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세훈 ESG경제부 부장.
                              양세훈 ESG경제부 부장.

[한스경제=양세훈 기자] 우리나라에서 전기요금은 정치요금으로 통한다. 한국전력이 전기를 공급한들 가격에 대한 결정권이 없어서다. 정부가 틀어쥐고 있다. 그렇다고 함부로 인상하기도 어렵다. 공공재라는 인식이 강하고 물가를 자극하니 인상 시에는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더구나 팬데믹이나 전쟁 등으로 국제유가가 폭등하는 특별한 상황이 아니고서야 대선이나 총선을 앞두고는 인상 불가라는 암묵적 정치공식이 자리한다. 무엇보다 국민 부담을 덜어준다는 명분은 표심을 부르기도 한다. 윤석열 대통령도 지난해 대선 기간 중 ‘전기요금 인상 백지화’를 공약으로 앞세웠다. 애초부터 지킬 수 없는 헛공약이었지만.

전기요금은 대체로 선거 후에 인상돼 왔다. 정치적 충격이 덜한 빈틈을 노린 것이다. 여기에 국민 부담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차원에서 소폭 인상을 결정했다고 덧붙인다. 이렇게 전기요금은 국민을 위한 정치요금이라는 시그널을 계속 보낸다. 

대선이 있던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전기요금은 다섯 차례에 걸쳐 올랐다. 작년 여름(7~8월) 4인 가구가 평균 월 6만6690원(2개월 평균 427kWh 사용시)을 부담했다면 올해는 작년 대비 1만3840원이 인상된 8만530원을 부담해야 한다. 이를 두고도 폭염 청구서가 배달됐다는 기사가 쏟아졌다. 전 정부 에너지정책 탓도 여전하다.

그동안 정치 요금의 대가(代價)는 국민 공기업 한전의 부실화다. 전기요금에 시장 논리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니 제때 올리지 못한다. 한전의 영업이익이 꼬꾸라지면 아무리 재무구조를 개선해도 백약이 무효다. 한전의 빚은 사상 처음 200조원을 돌파했고 올해도 수십억의 영업손실이 예고돼 있다. 2021년 이후 47조원 가량 영업손실을 본 것이 부채 급증의 주된 요인으로 꼽힌다. 그나마 안정세를 보이던 국제유가마저 최근 연일 고점을 경신하며 상승세로 돌아섰다. 한전을 둘러싼 내외부 환경의 불확실성이 높다.

실제 한전 부채는 중장기 재무관리계획상 올해 말 205조8000억원을 기록하고 2027년 226조3000억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자비용만 지난해 2조8185억원에서 올해 4조4000억원, 2024년 4조7000억원, 2025년 4조9000억원, 2026년 5조1000억원, 2027년 5조1000억원에 이를 것이란 분석이다. 이는 2027년까지 5년간 한전이 부담할 이자만 24조원 수준으로 매일 131억원씩 이자를 내야 하는 셈이다.

이 와중에 정부가 한전을 구할 새 수장에 김동철 전 국회의원을 내정했다. 정치인 최초 한전 사장이다. 에너지 전문가나 전문 경영인이 아닌 정치인이 내정된 배경에는 한전 적자가 증가하고 그에 따른 국민 부담도 커지면서 기존의 조직 논리와는 거리가 먼 외부 인사가 필요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올 4분기 전기요금 인상 여부가 이달 결정된다. 총선은 내년에 치러진다. 지금은 정치적 충격이 덜한 시기라는 의미다. 언론에서는 한전의 재무구조와 부실화를 우려하는 기사가 쏟아지고 있다. 4분기 전기요금 인상을 위한 빌드업이다.  

김동철 한전 사장 내정자의 첫 임무가 시기상 전기요금 인상이 될 전망이다. 물론 지금의 한전 상황으로는 어느 누가 한전 사장에 임명되더라도 4분기 전기요금 인상은 불가피하다. 정치요금과 정치인 사장이라는 절묘한 궁합이 맞춰진 상황에서 한전을 둘러싼 난제들을 어떻게 풀어나갈지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양세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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