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래 단국대 석좌교수(18대 환경부 장관)
                       조명래 단국대 석좌교수(18대 환경부 장관)

[한스경제/ 조명래 단국대 석좌교수] 2004년 유엔의 ‘글로벌 콤팩트’에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환경(E), 사회(S), 거버넌스(G) 3대 요소가 포함되면서 ESG가 탄생했다. 기업의 ESG경영은 탄소배출 감축 등과 같은 환경경영, 인권과 다양성을 지키는 사회적 경영, 이해관계자와 함께하는 열린경영, 모두를 아우른다. ESG경영을 통해 기업은 기업 밖의 영역까지 일정하게 책임을 져야 한다. 가치사슬을 타고 기업 밖으로 ESG 규범이 퍼지면서 정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대학 등도 ESG 실행을 요구받고 있다. ESG의 범사회화는 ESG의 메가트랜드화를 의미한다. 
 
하지만 최근 들어 ESG 대세에 대한 비판과 거부의 흐름이 감지되고 있다. 국내의 한 보수언론은 글로벌 기업들 사이에 무조건적인 ESG 숭배가 저물면서 ESG 2.0 혹은 ESG 종언까지 거론되고 있음을 보고하고 있다. 그 이유를 ‘ESG가 정치색에 물들어 탁해졌다’는 데서 찾고 있다. ‘ESG 열풍에 올라탄 진보 환경운동 진영이 탈화석을 정치 무기화하면서 그 반작용으로 안티 ESG 기조가 대선을 앞둔 미국의 정치적 상황 등을 통해 불거진 것’이라 한다. ESG 회의론에 불을 지핀 것은 화석연료 산업 비율이 높은 지역을 표밭으로 하는 보수정치 세력(공화당)이다. 이면엔 탄소중립을 위한 막대한 전환비용을 누가 어떻게 부담할 것인가에 관한 정치적 대결이 있다.
 
미국, 유럽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기후비용(예, 탄소비용)의 배분을 둘러싼 대립과 갈등은 기후정치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자본과 시장의 가치를 존중하는 보수세력은 기후변화 대응과 연동된 기업의 ESG 부담을 회피하거나 축소하려 한다.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였던 론 디센티스 플로리다주지사가 ESG 활동에 대한 공적자금 투자를 금지하는 법안을 발의한 것이 비근한 예다. 독일, 스웨덴 등에서도 보수세력은 고비용의 에너지 전환을 옹호하는 진보적 환경주의에 녹색파시즘으로 반기를 들고 있다. 탈원전 정책의 폐기와 탄소중립의 속도 조절이 잇따르면서 ESG 관련 정책도 후퇴의 기미를 보인다.
 
보수언론들은 세계 제1위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래리 핑크 회장이 ‘ESG란 말을 더는 쓰지 않겠다’는 최근 발언을 ESG 숭배에 마침표를 찍은 것이라고 대서특필하고 있다. 블랙록의 ESG 투자실적이 비ESG 투자에 비해 수익률에서 떨어지고 있는 것을 그 증거로 내세우고 있다. ESG펀드와 ESG중립펀드의 차별성이 사라지고 있다는 데이터들은 ESG 대세를 흔들기에 충분하다. ESG투자의 회피 산업이었던 방산과 원전에 대한 투자 관심이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되살아나고 있는 것도 ESG 퇴조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읽힌다. ESG워싱의 확산도 ESG 퇴조에 일조하고 있다. ESG 워싱은 ESG란 착한 경영을 겉으로(지표상으로) 하는 척하면서 속 내에서 그렇지 않은 기업의 반 ESG적 행태를 말한다. ESG는 평판을 좋게 받기 위한 것이지만, ESG 경영이 실질적으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ESG는 하나 마나 한 것이다. ESG 워싱이 ESG의 무용론과 퇴조에 힘을 실어주는 까닭은 이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새(보수) 정부는 산업계 상황을 반영하여 고비용의 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를 축소하는 반면 저비용의 무탄소 전원이란 이미지를 앞세운 원전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에너지의 녹색전환이 흔들리면서 탄소중립 정책 전반이 주춤하고 있다. 탄소중립을 향한 사회적 관심과 열의가 급격히 떨어지면서 ESG 부담을 회피하려는 기업들의 움직임도 커지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ESG 공시 의무화를 3~4년 늦춰야 한다는 의견을 금융위원회,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제출한 것이 그러하다. ESG 회피의 추세는 현 정부하에서 그치지 않을 듯하다.
 
ESG는 과연 퇴조하고 있는가? 보수주의자들은 ESG의 퇴조를 진보적 환경주의란 정치색에 물든 결과로 여긴다. 하지만 이를 빌미로 내세우는 보수주의자들의 안티 ESG 기조도 정치색에 물들어 있는 건 마찬가지다. ESG의 퇴조가 현실이라면, ESG가 불필요해서라기보다 ESG의 과잉 정치화로 그 순기능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과잉 정치화된 ESG로부터 자유로울 때 ESG가 왜 필요하고 ESG를 통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가 제대로 보일 것이다.

 

조명래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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