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스포츠경제=편집자]  웃음 상실의 현실을 뒤로 하고 찾은 극장에서 웃음 만렙(최고의 레벨을 뜻하는 신조어)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미뤄 두었던, 아니 어느 순간 잃어버렸던 엔돌핀과 재회한 느낌이랄까. 실로 매력적인 영화를 오랜만에 만났다. 

누군가의 입에서 나온 말들이 완벽한 진실이 아님을 깨닫게 해줘 ‘진실게임’이 시조새 취급 받게 만든 작품, 바로 영화 ‘완벽한 타인’이다. 디지털 시대에 발맞춰 ‘휴대전화 잠금 해제’를 통해 100% 사생활 발가벗기기가 가능한 진실게임 업그레이드 버전인 ‘리얼 진실게임’이 탄생했다. 다양한 인간 군상들(캐릭터)의 휴대전화가 오픈되는 순간 관객은 무장해제 되고, 스크린을 벗어나 각자 자신의 현실을 상상하는 순간 심장은 쫄깃해 질 수밖에 없다. 이 게임, 관찰자에게는 최강 코미디지만 참여자에게는 진땀나게 만드는 긴장감과 극강의 공포감을 조성한다. 감추고 싶은, 아니 반드시 감춰야 할 상황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지면서 휴대전화는 헤어 나올 수 없는 블랙홀이 되고 급기야 이 생활필수품은 지구 평화(!)를 위협하는 무기가 된다. 이거 영~ 해서는 안 될 게임이다. 

 

사진 = 영화 '완벽한 타인' 스틸 컷

40년 지기 친구 사이인 태수(유해진), 석호(조진웅), 준모(이서진), 영배(윤경호)와 태수의 아내 수현(염정아), 석호의 아내 예진(김지수), 준모의 아내 세경(송하윤). 이들이 한자리에 모인 석호와 예진의 집들이, 잘 포장된 삶을 고급스럽게 전시해놓은 미장센만큼 각각의 캐릭터들 역시 웃는 얼굴과 맘에도 없는 미사여구들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든다. 모두가 그럴싸한 가면을 쓰고 있는 셈, 그런데 휴대전화라는 정직한 기계가 인간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강제 노출  시킴으로써 오랜 친구도, 부부도 아닌 이보다 더 완벽할 수 없는 타인으로 이들의 관계를 전복시킨다. 

7명의 배우들이 뿜어내는 케미와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는 에피소드는 이 영화가 가진 큰 힘이다. 코미디는 장르의 특성상 반드시 웃음타이밍이 존재하는데, 이 작품은 그 타이밍조차 무한해제 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스토리는 쉴 새 없이 긴장과 웃음을 뒤범벅 시킨다. 관객에게 잠시 호흡을 가다듬을 수 있도록 만든 장치가 바로 4명의 친구들이 나고 자란 속초의 먹거리들이 등장할 때, 그리고 테라스에서 월식 현상을 볼 때다. 달과 고향의 음식은 친구인 그들의 관계를 나타내는 상징성을 갖는 도구로 등장인물들과 관객에게 이완 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한다. 영화의 OST로 사용된 ‘I Will Survive’는 비밀이 폭로되기 전후 일촉즉발의 위기 속에서 마치 살려달라고 부르짖는 간절한 외침 같다. 긴장감과 음악이 주는 흥이 묘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영화는 신랄하게 까발려진 현실을 상상으로 봉합한다. 그리고 들켜버린 민낯에 이전처럼 다시가면을 씌워 아무 일 없었던 듯 평온한 일상으로 회복시킨다. 마치 흉측한 진실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휴대전화 잠금 해제’를 통해 벌어진 일련의 과정들도 공감 백배지만 ‘휴대전화 잠금’ 상태가 주는 평화(?) 역시 매우 현실적인 결말이다. 영화를 보고 잠시 든 생각인데 우리가 거울을 보는 건 민낯을 보기 위함이 아닌, 관계 유지를 위한 ‘~ 척 하는’ 가면을 잘 쓰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함이 아닐까. 

누군가 비밀이 없는 삶은 남루한 삶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꽤 그럴듯한 ‘비밀 옹호론’이다.  아무튼 영화는 영화일 뿐, ‘휴대폰 잠금 해제 게임’은 절대로 따라하지 말자!

 

●권상희는 동덕여대 방송연예과와 국민대 대학원 영화방송학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2002년부터 영화 드라마 연극 뮤지컬 방송진행 등 다양한 미디어를 경험했고, 고구려대학 공연예술복지학부 외래교수를 역임한 뒤 문화평론가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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