는 실리콘의 장점은 취하고 팽창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실리콘의 입자를 작게 만들거나 탄소에 실리콘을 나노코팅하는 방법이 시도되고 있다.
그러한 시도 중 하나로, 삼성SDI에서는 실리콘탄소복합체(SCN, Si- Carbon-Nanocomposite) 소재를 개발해 특허등록을 완료했다. 실리콘탄소복합체(SCN)는실리콘을 머리카락 두께의 수천분의 1 크기로 ‘나노화’한 후 이를 흑연과 혼합해 하나의 물질 처럼 ‘복합화’한 소재를 말한다. 실리콘과 흑연을 혼합해 각자의 장점을 살리는 방법으로 고안해 낸 것이다. 실리콘을 아주 작은 사이즈로 복합화했기 때문에 높은 에너지밀도를 구현하면서도 부피 팽창의 문제를 안정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이처럼 음극재에 관한 연구는 리튬이온 배터리의 에너지 밀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권선형 기자 peter@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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