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인구 집중 도시화 가속…도시 건물에너지 소비, 탄소 배출량 갈수록 늘어
단열·기밀 성능 강화, 신재생에너지 도입 통 제로에너지건축물 도입 활발
독일 프라이부르크시 청사. 외벽 전체가 태양광발전장치로 덮여 있어 에너지 자립이 가능한 에너지플러스하우스다. / 독일 프라이부르크시
독일 프라이부르크시 청사. 외벽 전체가 태양광발전장치로 덮여 있어 에너지 자립이 가능한 에너지플러스하우스다. / 독일 프라이부르크시

지구의 마지막 경고선인 1.5℃ 위기가 눈앞에 닥쳤다. 세계기상기구(WMO)에 따르면 작년 지구 평균기온은 산업화 이전보다 1.45℃ 높아졌다. 2015년 국제사회가 파리기후변화협약을 통해 ‘산업화 이전 지구 평균기온보다 1.5℃ 상승하는 것을 억제하자’는 뜻을 모은지 8년 만이다.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진행한 것이 무색할 만큼 온도 상승 속도가 가파르다. 이에 창간 9주년을 맞는 한스경제는 그간 천착해온 '1.5°C HOW' 캠페인에 맞춰 인류 생존 최후의 방어선인 1.5°C를 어떻게 지켜낼 수 있을지 부문별로 국내외 동향과 쟁점, 대안 등을 종합적으로 엮어 연중기획으로 연재한다. / 편집자 주

[한스경제=권선형 기자] 세계는 역사상 가장 비약적인 도시성장의 물결에 휩싸여 있다. 유엔인구기금( UNFPA)에 따르면 현재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도시에 살고 있으며 2030년에는 50억명 이상이 도시에 살 것이란 전망이다. 2023년 기준 세계 인구가 약 80억명임을 감안하면 7년 안에 세계 인구의 62.5%가 도시에 살게 될 것으로 예측된다.

대표적으로 한국만 보더라도 2022년 도시가 몰려 있는 수도권에 사는 인구는 2612만4421명(통계청)으로, 전체 인구의 50.5%에 달한다. 2017년 49.6%였던 수도권 인구 비중은 2020년 50.2%, 2021년 50.4%, 2022년 50.5%로 매년 늘고 있는 추세다. 21세기를 ‘도시의 시대’라고 정의한 도시학자 로버트 무가의 말이 더 빠르게 현실화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 근현대사에서 도시에 갑자기 많은 인구가 몰렸던 시작점은 18세기 산업혁명이다. 당시 유럽은 시골에서 농사를 짓던 사람들이 도시의 공장으로 몰렸고 도시의 주택난이 심각해졌다. 여기에 더해 1차, 2차 세계대전으로 건물이 절반 이상 파괴되는 도시가 생길 정도로 주택난은 더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이때 등장한 개념이 건축사의 한 획을 긋고 지금의 건물 대세로 자리 잡은 아파트다. 프랑스의 건축가 르코르뷔지에는 1922년 신속하고 저렴하게 주택을 대량공급하기 위해 프랑스 마르세유에 유니테 다비타시옹(Unité d'Habitation)이라는 집합주택을 건축했다. 이후 세계 도시는 아파트, 다세대주택 등의 공동주택이 늘어나며 급속도로 늘어나는 인구를 포용할 수 있게 됐고 병원, 백화점, 호텔 등의 대형건물들도 더 많이 생기게 됐다. 

이러한 집약화, 대형화 현상으로 인해 야기된 문제가 도시 건물의 전기, 열에너지 소비 폭발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18년 건설산업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는 세계 온실가스 배출의 25%를 차지하고 있다. 탄소중립의 주요 대상인 이산화탄소만 놓고 보면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37%까지 높아진다. 이산화탄소는 전체 온실가스 배출 중 80% 이상을 차지하는 지구온난화의 가장 큰 요인이다.

건설산업은 인프라 과정보다 다 짓고 난 건물 자체에서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9배 더 많은 상황으로 건설산업의 탄소 배출 감축은 공동주택 등의 대형건물에서의 탄소를 얼마나 어떻게 줄일 수 있는지가 핵심으로 꼽힌다. 한국의 최대 인구가 살고 있는 서울시를 예로 들면 서울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2019년 기준 연 4,600만t으로 건물부문이 68.7%를 차지하고 있다. 건물에서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감소시켜야 더 빨리 탄소중립에 다가설 수 있다고 보는 이유다.

