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LG 트윈스 우승에 신구 팬들 결집
우승 신문은 이례적으로 중고 거래
박종민 스포츠부 팀장
박종민 스포츠부 팀장

[한스경제=박종민 기자] 1994년 가을은 어느 해보다 선선했다. 여름엔 살인적인 폭염이 기승을 부렸지만, 가을엔 LG 트윈스의 ‘신바람 야구’가 서울을 휘감았다. 이상훈(52), 김태원(59), 정삼흠(62), 김용수(63)로 이어지는 투수진과 한대화(63), 노찬엽(58), 류지현(52), 김재현(48), 서용빈(52) 등으로 구성된 타선은 그야말로 빈틈이 없었다. 정규시즌에 81승 45패 승률 0.643로 정상에 오르더니 한국시리즈(KS)에서 태평양 돌핀스를 상대로 4연승 하며 통합 우승 고지를 밟았다.

그 해 데뷔한 ‘슈퍼 루키 3인’ 류지현, 김재현, 서용빈도 어느덧 하늘의 명을 깨닫는 나이 ‘지천명(知天命)’에 이르렀다. 직전 해 ‘역대급 신인’ 양준혁(54), 이종범(53)의 등장을 비롯해 국민적 인기를 구가하던 당시 프로야구의 LG 경기를 꼬박꼬박 챙겨보던 열 살 남짓 소년이었던 기자 역시 어느덧 마흔 줄에 접어들었다.

LG는 올해 한국시리즈에서 KT 위즈를 4승 1패로 꺾고 무려 29년 만에 우승 샴페인을 터뜨렸다. 1994년 우승을 지켜본 당시 ‘엘린이(LG+어린이 팬)’들은 배 나온 아재가 돼 다시 유광점퍼를 꺼내 입으며 추억에 잠겼다.

중고 거래 사이트엔 LG 우승 소식을 1면으로 다룬 신문들이 매물로 올라오고 있다. 호가는 원래 가격의 최대 20배가 뛴 2만 원 이상이다. 그보다 웃돈을 주고서라도 사고 싶다는 이들까지 등장했다. 14일 LG 트윈스 커뮤니티에는 15일 자에 실린 LG 우승 광고지면 스크랩 파일도 올라왔다. 골수 LG 팬은 모 스포츠신문사 앞에 도착했다며 건물 사진까지 인증했다. 1990년대 지하철 가판대에서 이뤄지던 스포츠 신문 전쟁의 ‘21세기 버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LG의 우승은 스포츠업계에 시사점을 던지고 있다. 끈끈한 연고지 팬들의 위력을 실감하게 했고, 신문 지면의 힘까지 새삼 보여줬다. 마지막으로 준우승했던 2002년을 제외하고서라도 한동안 ‘서울 동거 구단’ 두산 베어스 팬들에 기가 눌렸던 LG 팬들은 이제야 마음껏 환호성을 지르고 있다. 기성세대가 된 LG 팬들에 더해 1994년 우승을 보지 못한 1990년대 출생 MZ세대 LG 팬들이 한데 뭉치면서 구단 마케팅은 물론 프로야구 마케팅에까지 신바람이 나고 있다.

사양산업으로 치부되던 신문 미디어에도 한 줄기 희망을 안겨다 줬다. LG 우승 지면의 중고 거래 열기는 이른바 ‘리미티드 에디션(한정판)’과 함께 활자 하나하나를 음미하며 읽게 하는 인쇄 매체 신문의 가치를 새삼 일깨우고 있다. 단순히 포털에 ‘LG 트윈스’만 검색해도 보이는 숱한 온라인 기사들과 달리 정해진 부수로 발행되는 신문 기사는 특성상 소장 욕구와 함께 특별함을 느끼게 한다.

2013년 방영된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서 배우 성동일(56)은 LG 트윈스 코치 역으로 나온다. 공교롭게도 전편인 ‘응답하라 1997’에선 롯데 자이언츠 코치 역을 연기했다. 롯데 역시 1992년 마지막 우승을 한, 31년째 무관인 팀이다. 올해 엘린이 출신들의 함성에 이어 내년엔 부산 갈매기들이 한풀이할지 지켜보는 재미도 쏠쏠할 것으로 보인다. LG의 우승도, 신문의 중고 거래 열풍도 예상치 못했던 일들이다. 스포츠가 재미있는 이유 중 하나도 ‘예외성’이다. 내년 가을 야구의 결말도 벌써 기다려진다.

박종민 스포츠부 팀장

박종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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