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SK이노베이션 “배터리 개발·제조방식이 달라…ITC, 심리 제대로 안해”
LG에너지솔루션 “ITC는 미국 정부기관…SK이노, 진정으로 합의 임해야”
연합뉴스

[한스경제=김호연 기자] LG에너지솔루션이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제기한 영업비밀 침해 소송에 대한 최종 의견서가 공개됐지만 양사의 갈등은 오히려 격화되고 있다.

5일 ITC는 최종 의견서를 통해 SK이노베이션이 LG에너지솔루션의 영업비밀을 명백히 침해했다고 밝혔다.

ITC는 의견서에서 “SK이노베이션의 증거인멸 행위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판단했다”며 “증거 인멸은 고위층이 지시해 조직장들에 의해 전사적으로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자료 수집·파기가 SK이노베이션에서 만연하고 있었고 묵인됐음을 확인했다”며 “SK이노베이션이 정기적인 관행이라는 변명으로 노골적으로 악의를 갖고 문서 삭제·은폐 시도를 했다고 판단한다”고 덧붙였다.

또 ITC는 LG에너지솔루션이 침해당했다고 주장하는 11개 카테고리·22개 영업비밀을 그대로 인정했다. LG에너지솔루션 측이 SK이노베이션이 영업비밀을 침해하고 이를 통해 부당한 이득을 취한 과정을 구체적이고 개연성 있게 입증했다는 설명이다.

ITC는 “SK는 침해한 LG의 영업비밀이 없었다면 해당 정보를 10년 이내에 개발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침해 기술을 10년 이내에 개발할 수 있을 정도의 인력이나 능력을 보유하고 있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폭스바겐에 4년, 포드에 2년의 수입금지 유예기간을 내린 데 대해 “LG의 영업비밀을 침해하지 않은 다른 배터리 공급사로 갈아탈 시간적 기회를 제공한 것”이라고 말했다.

SK이노베이션 “ITC, 검증 제대로 안했다…거부권 요청할 것”

SK이노베이션은 이날 ITC가 공개한 최종 의견서에 대해 정면으로 반박했다.

SK이노베이션은 “양사의 배터리 개발·제조방식이 달라 LG의 영업비밀이 필요 없고 LG가 주장하는 영업비밀에 대해서도 ICT가 검증한 적도 없다”며 “K는 1982년부터 준비해 온 독자적인 배터리 기술개발 노력과 그 실체를 제대로 심리조차 받지 못한 미 ITC의 결정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입장문을 밝혔다.

그러면서 “40여년간 배터리 기술 개발을 진행해 오고 있고, 세계 최초의 고밀도 니켈 배터리를 개발 등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국내 최초의 전기차 블루온, 최초 양산 전기차 레이에 탑재되었을 뿐 아니라 현재까지 화재가 한번도 발생하지 않은 안전한 배터리를 제조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 ITC 의견서의 모호함을 지적하며 “LG가 침해당한 영업비밀을 특정해 달라는 ITC의 요구에 배터리와 관련한 기술 전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인 100페이지 분량의 문건을 제시했었고, 이에 대해 ITC조차도 영업비밀로서 제시된 것이라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ITC는 LG가 마지못해 줄인 22건의 영업비밀을 지정하면서도 그 범위가 모호하다는 점을 스스로 인정하면서 개별 수입물품이 실제 수입금지 대상에 해당될지에 관해서는 별도 승인을 받도록 명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SK이노베이션의 이번 판결이 공익에 미치는 악영향을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도 꼬집었다.

SK이노베이션은 “유예를 받은 포드와 폭스바겐 제품에 대한 기간 산정의 근거가 불명확하다”며 “알려진 대로 두 회사들은 유예 기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며 또한 대체 가능한 방법이 없다고 호소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이처럼 ITC 결정이 내포하고 있는 문제점을 대통령 검토(Presidential Review) 절차에서 적극 소명하고 거부권 행사를 강력하게 요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LG에너지솔루션 “SK이노, 합의 없으면 원칙대로…진정성 보여라”

SK이노베이션이 입장문을 내자, LG에너지솔루션은 오후 컨퍼런스콜을 열고 ITC 판결과 관련해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자리엔 한웅재 법무실장 전무, 장승세 경영전략총괄 전무, 성환두 대외협력총괄 전무, 이한선 특허담당 상무가 참석해 온라인으로 취재진과 질의응답을 진행했다.

한웅재 전무는 “경쟁사(SK이노베이션)가 ITC가 영업비밀 침해 사실을 구체적으로 파악하지 못했다고 지적하는데, ITC는 미국 정부기관으로 조사 권한과 판결 권한 모두를 갖고 있다”며 “사실상 조사기관과 법원의 역할을 수행하는 미국 정부기관에서 2년간 조사하고 숙고한 결과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최종 결정문을 보면 22개의 침해 사실이 명확히 기재돼 있다”며 “SK이노베이션은 공개적이고, 고의적으로 영업비밀을 침해했고, 그 사실을 은폐하면서 악의성이 상당한 것도 드러났다”고 강조했다.

또 “양사의 배터리 개발·제조 방식이 다르다는 SK이노베이션의 주장은 옳지 않다”며 “기본 공정은 큰 차이가 없이 동일하다”며 SK이노베이션 측의 주장을 반박했다.

그러면서 “ITC가 포드와 폭스바겐에 각각 부여한 수입금지 유예기간 2년, 4년은 새로운 설비과 생산시설을 갖추고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내기엔 충분한 시간”이라며 “비정상적인 영업 행태를 알면서도 모른 채 경제적 이익을 추구한 이들에게도 잘못이 있다는 게 ITC의 판결이다”라고 설명했다.

한 전무는 LG에너지솔루션이 우선하는 가치는 ‘상생’이라며 SK이노베이션의 진정성 있는 협상 태도를 주문했다.

한 전무는 “합의 기회는 언제나 열려 있다”며 “미국 연방비밀보호법에 적시된 영업비밀 탈취에 대한 손해배상 기준에 따라 ▲일시금 현금 배상 ▲지분 ▲매년 매출의 일정 부분을 제공받는 로열티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한 합의금 수령 방안을 열어두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근 1개월 동안 연락을 SK이노베이션 측에서 연락을 받이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합의에 나서지 않을 경우 LG에너지솔루션이 원칙대로 결정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두 회사의 ‘배터리 전쟁’은 2019년 4월 LG에너지솔루션(당시 LG화학)이 ITC와 미국 법원에 LG화학 배터리사업부 직원이 무더기로 SK이노베이션으로 옮겼고, 이때 핵심 기술이 유출됐다는 취지의 소송을 신청하면서 시작됐다.

그 뒤 지난해 2월 ITC가 SK이노베이션에게 조기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후 3차례 최종 판결을 연기한 끝에 지난 2월 11일 SK이노베이션이 향후 10년간 일부 리튬이온배터리의 미국 내 수입 및 판매를 금지하는 제한적인 배제 명령을 내렸다.

LG에너지솔루션은 ITC의 판결 이후 3조원 이상의 합의금을 요구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이에 자회사 SK아이이테크놀로지(SKIET) 지분 일부를 포함한 5000억원 미만을 희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양사의 입장 차가 커 제대로 된 논의가 진행되고 있지 않는 상황이고, 정세균 국무총리 등 사회 각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김호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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