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한양대학교 갈등문제연구소 수석 연구위원(전 국회 부대변인)
임병식 한양대학교 갈등문제연구소 수석 연구위원(전 국회 부대변인)

7일자 아침신문과 방송은 의대 정원 증원을 주요 뉴스로 채웠다. 의대 정원 이슈는 그만큼 우리사회 중요한 의제다. 정부는 오는 2025학년도부터 의과대학 입학정원을 2000명 증원한다고 발표했다. 예상했던 대로 의사협회는 총 파업을 예고하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이렇게 중요하고, 국민들이 원하고, 정부가 필요하다고 결정한 정책을 왜 의사들은 반대할까? 우리사회 엘리트에 속하는 의사 집단의 기득권 사수는 해묵은 논쟁이다. 의사 집단의 반사회적 반발은 '철 밥통' 지키기라는 비판 이외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수요와 공급이라는 시장논리가 전혀 먹히지 않는 곳이 의료계다.

대한민국 의사는 1998년 이후 단 한 명도 늘지 않았다. 지난 27년 동안 3058명으로 고정돼 있다. 모든 시장원리는 수요에 비례해 공급을 늘린다. 그럼에도 의사는 27년 동안 그대로라니 기형적이다. 의대 정원이 고정된 이유는 의사협회 반대 때문이다. 그동안 한국사회는 급격한 고령화에 따라 의료 수요 역시 급증했다. 의사 부족으로 국민들이 겪는 불편은 한계를 넘어선지 오래다. 정부는 의료 취약지구 5000명, 고령화에 따른 1만명 등 부족한 의료 인력을 1만5000여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해결 방안은 의대 정원을 늘리는 것뿐이다. 정부가 발표한 2000명 증원은 현실적인 수요 부족을 메우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정부 발표 직후 대한의사협회장은 "깊은 유감을 표한다"며 사퇴했다. 의협은 "설 (명절)이 끝나면 비대위 구성 등 본격적인 투쟁에 돌입하겠다"고 예고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도 12일 파업 등 대응책을 논의한다는 방침이다. 앞서 5일 전체 전공의 1만5000여명 가운데 1만명이 참여한 설문에서 응답자 88.2%는 단체행동에 찬성했다. 정부는 집단행동에 대응책을 마련한다고 밝혔지만 의료 대란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의사협회가 증원을 반대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지금보다 의사가 늘어나면 밥그릇이 줄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사람 목숨보다 밥그릇 지키기에 급급한 셈이니 비난은 피하기 어렵다.

의대 정원 증원은 보수진보정부를 가리지 않은 현안이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무위로 돌아갔다. 당시 정부는 360명 증원을 시도했다. 공공의료 체계 붕괴를 막기 위한 고육책이었지만 의료계 반대는 거셌다. 수많은 이익집단 가운데 의료계만큼 기득권에 함몰된 집단은 찾아보기 어렵다. 당시 의사협회 산하기관에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유포한 홍보물은 그릇된 직업윤리관을 보여준다. '중요한 진료를 앞두고 의사를 고를 수 있다면 누구를 선택하겠느냐'는 질문에 1.전교 1등을 놓치지 않기 위해 학창시절 공부에만 매진한 의사, 2.성적은 한참 모자라지만 추천제로 입학한 공공의대 의사를 제시했다. 홍보물은 우스개로 회자됐지만 씁쓸하다.

여론은 의대 정원 증원에 긍정적이다. 여러 여론조사를 보면 국민 80%는 의대 증원을 지지한다. 다른 나라 상황도 좋은 선례다. 미국 독일 영국 일본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상당수는 지난 20년 동안 의대 정원을 23~50%까지 늘렸다. 이 과정에서 의사 단체가 반대하거나 파업했다는 소식은 접하지 못했다. 독일 의료계는 한 발 더 나아가 의사 증원을 대대적으로 반겼다. 인구 1000당 의사는 독일 4.8명, OECD 회원국 평균 3.7명이다. 한국은 2.6명으로 OECD평균을 밑돌고 독일보다 두 배 이상 적다. 그런데도 독일의사협회는 의사 부족으로 과로 누적, 의료 질이 하락하고 있다며 정부 정책을 적극 지지했다.

독일에서 생활하고 의료 혜택을 체험한 김누리 중앙대학교 교수는 한 강의에서 "어떻게 이런 의사들을 길러낼 수 있었을까 궁금했다"면서 독일 의사들이 하나같이 친절한 이유로 '성적'이 아니라 의사로서 '적성'을 중시하는 의사 선발 과정을 이유로 들었다. 선발 과정에서 의사로서 성격적 적합도를 중시한다는 것이다. 이런 배경에서 대환영이 나왔다. 걸핏하면 '진료 거부'와 '시위'로 맞서는 한국 의료계와 대비된다. 대한의사협회는 2000년, 2020년 정부 방침에 맞서 '정원 동결'이라는 자신들 요구를 관철시켰다. 진료 거부와 파업에 맞서는 정부 수단은 업무복귀 명령이 고작이어서 실효는 의문시 된다.

의사 정원을 늘려 필수 의료 인력을 확보하고 취약한 지방 의료 체계를 강화하겠다는 정부 방침은 타당하다. 여론 또한 긍정적이기에 집단 이기주의에 굴복해서는 안 된다. 창구를 열어놓고 의료계와 지속적으로 대화하되, 예상되는 부작용을 최소화하는데 주력해야 한다. 보다 중요한 건 의료인들의 인식전환이다. 생명을 살리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되새기고 무엇이 바람직한 처신일지 헤아려야 한다. 만약 밥그릇 지키기에 연연한다면 존경은커녕 싸늘한 여론을 각오해야 한다.

의료인들이 존경받는 건 돈이나 지위가 아니다. 그들이 행하는 숭고한 인술에 있다. 정부는 이번 기회에 정원 확대뿐 아니라, 의사 선발 방식과 의사 교육과정 개혁도 병행함으로써 실질적인 의료개혁을 추진하길 바란다.

임병식 정치전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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