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 Mr . 마켓 <107회> 글·김지훈

소식을 전해들은, 이리엘 주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가 겔버가 밖으로 나갈 때, 입을 뗐다.

“제 기도가 부족했나 보군요.”

안젤로 교황의 두 다리는 물거품처럼 타버렸지만, 천만다행으로 상체는 불길에 상하지 않았다. 다리를 잃었지만 불평하거나 이유를 묻지 않았다. 알츠하이머병에 시달렸을 때에는 안개 낀 숲속을 헤매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모든 것이 명확하다. 무엇을 해야 할지 분명하다. ‘살아남아야 한다!’ ‘지배해야 한다.’ ‘권력을 키워야 한다.’ ‘모든 것을 장악해야 한다.’

“교황성하, 제가 큰 죄를 지었나이다.”

이리엘 주교는 교황 앞에 무릎 꿇으며 고개를 숙였다.

“주님의 축복이 너와 함께 할 것이니, 담대하라.”

교황은 이리엘에게 손을 내밀었다. 피아니스트처럼 곱고 아름다웠다. 허방을 짚던 그의 손이 이리엘의 머리위에 안착했다.

“너의 심장소리가 참으로 바쁘구나. 날개를 다친 작은 새 같구나. 무엇을 걱정하느냐?”

“저 때문에 교황성하께서 두 다리와 시력을 잃으셨습니다.”

“어차피 죽어 없어질 몸이지 않느냐. 네가 나의 다리와 눈이 되어다오.”

안젤로 교황은 능수능란하게 이리엘 주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저 같은 죄인의 허물을 탓하지 않으시고, 소명을 주시다니 몸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교황성화를 모시겠습니다.”

베드로 대강당, 촛대를 장식한 문양은 라파엘로가 직접 조각한 것으로, 성모 마리아의 흐르는 눈물 모양을 본 딴 것이었다. 서쪽 통로에는 베드로의 초상화를 시작으로 역대 교황들의 초상화가 걸렸다. 회의에 참석한 추기경들의 표정은 무덤덤했다. 안젤로 교황은 참석하지 않았다.

“두 다리를 잃고, 눈까지 멀 정도라니. 부활절 미사가 다음 주에 있습니다. 안젤로 교황님이 미사를 순조롭게 집전하실 수 있을까요? 안젤로 교황님의 모습은 신의 형벌을 연상시킵니다!”

베르셀 추기경이 이리엘 주교를 노려보며 물었다. 베르셀 추기경은 안젤로 교황 뒤를 이을 인물이었다.

“감히 교황성하에게 그런 표현을!”

이리엘 주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다. 그러나 그를 지지해주는 눈빛은 없었다. 베르셀 추기경의 영향력은 교황을 능가했다. 교황이 알츠하이머 판정을 받은 후부터 교황청의 권력은 이미 베르셀 추기경에게로 흘러들어가고 있었다.

“신의 형벌이라....... 그럴 수도 있습니다. 신께서는 공평하시니깐요. 제 생명을 거둬가지 않으신 걸 보면........”

시선은 일제히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향했다. 교황이었다! 어린 사제가 휠체어를 밀고 있다. 교황은 계속해서 말했다.

“........ 신께서는 제게 다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셨나 봅니다. 교황에겐 뛰어다닐 일이 없다는 것을 아신 겁니다.”

놀랍도록 차분하고 여유 있는 음성.

“눈을 멀게 하신 것은 아름다움에 현혹되지 말라는 뜻이겠죠. 귀를 열어두신 것은 여러분의 목소리를 잘 들으라는 거겠죠. 다리는 변변치 못하지만, 손은 사용할 수 있습니다. 식사도 제가 직접 할 수 있고 얼굴도 긁을 수 있습니다.”

“베르셀의 험담에도 저토록 태연하시다니......... 예전의 총명함을 되찾으셨군요.”

추기경 한 명이 이리엘에게 미소 지으며 소곤거린다. 베르셀은 단숨에 분위기를 바꿔놓은 안젤로 교황과 웃고 있는 성직자들을 번갈아 보았다. 이제 교황과 맞서는 것은 자살행위였다.

“교황이시여 부디 성체를 보존하소서.” 베르셀 추기경이 바닥에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고맙습니다. 예전보다 지켜야 할 것이 적어져서 훨씬 수월할 것 같습니다. 이제 무좀 걱정은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한국스포츠경제

저작권자 © 한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