이 같은 배경에서 등장하는 개념이 바로 제로에너지건축물이다. 과거에는 아파트처럼 건물 공간을 어떻게 구성하는지가 도시 혁신의 방향성이었다면 이제는 건물에서 사용하는 에너지를 어떻게 생산하고 사용하는지가 혁신이 된 시대가 된 것이다.

제로에너지건축물의 기본 방향과 성격은 같지만 정의는 나라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다. 미국에서는 연간 투입된 에너지 총량이 현장에서 생산한 재생에너지보다 적거나 같은 에너지 효율화 건축물로 정의하고 있다. 반면 한국에서는 건축물에 필요한 에너지부하를 최소화하고 신재생에너지를 활용해 에너지 소요량을 최소화하는 녹색건축물로 정의한다. 이를 종합해 간략하게 표현하면 연간 에너지 사용량과 생산량의 합이 제로(0)가 되는 건축물을 뜻한다. 에너지 사용량과 생산량의 합을 0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단열 성능을 강화하거나 기밀성능을 개선하는 등 건물 자체의 에너지 효율을 개선하는 패시브 기술과 기계 설비의 효율이나 신재생에너지를 도입하는 액티브 기술이 적용된다.

해외에서 제로에너지건축 기법을 선구적으로 도입한 제로에너지 타운을 꼽자면 핀란드 수도 헬싱키에서 약 8km 떨어진 친환경마을 비키를 들 수 있다. 1994년 핀란드의 환경친화적인 주거복합도시 건설을 목표로 조성돼 난방 에너지를 절약하고 재생에너지 발전 시설을 활용하는 방향으로 설계됐다. 이를 통해 건물의 난방에너지를 일반 주택에 비해 평균 30% 절약했고 전기사용은 25% 정도 줄였다. 난방에너지를 최대 70% 줄이면서 태양열 지역난방을 사용한 일부 주택은 제로에너지를 달성했다.

독일 프라이부르크시의 대표적인 패시브하우스 Sun Ship. 옥상마다 태양광발전장치가 설치돼 있고 은행과 슈퍼마켓, 오피스, 주거 공간을 제공하는 복합건물이다. / 독일 프라이부르크시
독일 프라이부르크시의 대표적인 패시브하우스 Sun Ship. 옥상마다 태양광발전장치가 설치돼 있고 은행과 슈퍼마켓, 오피스, 주거 공간을 제공하는 복합건물이다. / 독일 프라이부르크시

독일 프라이부르크의 보봉 마을도 모범적으로 제로에너지건축물을 실현한 곳이다. 1997년 공사가 시작돼 2006년 전체 공사가 마무리된 보봉 마을 주택은 일반 독일 주택에 비해 에너지를 최소 70% 절감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당시 신규 주택과 비교해도 에너지 40%를 더 절감하는 수준이었다. 이 마을의 주택 중 150호는 난방에너지 소비 기준이 15kWh/㎡인 패시브 하우스를 달성했고, 마을 조성 막바지에 지은 쉴러태양단지 주택 60호 이상은 태양광으로 전기를 사용하고 남는 전기를 판매하는 플러스 에너지 주택을 실현했다. 일부 가구에서는 전기 판매로 연 평균 4,000유로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

스웨덴의 가드스텐 태양주택은 노후화된 아파트를 제로에너지건축물로 탈바꿈한 성공 사례다. 1990년대 들어 노후화로 인해 높은 공실률을 보인 이곳은 총 2700세대 중 500세대가 에너지효율을 높이고 태양광을 적용하는 방식으로 리모델링됐다. 리모델링을 통해서 절약한 에너지는 총 40~50%로 특히 지역난방과 전기 사용량이 눈에 띄게 줄었다.

국내 제로에너지건축물은 해외보다 늦게 출발했다. 처음으로 도입된 제로에너지건축물은 2012년 준공된 서울에너지드림센터다. 또 최초의 주택단지는 2017년 준공된 서울시 노원구 임대주택인 이지하우스다. 이지하우스에는 121가구가 거주 중으로 외단열 공법, 열회수 환기장치 등을 설치해 에너지 손실을 최소화하고 태양광 발전설비, 지열히트펌프 등을 활용해 에너지를 생산하고 있다.

다만 아직 국내 제로에너지건축물은 활성화 되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2024년부터 아파트를 지을 때 적용하려던 제로에너지건축물 인증 의무화를 1년 유예했다. 탄소중립 선진국들처럼 제로에너지건축물이 활성화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권선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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