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 신진주] “잠실에 초고층 빌딩을 짓겠다”는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포부와 집념이 마침내 결실을 맺었다. ‘롯데월드타워 개장’ 이라는 꿈을 이루는 순간, 정작 그는 주인공이 되지 못했다.

지난 3일 잠실 롯데호텔월드에서 창립 50주년을 맞은 롯데그룹은 100년 기업으로 가기 위한 새로운 비전을 선포하고 롯데월드타워의 개장을 축하하는 자리를 가졌다. 하지만 이 자리엔 신격호 총괄회장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 76층에서 골든 키를 통한 오픈 세러머니를 진행하며, 동시에 타워 1층과 아레나 광장에서는 타워에 근무하는 직원들이 오픈 제막식과 수백개의 풍선을 하늘로 올리며 그랜드 오픈을 축하하고 '랜드마크 오브 코리아, 롯데월드타워'를 드러냈다. /롯데물산

고령의 나이로 건강 문제도 있겠지만, 롯데 생일잔치에 참석 못한 것은 경영권 분쟁 때문이다. 현재 신 총괄회장은 장남인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이 보필하고 있으며, 지난 2015년 10월부터 롯데그룹과 신 총괄회장 사이의 교류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롯데그룹은 개장을 며칠 앞두고 신 총괄회장 측에 '롯데 임직원 일동' 명의의 초대장을 보냈지만, 응답이 오지 않았다. 

1967년 4월 3일 롯데제과를 시작으로 호텔롯데, 롯데쇼핑, 호남 석유화학 등을 잇달아 창업하거나 인수하면서 재계 5위의 대기업으로 만든 신 총괄회장이 함께 하지 못해 아쉽다는 것이 그룹 안팎의 목소리다. 다소 씁쓸하게 창립 50주년을 맞은 신 총괄회장의 영욕의 삶을 되짚어 봤다.

롯데의 반세기 역사는 창업주 신 총괄회장의 삶과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1922년 10월 4일 경남 울산 삼남면(三南面) 둔기리(芚其里) 한 농가에서 태어난 신 총괄회장은 스무살이 되던 해 일본행 관부 연락선에 몸을 실었다. 고단한 고학 생활 도중 그의 성실성을 눈여겨 보아온 한 일본인의 투자로 1944년 커팅 오일을 제조하는 공장을 세움으로써 기업 경영인으로서의 첫발을 내딛는다.

1947년 4월 신 총괄회장은 롯데의 상징이자 뿌리인 껌을 다음 사업 아이템으로 주목했다. 그는 남미산 천연수지로 당시 최고 수준의 껌을 만들어 큰 히트를 쳤다. 이 성공의 토대 위에 1948년 6월 마침내 자본금 100만엔, 종업원 10명의 주식회사 '롯데'가 설립됐다.

일본에서 사업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자 신 총괄회장은 고국으로 눈을 돌렸다. 신 총괄회장의 한국 경영은 1965년 12월 18일 한일 국교 정상화 조인, 1966년 6월 17일 재일동포 법적 지위 협정 체결·발효 등으로 고국에 대한 투자의 길이 열린 뒤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1967년 롯제제과를 설립해 모국투자를 시작했고, 1970년대에 롯데칠성음료, 롯데삼강으로 국내 최대 식품기업으로 키웠다. 이후 롯데쇼핑, 호텔롯데를 설립해 당시 불모지나 다름없던 국내 유통, 관광 산업의 현대화 토대를 구축했다.

▲ 1979년 12월 17일, 롯데쇼핑센터 개점 테이프 커팅식에 참석한 신격호 총괄회장의 모습. /롯데

신 총괄회장은 평화건업사 인수(1978년·현 롯데건설), 호남석유화학 인수(1979년·현 롯데케미칼) 등을 통해 건설과 석유화학 산업에도 진출했다.

식품-관광-유통-건설-화학 등에 걸쳐 진용을 갖춘 롯데 그룹은 1980년대 고속 성장기를 맞았고, 기네스북이 인정한 '세계 최대 실내 테마파크' 서울 잠실 롯데월드도 1989년 문을 열었다. 1990년대에도 편의점(코리아세븐), 정보기술(롯데정보통신), 할인점(롯데마트), 영화(롯데시네마) 등 사업 영역을 계속 확대해 나갔다.

2000년대부터는 본격적으로 글로벌 진출에 나섰다. 2008년 롯데의 해외 진출국은 6개국에 불과했으나 현재는 23개 국가에서 사업을 영위하고 있으며 그룹 매출 역시 2008년 42.5조원에서 2016년 92조원으로 비약적인 성장을 이뤘다.

그러나 2015년부터 신 총괄회장은 위기에 맞았다. 계열사 등기이사에서 속속 물러나게 된 것이다. 2015년 신동빈 회장이 롯데홀딩스 정기이사회에서 대표이사로 취임하고, 신동주 전 부회장과 신 총괄회장이 해임되면서 경영권 분쟁이 촉발됐다. 이후 자식과의 신의가 깨지기 시작했고 신 총괄회장은 신동주 전 부회장의 편에 서 신 회장과 대립하는 구도가 됐다.

신 총괄회장은 현재 사무처리 능력이 부족하다는 판정을 받고 법원으로부터 한정후견인 지정을 받은 상태이며, 롯데 경영비리 관련 재판에 따라 법적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 신 총괄회장은 워낙 고령의 나이이기 때문에 퇴진이 당연한 수순일 순 있으나, 한일 양국에서 거침없는 성공신화를 써 왔던 터라 씁쓸함을 자아낸다.

한편 롯데는 이날 창립 50주년 행사에서 '신격호 시대'가 막을 내리고 '신동빈의 뉴롯데'가 개막했다는 점을 대내외에 공식화했다.

신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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