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서울시립대 초빙교수 · 전 국회 부대변인
                                   임병식 서울시립대 초빙교수 · 전 국회 부대변인

서울 은평을구 출마를 시사했던 김우영 더불어민주당 강원도당위원장이 출마 선언을 보류했다. 그는 12일 SNS에 “오늘 은평을구 출마를 선언하려 했으나 당 안팎 사정으로 잠시 보류한다”고 알렸다. 당 안팎 사정이란 최고위에서 “도당위원장직을 버리고 타 지역구에 출마하는 건 부적절하다”고 한 ‘주의’ 조치다. 출마를 강행할지 멈출지는 더 지켜볼 일이다. 다만 이번 해프닝은 정치 실종이자, 민주당 붕괴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낮 뜨겁다. 강원지역 선거를 책임진 도당위원장이 선거를 5개월 남겨놓은 시점에서 다른 지역 출마가 타당한지는 제쳐놓자. 비상식적인 행보를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정신세계가 놀라울 따름이다.

어느 정당이든 다양한 견해는 건강한 지표다. ‘예’만 있는 정당은 예후 없는 당뇨병처럼 조직을 괴사시킨다. 이재명 대표 체제 이후 민주당 상황이 이렇다. 일체 다른 목소리를 허용하지 않은채 전체주의화하고 있다. 대신 ‘배신자’ ‘수박’에 환호하는 저급한 정치가 일상화 됐다. “가결 표를 던지는 의원은 (당원들이)끝까지 추적, 색출해서 정치 생명을 끊을 것.” 강위원 더민주혁신회의 사무총장은 지난 9월 이재명 체포동의안 의결을 앞두고 이렇게 협박했다. 그는 이 대표 경기도지사 재임 당시 경기농수산진흥원장과 경기농식품유통진흥원장을 지낸 친명 인사다.

자당 의원을 겨냥한 공갈에도 지도부는 수수방관했다. 당대표 사수(死守)에 올인하는 동안 민주당은 정상궤도에서 이탈했다. 국민들은 집권여당은 물론이고 민주당에도 곁을 내주지 않고 있다. 한국갤럽과 데일리 오피니언 여론조사(2022년 12월~2023년 12월 7일)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내년 총선 결과를 묻는 질문에 ‘여당 후보가 당선돼야 한다(35%)’보다 ‘야당 후보가 당선돼야 한다(51%)’가 훨씬 높다. 그럼에도 정당 지지율에서는 오히려 민주당(33%)이 국민의힘(35%)보다 낮다. 윤석열 행정부와 국민의힘을 심판하고 싶은 뜻은 있지만 민주당에게는 표를 주지 않겠다는 뜻이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국민들은 사법 리스크에 휩싸인 이 대표 체제 민주당에 신뢰를 접은 지 오래다. 측근 자살과 구속에도 불구하고 건사한 이 대표는 정치검찰에 의한 정치수사라고 항변하지만 국민들은 믿지 않는 눈치다. 국민들은 사법처리는 시간문제로 보고 있다. 친명 의원들이 당대표 사수(死守)에 올인하는 동안 민주당 시계는 멈춰 섰다. 어떤 신박한 정책을 내놓아도 국민들은 호응하지 않고 있다. 사법 리스크를 회피하려는 정치 쇼이자 머리수를 앞세운 꼼수라고 여길 뿐이다. 당이 망가지는 동안 친명 정치인들이 보인 행태는 청맹과니, 낯 뜨거운 충성 맹세에 지나지 않았다.

김민석 의원은 이낙연 전 대표를 ‘사쿠라(변절자)’ 프레임으로 몰아갔지만 공감하는 이는 많지 않다. ‘개딸’로 지칭되는 이들의 공허한 환호만 있을 뿐이다. 이런 맥락에서 강원도당위원장의 서울 은평을구 출마 선언은 이들에게 뜬금없는 일이 아니다. ‘배신자’와 ‘수박’을 쳐내기 위한 정당한 ‘응징’이다. 김 위원장은 “‘왜 분란을 자초하느냐’는 비난은 동의하기 어렵다. 불의를 보고 참으라는 것은 정치의 근본 이유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궤변이다. 불의는 그런데 쓰는 말이 아니다. 또 “당내 분열과 난맥상을 일으킨 자들에 대한 정치적 심판”이라며 저급한 말장난을 늘어놨다.

친명과 강성 지지층 사이에 ‘수박 의원’ 명단이 떠돈 지 오래다. 서울 강북을과 경기 화성을, 전북 군산, 경기 남양주 갑, 경기 광명을, 충남 논산계룡금산이 대표적이다. 박용진 의원과 이원욱, 조응천, 김종민 의원은 그동안 당이 한쪽으로 쏠리지 않도록 쓴 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이상민은 의원은 “더 이상 고쳐 쓸 수 없는 상황”이라며 탈당했다. 신영대 의원은 초선임에도 왕성한 의정활동과 당직을 맡으며 언론으로부터 성실함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이들은 ‘이재명 구하기’에 소극적이거나, 비판적이라는 이유로 자객공천 대상으로 거론된다. 군산은 벌써부터 ‘이재명 체포 동의안에 가결했다’며 ‘수박’에 기댄 선거운동을 펼치고 있다는 후문이다. 자신이 어떤 정치를 하겠다가 아니라 ‘수박’ 이슈에 편승한 저열한 선거가 우려된다.

자객공천은 유력한 상대 정치인을 상대로 역량 있는 자당 후보를 낼 때 쓰는 말이다. 지금까지 자당 의원을 치기 위한 자객공천은 들어보지 못했다. 도덕성과 의정활동을 기준으로 후보 자격을 가린다면 문제될 게 없다. 단지 다른 목소리를 냈다는 이유로 ‘자객공천’ 운운한다면 정치를 희화화하는 것이다. 국민들은 다른 목소리를 허용하지 않는 민주당을 용납하지 않는다. 참고로 2019년 7월, 북한 지방인민회의 대의원 선거에서 찬성은 99.98%였다. 또 2020년 6월, 홍콩보안법도 중국 전인대에서 99.7%로 통과됐다. 설마 민주당이 추구하는 일사분란이 이런 것은 아닐 것이라고 믿는다.

임병식 정치전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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