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방중 환영행사에서 시진핑 국가 중국 주석과 트럼프 대통령이 나란히 서있다. /사진=연합뉴스

[한스경제=김솔이 기자] 미국과 중국 간 무역분쟁이 ‘투키디데스 함정(Tuchidides Trap)’에 빠지고 있다. 투키디데스 함정은 패권국과 신흥강국이 결국 부딪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뜻한다. 그리스 역사가 투키디데스가 전통의 강국 스파르타가 신흥강국으로 부상한 아테네를 견제하면서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시작됐다고 설명한 데서 유래했다. 이를 미·중 갈등에 대입하면 그 기저에 기존 강국 미국과 새 강국 중국의 패권 다툼이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다.

◇ 미·중 무역분쟁은 환율전쟁으로

미·중 무역분쟁은 이미 전면전으로 치닫고 있다. 미국은 지난달 24일(현지시간) 2000억달러 규모 중국산 수입품에 10% 추가 관세 부과를 시행했다. 지난 7월과 8월 두 차례에 걸쳐 중국과 관세를 주고받은 500억달러 규모를 더하면 관세 부과 대상은 지난해 중국의 대미(對美) 수출 규모(5055억달러)의 절반 수준에 달한다. 중국 역시 같은날부터 600억달러 규모 미국산 수입품에 5~10%의 보복 관세로 맞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중국이 보복 조치에 나설 경우 2670억달러 규모 중국산 수입품에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며 중국을 재차 위협했다. 중국 또한 자국 내 미국 기업에 불이익을 주는 등 비관세 장벽을 높이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미국은 무역분쟁을 환율전쟁으로 이끌어가는 모양새다.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은 백악관으로부터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라는 압력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그가 지난 9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재무부가 환율문제를 매우 면밀히 들여다보고 있다”며 “올해 중국의 위안화 가치가 지속적으로 하락했다”고 말하면서 이번주 발표되는 환율보고서에서 중국의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 미·중 간 군사 갈등 심화될 듯

문제는 미·중 무역분쟁이 통상마찰에서 군사·정치·외교 분야로 확전되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이 지난달 냉전 시대 이후 최대 규모로 진행된 러시아 ‘보스토크(동방)-2018’에 자국군을 파견하자 미국 국무부는 20일(현지시간) 러시아에서 무기를 구매한 중국 군부의 제재 방침을 발표했다. 이에 중국은 주재 미국 대사를 초치하고 미·중 합동참모부 대화를 연기, 강력 대응에 나섰다.

미국은 또 지난달 말 동중국해·남중국해에 전략폭격기 B-52를 띄워 훈련을 실시했다. 이어 30일엔 미국 해군 구축함 디케이터함이 ‘항행의 자유’ 작전을 이유로 영유권 분쟁지역인 남중국해의 스프래틀리 군도를 근접 항해하며 미·중 간 군사적 충돌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다.

중국 역시 해군 사령관 방미 계획 취소, 미국 해군 강습상륙함 와스프(WASP)함 홍콩 입항 거부 등으로 반발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6월에 이어 이달 베이징에서 두 번째로 열릴 예정이었던 미국과의 연례 외교·안보대화를 취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지난 8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세안+3(한중일) 외교장관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트럼프 “중국, 11월 중간선거 개입하지 말아야”

오는 11월 6일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을 향한 비난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그는 지난 달 26일(현지시간) 유엔(UN)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서 “중국은 현 미국 정부가 11월 중간선거에서 패배하도록 선거 개입을 시도하고 있다”며 “내가 중국과 무역분쟁을 벌이는 최초의 대통령이라는 이유로 중국은 현 미국 정부가 선거에서 이기길 바라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다만 선거 개입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지는 않았다.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에 “중국을 향한 근거 없는 비난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중국은 내정간섭을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항상 지켜왔고 앞으로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즉시 반박했다.

나아가 미국은 중국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대만 문제까지 자극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지난 8월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파라과이·벨리즈를 방문했을 당시 로스앤젤레스와 휴스턴 공항을 경유지로 사용하도록 허용한 데 이어 엘살바도르가 대만과 단교한 뒤 중국과 수교하자 엘살바도르와의 관계를 재평가하겠다는 성명까지 냈다. 아울러 미국 국방부는 지난달 24일(현지시간) 대만에 F-16, F-5 전투기, C-130 전술수송기 등 군용기 예비부품을 판매할 수 있도록 승인했다.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지난해 4월 서울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주한미국상공회의소 환영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부정하기 어려운 ‘신 냉전’ 시대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다방면으로 확산되면서 양국이 ‘신(新) 냉전(Cold War)’ 구도를 형성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 뉴욕타임스(NYT)·블룸버그통신 등 미국 주요 언론과 정·재계 전문가들은 이제 미·중 무역분쟁을 ‘신 냉전’ 혹은 ‘신 경제 냉전(New Economic Cold War)’으로 바라보고 있다.

스티븐 로치 미국 예일대 선임연구교수는 지난달 홍콩 미국상공회의소 연례 회의에서 “미·중 무역분쟁은 신냉전이 될 수 있다”며 “미국은 중국이 물러서지 않더라도 차선책이 없고 중국 또한 미국의 공격적인 정책을 어떻게 다뤄야할지 망설이고 있어 현재로선 어느 쪽도 출구 전략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특히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지난 4일(현지시간) 보수성향 싱크탱크 허드슨연구소 연설에서 중국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사실상 ‘신냉전’을 선언했다는 의견이 나온다. 펜스 부통령은 당시 중국의 지식재산권 탈취, 대만 문제, 남중국해 분쟁, 소수민족 인권 문제 등까지 거론하며 대중 압박 강도를 높였다.

더글러스 딜런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교수는 13일(현지시간)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에 “지난주 펜스 미국 부통령의 연설은 사실상 중국과의 ‘신 냉전(A New Cold War)’를 선언한 것”이라며 “이번주 한 중국의 고위 관리로부터 펜스 연설 이후 중국이 당황해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김솔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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