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1989년부터 64개 차종서 총 174건 부정 적발...디젤 10개 차종 출하 중지
“현대차·기아, 단기적인 반사 수혜 기대...차량 인증 관련 선제적 대응은 부담”
일본 토요타 자동차 / 연합뉴스 제공
일본 토요타 자동차 / 연합뉴스 제공

[한스경제=김우정 기자] 글로벌 판매 역대 실적을 달성한 도요타의 ‘장인정신’이 연이은 부정 인증으로 무너져내렸다. 지난 35년간 안전도 테스트 차량과 판매용 차량을 다르게 제작한 꼼수가 탄로난 것이다. 도요타그룹 고위임원들은 다급히 고개를 숙였지만, 고객의 신뢰도는 이미 바닥에 떨어진 이후였다.

지난해 도요타그룹은 전년보다 7.2% 늘어난 역대 최대 실적 1123만3039대를 판매해 4년 연속 세계 판매량 1위를 차지했다. 도요타가 꾸준히 고객들의 선택받아 온 바탕에는 장인정신, ‘품질경영’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온 것으로 풀이된다.

고객들의 믿음과 달리 지난 29일 도요타자동직기가 2020년부터 디젤엔진 품질 인증시험에서 부정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도요타자동직기는 굴삭기나 지게차와 같은 산업용 차량과 토요타에 디젤엔진을 납품하는 기업으로, 도요타자동차가 분사되기 전의 모체기업이다.

도요타자동직기는 자동차용 디젤엔진 3개 모델 1GD 엔진, 2GD 엔진, F33A 엔진 인증을 위한 마력 출력 테스트에서 엔진의 마력 출력 성능을 양산용과 다른 소프트웨어를 탑재한 전자제어장치(ECU)를 이용해 결과를 측정했다.

토요타 랜드 크루즈 / 토요타 제공
토요타 랜드 크루즈 / 토요타 제공

3개 모델은 전 세계 10개 차량 모델에 탑재됐으며, 랜드크루저 프라도, 랜드크루저 300, 렉서스 LX500, 하이에이스, 하이럭스, 포츄너, 이노바, 히노 듀트로 등이 해당된다. 도요타는 지난해 3월까지 8만4000대의 디젤엔진 차량을 판매했다.

도요타자동직기는 조작을 발견한 후 재평가를 거쳐 차량이 엔진 출력 기준을 준수한다고 밝혔지만, 엔진 생산을 일시적으로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도요타도 해당 엔진을 탑재한 차량의 출하를 중단했다. 이에 일본 내 4개 공장 6개 생산라인의 가동이 일시 중단됐다.

도요타의 품질인증 이슈는 지난해 4월 도요타 자회사 다이하쓰 직원이 다이하쓰의 충돌 안전 시험에 조작이 있다고 고발한 사건이 시발점이었다. 그는 다이하쓰의 8만8000대가 충돌 안전성 테스트를 제대로 받지 않았고, 지난 1989년의 테스트 결과를 조작했다고 폭로했다. 다이하쓰는 일본 내 경차 점유율이 33%에 달하는 대표적인 경차 분야 기업이다.

이에 지난해 12월 다이하쓰와 일본 정부가 ‘제3자 조사위원회’를 구성해 도요타그룹 내 품질인증문제를 살펴본 결과, 1989년부터 도요타그룹 64개 차종에서 총 174건의 부정 인증이 이뤄진 것이 밝혀졌다. 즉, 모델 한 대당 평균 2~3개의 꼼수가 있던 것이다.

지난 2022년에는 도요타그룹의 상용차 자회사인 히노자동차가 연비와 배출가스 시험결과를 6년간 조작한 사례도 있었다.

조사위원회는 보고서를 통해 “개발 현장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관리자들이 부정행위를 묵인하고 간과하는 풍토가 만연하다”고 지적했다.
 
일본 언론도 "근본적으로 그룹의 기업문화를 바로잡지 않으면 비리의 연쇄는 끊어질 수 없다"며 "문제는 무리한 개발 일정과 인증시험 관련 인원 부족이다. 3사 모두 문제가 생겨도 상사에게 의견을 말할 수 없는 기업 풍토가 있다"고 질책했다. 
 
 오쿠다이라 소이치로 사장(가운데) 등 일본 다이하쓰공업 임원들이 지난 20일 도쿄에서 열린 기자회견 도중 머리 숙여 사과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제공
 오쿠다이라 소이치로 사장(가운데) 등 일본 다이하쓰공업 임원들이 지난 20일 도쿄에서 열린 기자회견 도중 머리 숙여 사과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제공

오쿠다이라 소이치로 다이하쓰 사장은 “직원들이 단기 일정으로 차량을 개발하고 법을 지키지 못하는 기업문화를 만들면서 겪는 부담과 고충을 이해하는 데 소홀했다”고 사과했다.

사토 고지 최고경영자(CEO)는 “현장에서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중요시하는 경영 시스템을 갖출 필요가 있다”며 “데이터 조작은 자동차 자회사 문제이며 소통의 문제가 있다”고 자회사와의 선을 그었다.

그러나 도요타자동직기는 도요타의 ‘뿌리’인 만큼 부정 인증문제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도요다 아키오 도요타 회장은 지난달 30일 도요타자동직기, 다이하쓰, 히노자동차의 품질인증 부정문제에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도요다 아키오 일본 도요타자동차그룹 회장이 지난 30일 나고야 도요타산업기술기념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제공
도요다 아키오 일본 도요타자동차그룹 회장이 지난 30일 나고야 도요타산업기술기념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제공

도요타 회장은 “다이하츠에 이어 도요타자동직기에서도 반복되는 인증 부정행위가 자동차 제조업체로서 회사의 근간을 흔들었다는 사실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다”며 “이번 테스트를 진행한 기관으로서 절차가 법령에 따라 진행되지 않았다는 점을 인지하고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 못한 점에 대해 송구스럽다”고 말했다.

도요타는 신뢰 회복을 위해 전 세계 판매량을 전년보다 10% 줄이고, 일본 내 완성차 공장 가동 시간을 30분 단축하겠다고 공표했다. 다이하쓰는 신차 개발 표준일정을 기존의 1.4배로 늘리고, 올해 6월까지 품질인증 시험 담당자를 작년 1월의 7배로 늘리는 등 안전 성능과 관련된 부서 인원수를 50%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도요타는 오늘 오전부터 요시하라 공장과 후지마츠 공장을 전면 재개하고, 기후차체공업 본사 공장의 1개 라인 등 총 3개 공장 4개 라인을 재가동했다.

이번 도요타 품질 인증 문제가 국내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전망이다. 도요타 품질 인증 조작이 발견된 10개 차종 중 국내로 수입되는 차종은 없으며, 한국에 출시된 차량 대부분은 하이브리드차이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이번 품질 이슈로 도요타가 대규모 리콜, 공장 가동 중단, 브랜드 이미지 실추 등으로 막대한 손실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지난 2015년 독일 폭스바겐은 '디젤 게이트' 이후 1070만대에 이르는 리콜 비용으로 10조원 이상을 지출한 바 있다.

김성래 한화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단기적으로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판매량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으로 전망되나 문제가 심화될 경우 브랜드 이미지 악화와 판매량 저하는 불가피하다”며 “현대차·기아 측면에서는 도요타 품질 인증 부정 이슈에 따른 단기적인 반사 수혜가 기대될 수 있으나 향후 시장에서의 차량 인증 기준 강화 요구에 선제적 대응해야 하는 부담도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김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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