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서울시립대 초빙교수 · 전 국회 부대변인
                                   임병식 서울시립대 초빙교수 · 전 국회 부대변인

국회의원들과 특권을 주제로 대화하다보면 상당수는 과장됐다고 항변한다. 그들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건 아니지만 부풀려진 측면이 없지 않다. 4년 의정활동을 '금귀월래(金歸月來)'하는 성실한 의원도 상당수다. 그런데도 국회를 특혜와 특권 집단으로 인식하는 이유는 뭘까. 정쟁에 매몰된 볼썽사나운 행태가 첫 번째 이유다. 국민과 민생을 내세우면서도 정작 국민을 우습게 아는 행태를 국민들은 훤히 들여다보고 있다. 둘째는 불체포 특권과 면책특권에 기댄 특권 의식이다. 셋째는 3선 제한에 비켜선 데다 구속되더라도 세비를 꼬박꼬박 챙기는 특권에 대한 반감 때문이다.

불체포 특권과 면책 특권은 과거 권위적인 정부로부터 소신 있는 의정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출발했다. 이제는 정부와 권력자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국회의원을 잡아가둘 수 없다. 국민이 용서하지 않는다. 오히려 불체포 특권 상당수는 의원 개인에게 집중된 비리를 막는 방탄으로 악용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또 국회에서 발언을 문제 삼지 않는 면책 특권 또한 '아무 말 대잔치'를 허용하는 수단으로 변질됐다. 사실 확인을 거치지 않은, 지지층 선동을 목적으로 내뱉는 말까지 면책 특권 대상에 포함시켜야 하는지 의문이다. 불체포 특권과 면책 특권은 실효를 다했다는 게 중론이다.

특권 폐지 논의는 3선 제한 적용과 구속 중 세비 지급을 중단하는 것으로 나아가야 한다. 현행법은 지방자치단체장은 3선 이상 연임을 금지하고 있다. 아무리 뛰어난 성과를 냈어도 도지사와 시장, 군수는 3연임할 수 없다. 물은 고이면 썩는다는 논리다. 토호세력을 견제한다는 입법 취지지만 실상은 잠재적 경쟁자를 제거하기 위한 것이다. 같은 논리라면 국회의원도 3연임을 금지해야 한다. 한데 자신들은 3선 이상 허용한 반면 지방자치단체장은 막았다. 일본에서는 9선, 10선 지방자치단체장도 흔하다. 그들은 다 고인 물이며, 썩었다는 것인데 일본국민들만 바보인가. 형평성을 잃었다.

구속 중 세비를 꼬박꼬박 챙기는 것도 국회의원만 누리는 특권이다. 당대표 선거 과정에서 돈 봉투를 살포한 혐의로 구속된 뒤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윤관석 의원은 매월 1,400만 원 상당 수당을 받는다. 심지어 윤 의원은 구속된 지난해 8월부터 석 달간 '휴가' 처리하고 특별 활동비까지 챙겼다. 21대 국회에서 뇌물수수와 횡령 혐의 등으로 구속된 더불어민주당 이상직, 정정순, 국민의힘 정찬민 전 의원 역시 의원직이 상실될 때까지 매월 비슷한 수준의 수당을 받았다. 이들에게 지급된 수당은 입법 활동비와 차량 유지비 등이다. 의정활동을 하지도 않았으니 이보다 큰 특권은 없다.

공무원과 자치단체장, 지방의원은 구속되면 최대 80%까지 봉급이 줄어든다. 국회의원은 확정 판결 전까지 '무죄추정의 원칙'에 의거해 전액 받는다. 공무원과 자치단체장은 안 되는 무죄추정 원칙을 국회의원만 적용하는 근거를 찾기 어렵다. 국민들이 국회를 특권층으로 인식하는 이유는 이런 유무형 특권 때문이다. 3선 제한 예외, 구속 중에도 세비 수령은 형평성도 근거도 없다. 참여연대는 2021년, 구속되면 세비 지급을 금지하는 법안 개정 청원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아직까지 계류 중이다. 스웨덴 국회는 철저하게 ‘무노동 무임금’ 원칙이다. 회기 중 결근하면 세비를 받을 수 없다.

가뜩이나 1억 5426만원에 달하는 국회의원 세비는 지나치다. 우리나라 국회의원 세비는 연간 가구 소득 평균 6400만원과 비교하면 두 배 이상이다. OECD 46개 회원국 가운데 세 번째 수준이다. 국민 1인당 GDP는 31위이니, 우리 국회의원들이 호사를 누리고 있음은 객관적 지표로도 확인된다. 국민의힘 인요한 비대위원장은 구속되면 세비를 박탈하고, 또 불체포 특권 포기를 당헌당규에 명문화하고, 공천 신청시 포기 각서 제출을 의무화하는 혁신안을 발표한 바 있다. 민주당 이탄희 의원도 지난해 6월, 구속 중 세비와 수당 지급을 금지하고 이미 지급된 세비는 환수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을 발의한 바 있다.

국회의원 특권 폐지는 대세다. 국회의원들만 시대정신을 읽지 못하고 있거나 애써 외면할 뿐이다. 세네카는 "운명은 순응하는 자는 태우고 가고, 거부하는 자는 끌고 간다"고 했다. 국회의원 특권 폐지가 시대 흐름이라면 망설일 이유가 없다. 국회의원의 권위는 특혜와 특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스스로 특권과 특혜를 걷어낼 때 권위가 선다. 우리국민들은 국회를 신뢰하면 OECD 1위 수준 세비 지급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한다. 제대로 일하고 제대로 대우받으라는 것이다. 무너진 신뢰 확보가 우선이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금고형 이상 형이 확정된 경우 세비를 전액 반납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계류 중인 관련 법안 처리를 위해 여야를 넘어 논의가 확산되길 기대한다.

임병식 정치전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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