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물가상승률, 목표수준 수렴 확신 들 때까지 통화긴축 기조"
고물가·에브리싱 랠리·한미 금리차 등 피벗 신중 요소 산재
한국은행이 고물가 기준금리 인하 시기를 두고 고민이 깊어졌다.  
한국은행이 고물가 지속 등 영향으로 기준금리 인하 시기에 대한 고민이 깊어진 모습이다. (기사와 직접적 관련 없는 이미지) 

[한스경제=김정환 기자] 한국은행이 물가 안정기에 안착하지 못한 상황 등을 고려해 상반기 금리 인하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단언하며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한은이 최근 발표한 '2024년도 제4차 금융통화위원회(정기) 의사록'에 따르면 금융통화위원회 측은 "물가상승률이 목표수준으로 수렴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 때까지 통화긴축 기조를 충분히 장기간 지속할 것"이며 "이 과정에서 인플레이션 둔화 흐름, 금융안정과 성장 측면의 리스크, 가계부채 증가 추이, 주요국의 통화정책 운용 및 지정학적 리스크의 전개양상을 면밀히 점검해 나가겠다"라고 의견을 모았다. 

한은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와 같이 기준금리 인하 피벗(통화정책 전환) 시기를 결정하기 앞서 2%대 물가 안정화에 방점을 찍은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은 고물가가 좀처럼 잡히지 않는다는 것을 인지했다.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13.77(2020=100)로 전년동월 대비 3.1% 올랐다. 지난해 8∼12월 3%를 웃돌다 올해 1월(2.8%) 2%대로 떨어졌으나, 한 달 만에 3%대로 뛰어올랐다. 그 중 농산물 물가가 전년동월 대비 20.9% 올라 전체 물가를 0.80%p 끌어올렸다. 고유가도 한몫했다. 최근 국제유가 상승분이 시차를 두고 반영되면서 석유류 물가 하락폭은 1.5%로 전월(5%) 보다 크게 쪼그라들었다. 전체 물가 기여도 측면에서 보면 1월 -0.21%p에서 2월 -0.06%p로 줄어 상대적으로 물가를 끌어올리는 데 영항을 끼쳤다. 

우리 정부는 피벗 안착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이다. 정부는 농축수산물 물가를 잡기 위해 농축수산물 비상수급안정대책반을 가동하고 3~4월 농축수산물 할인지원 600억원 투입한다. 이는 역대 최대 수준이다. 또 수입과일 29종 관세 인하 및 물량 무제한 확대 계획 등을 밝혔다. 정부는 고유가 부담을 고려해 유류세 인하 추가 연장도 검토한다. 유류세 인하는 2021년 11월 6개월 한시조치로 도입됐지만 올해 4월까지 총 8차례 연장됐다. 범부처 석유시장점검단을 통해 과도한 유류가격 인상도 단속할 예정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 연합뉴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 연합뉴스 

하지만 당장 금리 인하 시기를 앞당기기는 사실상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의 말을 인용해 설명하자면, 그는 앞선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대부분의 금융통화위원들이 물가 수준이 목표 수준보다 상당히 높고, 물가가 전망대로 내려갈지를 좀 더 살펴봐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이 단계에서 금리 인하를 논의하기는 시기 상조"라며 "개인적으로는 상반기 내에 금리 인하를 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라는 의견을 유지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 총재는 "상반기가 지나서 어떻게 될 건지는 데이터를 봐야 하기 때문에 5월에 다시 경제전망을 할 때 숫자를 보고 판단할 수 있을 것 같다"며 "5월 전망이 굉장히 중요할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금리 인하를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확고히 한 것이다. 

이외에도 이례적 현상인 '에브리싱 랠리(안전·위험자산 동시 상승)' 등 자산가치 급등도 금리 인하 결정에 변수로 떠오른다. 통상 금리 하락 전망이 나오면 위험자산을 선호하는 분위기지만, 현재 시장에선 안전자산 금값이 사상 최고가를 찍는 일이 일어났다. 에브리싱 랠리가 시장의 금리 인하 기대감을 먹고 우상향했다는 점은 금리 인하 신중론에 무게를 더한다. 치솟는 주식시장에 불을 지피고 침체된 부동산 경기를 자극할 경우 가계대출 증가로 이어져 소비위축 등 연쇄적인 문제로 퍼질 수 있다. 

세계 경제를 주도하는 미국도 인플레이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 못해 금리 인하를 미루고 있다.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년 동기 대비 3.2%로 나와 시장 전망치 3.1%를 웃돌았고 생산자물가지수(PPI)도 1.6%로 기록돼 전망치(1.0%)를 모두 상회했다. 시장은 미 연준의 금리 인하 시기를 이르면 6~7월로 보고 있다. 

한국이 미국보다 먼저 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은 적다. 한미금리차가 사상 최대 수준인 200bp(1bp=0.01%포인트)로 지속되는 상황서 먼저 피벗에 나설 이유가 없다는 게 시장 분석이다. 한국이 선제적으로 금리를 인하할 경우 한미금리차는 더 벌어져 환율상승과 외국인 자금 유출 등 시장 불안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정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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