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서울시립대 초빙교수 · 전 국회 부대변인
                                   임병식 서울시립대 초빙교수 · 전 국회 부대변인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판이 요동치고 있다. 큰 선거 때마다 으레 정치판은 흔들렸다. 그러니 요동치지 않은 때가 없었다는 말이 더 정확하다. 한데 22대 총선을 앞두고 유난히 그렇게 느껴지는 건 양당에 대한 회의감 때문이다. 집권여당도 제1야당도 힘을 쓰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되면서 실망감은 증폭되고 있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간 지지율 격차 또한 무의미할 정도다.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 하락, 이재명 사법 리스크는 양당에 무거운 짐이다. 그럼에도 정당 지지율에 반영되지 않고 있다. 먼저 변화하는 쪽이 승기를 잡을 수 있다. 정치판이 긴박하게 돌아가는 건 이러한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몸부림이다.

민주당은 여러 가지 악재가 누적돼 있다. 이재명 사법 리스크는 갈수록 확대되고, 송영길 전 대표마저 구속되면서 도덕성에 치명상을 입었다. 1심 법원은 지난달 30일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김 전 부원장은 이 대표 핵심 참모다. 이 대표와 무관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송 전 대표마저 구속 수감됐다. 1심 재판부는 "송 전 대표가 거액의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하고 민주당 당 대표 경선 관련 금품 수수에 일정 부분 관여한 점이 소명된다"며 구속 사유를 밝혔다. 이 대표와 송 전 대표는 최근 긴밀하게 정치행보를 같이 해왔다. 정치권에서 두 사람을 한 묶음으로 생각하는 건 상식이다.

민주당은 내부 상황도 복잡하다. 가장 큰 복병은 신당 창당을 예고한 이낙연 전 대표 행보다. 이 전 대표는 민주당에 변화가 없다면 창당하겠다며 내년 초로 예고했다. '이달 말까지 실질적인 변화가 있다면'이란 단서를 달기는 했다. 하지만 지금처럼 강성 지도부에 둘러싸인 이 대표가 변화할지 회의적이다. 이 대표 본인은 물론이고 지도부에 포진한 인사들 또한 강성이라 유연함을 기대하는 건 쉽지 않다. 이 전 대표가 창당한다면 민주당에는 이보다 더 큰 악재는 없다. 양당 지지율 격차가 크지 않은 상황에서 신당 창당은 재앙이나 다름없다. 만약 내년 총선에서 1당 지위를 확보하지 못하면 이 대표는 최악을 피하기 어렵다.
     
정세균 이낙연 김부겸 전 총리를 만나 통합하는 모습을 보이라는 주문은 현실적이다. 같은 당도 품지 못하면서 유권자들에게 표를 달라고 한다면 명분 없다. 세 사람은 문재인 정부에서 총리를 지낸 민주당 자산이다. 한데 이 대표 체제 이후 거리를 두어왔다. 민주당이 정체성을 잃고 극단화되었다는 판단 때문이다. 사실 이 대표 취임 이후 민주당은 이른바 '개딸'에 휘둘려 왔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이 대표가 이들을 지지 세력으로 여긴 나머지 관대한 입장을 취해왔다. 이 때문에 중도층은 물론 민주당 지지층마저 상당수 이탈했다. 전직 총리와 만남은 사진 찍기가 아닌 정체성을 고민하는 자리여야 한다.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이 대표는 세 사람과 회동을 이어갈 태세다. 20일 만남에서 김 전 총리는 "당 통합을 위해 만나고, 대화를 통해 수습 방안을 찾아 달라. 연동형 비례대표제 취지가 지켜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또 "분열이 있으면 총선에 악영향이 있기 때문에 그런 일이 있어선 안 된다. 과거 야권 분열 시절 선거 패배의 아픈 기억이 있다"며 단합을 당부했다. 좀 더 쓴 소리를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김 전 총리가 전한 우려는 누구나 아는 이야기다. 하나마나한 말보다 당이 처한 절체절명의 위기를 공감하는 자리가 됐어야 했다. 당 밖에서 바라보는 민주당에 대한 우려를 전하기에는 다소 미흡했다.

다음 주는 정 전 총리와 만남이 예정돼 있다. 정 전 총리는 비대위원장을 포함해 당대표를 세 차례 지냈다. 또 6선 의원에다 국회의장까지 지내 정치경험이 풍부하다. 정 전 총리는 '미스터 스마일'이라는 이미지가 있다. 이 대표와 만남에서는 사람 좋은 이미지를 내려놓고 당의 원로이자 어른으로서 따끔하게 조언하길 기대한다. 모처럼 만남을 덕담하는 자리로 허비해서는 안 된다. 어른이라는 자리를 무겁게 여기고 당이 처한 현실을 가감 없이 지적해야 한다. 이 대표가 아니라 당과 국가를 바라봐야 한다. 민주당을 아끼는 이들은 불편함을 감수하고라도 지혜와 경륜을 갖추고 당을 위해 조언하는 어른을 바란다.

이 대표는 20일 김 전 총리와 만남에서 "산이든 물이든 못 건널 것 없다. 작은 차이를 넘어 큰 길로 함께 간다"고 화답했다. 이 말이 수사가 아니길 바란다. 세 사람과 만남은 성찰과 통합, 혁신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통합 포장지로 소비한다면 내년 총선에서 참패를 면하기 어렵다. 이해찬 전 총리는 압승을 이야기했지만 헛된 바람이다. 반성하지 않고 변화하지 않는 정당에 표를 던질 국민은 없다. 현 정부가 지리멸멸해도 민주당 지지율이 오르지 않는 원인을 지금도 모른다면 오만한다. 차가운 밑바닥 민심을 냉정하게 들여다 볼 때 민심도 돌아온다.

임병식 정치전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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