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9일 베를린장벽 붕괴 26주년을 며칠 앞두고 한 인물의 죽음이 주목을 받았다. 1989년 11월 베를린장벽 붕괴를 촉발시킨 전 동독 공산당 대변인 귄터 샤보브스키의 별세다. 그의 역사적 실언이 냉전의 상징이었던 베를린장벽을 무너지게 한 단초가 되었기 때문이다.

샤보브스키는 당시 한 기자회견에서 여행자유화 정책에 대한 내각결정을 발표했다. 회견도중 이탈리아의 한 기자가 “언제부터 시행되느냐”고 묻자 새 정책에 대해 별로 아는 바가 없던 그는 얼떨결에 “내가 알기로는.. 지금부터”라고 답했다.

사실 이 결정은 이튿날부터 발효될 예정이었고, 출국비자를 받기 위해서는 관련기관에 신청해야 하는 절차가 따랐다. 그러나 독일어에 서툰 이탈리아 기자가 이를 오해하여 본국에 “베를린장벽이 무너졌다”고 타전하면서 전 세계에 긴급뉴스로 전파됐다.

이를 본 동베를린의 수많은 주민들이 서베를린으로 가는 검문소로 향했고, 동독 경비병들은 몰려드는 사람들로 인해 서베를린으로 향하는 문을 열 수밖에 없었다. 붕괴직전의 체제를 지키려 했던 동독 정권의 안간힘에도 불구하고 그의 엉뚱한 말실수와 기자의 오보가 겹쳐진 우연성으로 인해 베를린장벽은 쉽게 붕괴되고 말았다. 이같이 역사적 사건들이 필연적인 인과관계보다는 우연한 방식으로 더 많이 변화해 왔던 것이다.

우리의 삶도 우연에 의해 지배된다. 특히, 금융시장에서는 우연적인 요소가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자산의 본질적인 가치 외에도 우발적인 사건·사고나 돌발적 위기 발생 등의 우연성들이 주식, 채권 등의 운명을 결정짓기도 한다. 최근 들어 금융시장은 정규분포의 꼬리부분이 두꺼워지고 있다. 따라서 평균에 집중되는 확률이 낮아져 예측력이 떨어짐으로써 우연적 위험인 ‘팻테일 리스크(fat tail risk)’의 발생이 잦아지고 있다.

누구도 우연적인 요소들로부터 자유로울 순 없지만, 이런 상황을 피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답이 위험관리다. 만약에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위험 노출에 대비해 보험을 가입하듯이, 금융자산의 위험발생에 대비하는 방법은 포트폴리오 관점의 투자방식이다. 자산에 대한 분산, 투자시점에 대한 분산, 지역 및 통화에 대한 분산 등으로 집중투자를 피하여 우연성으로 인한 위험을 최소화하는 노력이 필수적이다.

모든 세상사가 큰 관점에서는 필연적으로 보이지만, 매 순간마다 우연이 작용하고 있다. 때문에 ‘예상 밖의 것을 예상하는 노력’이 위험관리의 필요조건인 것이다. 칼럼니스트

 

 

 

한국스포츠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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